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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나를 알아볼 텐데…" 다랑쉬굴 4·3 유족의 눈물

송고시간2022-03-3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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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31일 제주4·3평화기념관 대극장에서 열린 4·3 증언 본풀이 마당 '다랑쉬굴 발굴 30년-아! 다랑쉬, 굴 밖 30년이우다'에서 함복순(80) 할머니는 "다랑쉬굴 근처에서 나무하고 고사리 꺾으면서도 거기 오빠가 있는 줄은 몰랐다"며 15살 위 오빠의 사연을 전했다.

함 할머니의 오빠 함명립(당시 20) 씨는 다랑쉬굴 4·3 희생자 중 한 명이다.

함 할머니는 4·3 40여년 뒤인 1992년 다랑쉬굴에서 발굴된 유해 중 오빠가 있다는 소식에 상복을 차려입고 찾아갔고, 가서 굴 앞의 시신들을 보며 '오빠는 나를 알아볼 텐데, 나는 누가 오빠인지 몰라'라며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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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굴 발굴 30년' 4·3 증언 본풀이 마당 열려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오빠 시신은 화장해서 바당에 뿌려부난(바다에 뿌려버려서) 아무것도 어수다(없습니다). 오빠는 날 알암주만(알지만), 난 누가 오빠인지 모르난(모르니) 뿌리면서도 서럽게 울었습니다."

4·3 증언 본풀이 마당
4·3 증언 본풀이 마당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31일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4·3 증언 본풀이 마당에서 다랑쉬굴 4·3 희생자의 유족인 함복순 할머니가 사연을 말하고 있다. 2022.3.31 atoz@yna.co.kr

31일 제주4·3평화기념관 대극장에서 열린 4·3 증언 본풀이 마당 '다랑쉬굴 발굴 30년-아! 다랑쉬, 굴 밖 30년이우다'에서 함복순(80) 할머니는 "다랑쉬굴 근처에서 나무하고 고사리 꺾으면서도 거기 오빠가 있는 줄은 몰랐다"며 15살 위 오빠의 사연을 전했다.

함 할머니의 오빠 함명립(당시 20) 씨는 다랑쉬굴 4·3 희생자 중 한 명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경찰에 끌려가 구타를 심하게 당했고, 어머니는 오빠를 찾으러 다니다가 도피자 가족이라며 총살당했다.

함 할머니는 4·3 40여년 뒤인 1992년 다랑쉬굴에서 발굴된 유해 중 오빠가 있다는 소식에 상복을 차려입고 찾아갔고, 가서 굴 앞의 시신들을 보며 '오빠는 나를 알아볼 텐데, 나는 누가 오빠인지 몰라'라며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함 할머니는 "4·3 유족에게 돈(보상금) 나온다고 하는데, 나는 돈 필요 없다. 예전에 '폭도'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찢어졌는데, 이제는 '희생자'라고 한다"며 "명예가 회복되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4·3 증언 본풀이 마당
4·3 증언 본풀이 마당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31일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4·3 증언 본풀이 마당에서 다랑쉬굴 4·3 희생자의 유족인 고관선(76) 씨가 사연을 말하고 있다. 2022.3.31 atoz@yna.co.kr

아버지가 다랑쉬굴에서 희생된 고관선(76) 할아버지는 당시 시신을 화장해버린 것이 가장 후회된다고 했다.

고 할아버지는 "아버지 묘는 헛봉분으로 해놨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 화장할 때 썼던 항아리를 어머니 곁에 같이 모셨다"며 "유족들이야 뼛가루 한 줌이라도 남기고 싶었지만 통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고 할아버지는 "다랑쉬굴이 4·3 진상을 밝히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했다. 이걸 계기로 다른 마을에서도 '우리도 말해봐야겠다'하는 분위기가 나왔다"며 "이제 다른 지역에서도 4·3에 대해 다들 안다. 다랑쉬굴 현장이 누구든 한번 찾아가 볼 정도로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 다른 다랑쉬굴 유족 이공수(86) 할아버지도 "재작년에 가족묘를 양지공원으로 옮겼는데, 다랑쉬굴에서 돌아가신 어른은 국가가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버렸으니 옮길 것이 없었다"며 이제라도 다랑쉬굴 근처에 희생자를 위로하는 비석이라도 세워 주면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

다랑쉬굴 유해 발굴은 4·3 진상규명 운동 과정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30년 전인 지난 1992년 다랑쉬굴에서는 4·3 희생자 유해 11구가 발굴됐다. 이들은 1948년 12월 토벌대가 굴 입구에 지핀 불의 연기에 질식해 희생됐으며, 그중에는 아이 1명과 여성 3명이 포함돼 있었다.

다랑쉬굴 희생자의 유족들은 4·3 이후 40여 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토록 찾던 가족을 주검으로나마 다시 상봉할 수 있었지만, 수습된 유해들은 유족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화장돼 바다에 뿌려지고 말았다.

올해로 21번째 열린 4·3 본풀이 마당은 제주4·3연구소가 주최했다.

4·3 증언 본풀이 마당
4·3 증언 본풀이 마당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31일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4·3 증언 본풀이 마당에서 다랑쉬굴 4·3 희생자의 유족인 함복순 할머니가 사연을 말하고 있다. 2022.3.31 atoz@yna.co.kr

ato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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