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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일본 고교 교과서 검정 주요 수정 사례

송고시간2022-03-2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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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마무리된 일본 문부과학성의 고교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 당국은 일본 정부의 견해와 다른 내용이라는 이유로 출판사에 여러 차례 수정하라는 지적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 정부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징용 등 노무동원)에 관해 '강제노동' 혹은 '강제연행'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견해를 작년 4월 각의 결정했는데 이에 따라 교과서의 기술 내용을 바꾸도록 하는 조치가 검정에서 반복됐다.

일본 정부가 독도가 자국 영토라는 일방적인 주장을 되풀이하는 가운데 이번 검정에서도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가 일본 고유영토라고 쓰도록 지적하는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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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등학교 교과서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

[연합뉴스 자료사진]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29일 마무리된 일본 문부과학성의 고교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 당국은 일본 정부의 견해와 다른 내용이라는 이유로 출판사에 여러 차례 수정하라는 지적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 정부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징용 등 노무동원)에 관해 '강제노동' 혹은 '강제연행'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견해를 작년 4월 각의 결정했는데 이에 따라 교과서의 기술 내용을 바꾸도록 하는 조치가 검정에서 반복됐다.

일본 정부는 '종군 위안부'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오해를 부를 수 있으므로 '종군 위안부' 또는 '이른바 종군 위안부'가 아닌 단순한 '위안부'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적절하다는 견해도 각의 결정했다.

이번 검정에서는 이와 관련한 지적을 받고 '일본군 위안부'를 '위안부'로 고친 사례도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를 '위안부'로 바꾼 것은 일본군이 일본군 위안부 동원에 깊숙하게 관여했다는 사실을 흐리는 조치다.

일본 정부는 위안소의 설치, 관리, 위안부 이송에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 관여했다는 것을 1993년 발표한 고노담화에서 확인한 바 있다.

일본 정부가 독도가 자국 영토라는 일방적인 주장을 되풀이하는 가운데 이번 검정에서도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가 일본 고유영토라고 쓰도록 지적하는 일이 있었다.

다음은 연합뉴스가 파악한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의 주요 수정 사례.

과목 출판사 지적사항 원문 표기 수정 후 표기
일본사탐구 짓쿄 학생이 오해할 우려가 있는 표현(‘일본군’과 ‘위안부’의 관계에 관해) 많은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삼아졌다. 많은 여성이 ‘위안부’로 삼아져 군(軍)도 관여한 위안소에서 일 시킴을 당했다.
일본사탐구 야마카와 정부의 통일적인 견해에 토대를 둔 기술이 돼 있지 않다 조선인이나 점령 하 중국인도 일본에 연행돼 광산이나 공장 등에서 노동을 강제 당했다. 조선인이 징용되고, 점령 하 중국인도 일본 본토로 연행돼 광산이나 공장 등에서 일 시킴을 당했다.
정치·경제 짓쿄 정부의 통일적인 견해에 토대를 둔 기술이 돼 있지 않다 옛 위안부나 강제연행 노동자에 대한 전후보상 옛 위안부나 강제적으로 동원돼 가혹한 노동을 강요받은 자에 대한 전후보상
세계사탐구 데이코쿠 정부의 통일적인 견해에 토대를 둔 기술이 돼 있지 않다 일본 본토의 노동력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조선이나 중국으로부터 노동자가 강제적으로 연행됐다. 일본 본토의 노동력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조선이나 중국으로부터 노동자가 징용·동원됐다.
세계사탐구 도쿄 정부의 통일적인 견해에 토대를 둔 기술이 돼 있지 않다 조선이나 대만에서도 노동자가 일본에 이주당하거나 또 연행당하거나 해서 일 시킴을 당했다. 조선이나 대만에서도 노동자가 일본에 이주당하거나 또 강제적으로 동원당하거나 해서 일 시킴을 당했다.
일본사탐구 짓쿄 정부의 통일적인 견해에 토대를 둔 기술이 돼 있지 않다 일본으로의 조선인 연행은 1939년 모집 형식으로 시작해 1942년부터 관(官) 알선에 의한 강제 연행이 개시됐다. 1944년에는 국민징용령이 개정 공포돼 노동력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강제 연행 실시가 확대됐고 일본으로의 조선인 동원은 1939년 모집 형식으로 시작해 1942년부터 관 알선에 의해 이뤄졌다. 1944년에는 국민징용령이 개정 공포돼 노동력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동원 대상이 확대됐고
정치·경제 도쿄 정부의 통일적인 견해에 토대를 둔 기술이 돼 있지 않다 (고노담화를 발췌문에 덧붙인 설명) '위안부 문제'에 관한 조사 결과를 받아들여 당시 고노 요헤이 내각관방장관이 발표한 담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했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가 돼 있다. '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한 담화로,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가 돼 있다. 2021년에 '종군위안부'가 아니라 '위안부'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적절하다는 각의 결정이 이뤄졌다.
정치·경제 다이이치 정부의 통일적인 견해에 토대를 둔 기술이 돼 있지 않다 징용공이나 ‘강제연행’을 둘러싼 문제에 관해서는 징용공 등 전시 중에 동원돼 가혹한 노동을 강요받은 사람들에 의해서
지리총합 데이코쿠 학생이 오해할 우려가 있는 표현(우리 나라의 입장에 비춰볼 때) 일본해에 있는 다케시마는 1905년 메이지 정부가 국제법에 따라 시마네현에 편입하고 자국 영토로 하는 생각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일본해에 있는 다케시마는 시마네현 오키의 시마초에 속하는 일본 고유의 영토다. 1905년 메이지 정부가 다케시마의 귀속을 내외에 선언하고 국제법에 따라 시마네현에 편입했다.
정치·경제 시미즈 학습지도요령이 밝힌 내용의 취급에 비춰볼 때 취급이 부적절하다. (고유영토인 다케시마…를 다룰 것) 시마네현에 속하는 다케시마는 1950년대부터 한국이 일방적으로 시마네현에 속하는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로서 메이지 시대에 국경을 획정했으나 1950년대부터 한국이 일방적으로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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