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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 내비게이션] 아르헨티나의 눈물은 언제 마를까?

송고시간2022-05-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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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명작 애니메이션 '엄마 찾아 삼만리'에서 가난한 이탈리아 소년 마르코는 아르헨티나로 돈 벌러 간 엄마를 찾아 홀로 배를 타고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한다.

여기서 잠깐! 세계 질서를 이끄는 '부자 클럽' G7(주요 7개국) 일원인 이탈리아 국민이 '국가 부도' 선언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아르헨티나로 돈 벌러 갔다고? 영화 '황해'에서 중국인 여성이 한국에 돈 벌러 온 광경은 현실에서도 흔하다.

부유하지 않은 나라로 알려진 아르헨티나에 이탈리아인이 이주 노동자로 왔다는 건 실감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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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에비타' 대표 넘버…'아르헨티나여, 날 위해 울지 말아요'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일본 명작 애니메이션 '엄마 찾아 삼만리'에서 가난한 이탈리아 소년 마르코는 아르헨티나로 돈 벌러 간 엄마를 찾아 홀로 배를 타고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한다. 이역만리에서 가정부 일을 해 생활비를 보내오던 엄마의 소식이 끊겼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세계 질서를 이끄는 '부자 클럽' G7(주요 7개국) 일원인 이탈리아 국민이 '국가 부도' 선언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아르헨티나로 돈 벌러 갔다고? 영화 '황해'에서 중국인 여성이 한국에 돈 벌러 온 광경은 현실에서도 흔하다. 하지만 부유하지 않은 나라로 알려진 아르헨티나에 이탈리아인이 이주 노동자로 왔다는 건 실감이 안 난다. 사실 이런 현상은 역사에 관한 무지에서 오는 흔한 오해다.

이 애니메이션의 원작은 이탈리아 단편 동화 '아펜니노산맥에서 안데스산맥까지'로, 19세기 후반에 출간됐다. 당시 이탈리아는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에 신음했지만, 아르헨티나는 세계 5대 부국으로 꼽히던 풍요한 나라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는 무려 1913년에 지하철이 개통될 정도로 최첨단 선진국이었다.

같은 시기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소달구지와 나룻배를 타고 다니던, 세계에서 가장 못 살고 미개한 나라 중 하나였다. 심지어 그 나라마저 수백 년간 이어진 이씨 왕조와 사대부 세력의 무능과 폭정으로 쇠락한 끝에 일본에 뺏긴 지 3년이 넘은 해이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가.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가.

[게티 이미지]

◇ 우린 소 타던 시절에 지하철 타던 아르헨티나

하지만 19세기 후반기와 20세기 초반 세계를 주름잡던 부국이자 강국이던 아르헨티나와 당시 약소국의 대명사였던 우리나라는 이제 사정이 역전됐다.

양국 간 비교 가능한 2020년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은 대한민국이 1조6천382억 달러, 아르헨티나가 약 3천830억 달러로 4배 넘게 차이 난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도 한국은 3만1천880 달러, 아르헨티나는 8천249달러로 비슷한 격차를 보인다.

인구는 한국이 조금 많긴 하지만 국토 면적, 비옥한 농지, 천연자원 보유량 등에서 아르헨티나는 한국을 압도하는데 이런 현상이 벌어진 건 미스터리에 가깝다. 아르헨티나의 국토 면적은 한국의 27배이고 석유, 가스, 비철금속 등 주요 전략 자원 보유량은 비교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하늘과 땅 차이다.

세계 109위의 작은 땅에서 농지는 좁고 별 자원도 없이 오직 사람들을 경쟁시키는 게 사실상 유일 무기인 한국은 이제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됐고, 아르헨티나는 왜 상습 부도 국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단골손님이 됐을까?

'핑크 하우스'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대통령궁 '카사 로사다'
'핑크 하우스'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대통령궁 '카사 로사다'

[게티 이미지]

◇ 미국 못지않은 조건 갖고도 상습 부도국가로 추락

아르헨티나를 숫자로 한번 풀어보자. 나라 크기, 자원 보유량, 농수축산물 및 임업 생산량, 기후 조건, 주변 지정학적 요건 등에서 미국 못지않은 천혜의 조건을 가졌다. 이런 축복 받은 나라가 정상급 선진국 대열에서 탈락해 100년 가까이 '세계 경제의 문제아'로 불리게 된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아르헨티나의 면적은 세계 8위, 남미 2위로 광활하다. 게다가 국토의 60%가 세계 4대 곡창지로 불리는 비옥한 '팜파스' 평원이다. 팜파스는 농경뿐 아니라 목축에도 유리해 콩, 옥수수, 소고기 등의 생산량이 매년 세계 정상을 다툰다. 밀 생산량도 세계 10위 안에 든다.

아르헨티나는 또 세계 6대 광물자원 보유국이다. 남미 지역에서 원유 생산량 3위, 천연가스 생산량 1위인 산유국이며, 특히 셰일가스 매장량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추산된다. 전기차 붐으로 주목받는 리튬의 매장량도 세계 3위다. 금, 은, 구리, 아연 등 고부가가치 자원들도 많이 생산된다.

이쯤 되면 부지런한 한국인으로선 궁금증을 넘어 답답할 지경이다. "도대체 어떻게 잘 살긴커녕 빚더미에 허덕일 수 있지?" 오랫동안 많은 학자가 여러 분석을 내놨지만 공통된 지적은 '남미병'으로 불리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폐해다.

아무리 모든 조건이 좋아도 포퓰리즘은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

아르헨티나 대통령궁 '카사 로사다' 내부
아르헨티나 대통령궁 '카사 로사다' 내부

[게티 이미지]

◇ '남미병' 원조…페론주의로 재정 악화·빈곤율 상승

특히 아르헨티나는 포퓰리즘의 원조로 불린다. 지금도 여전히 아르헨티나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페론주의'(Peronism) 말이다. 페론주의는 1946~1955년, 1973~1974년 두 차례 집권한 독재자 후안 페론 전 대통령이 내세운 포퓰리즘 경제·사회 정책이다.

페론주의는 외국인 투자 배제와 극단적 국내 산업 보호, 주요 산업 국유화와 국가 주도 경제, 정부 재정 수준을 넘는 복지 확대, 노동자 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 주도 성장, 여성의 정치적 지위 파격 향상 및 여성 임금 특별인상 등 포퓰리즘 사회주의 정책을 담았다.

후안 페론은 아돌프 히틀러와 가까운 사이로, 히틀러가 추구했던 '국가사회주의'라는 국정 운영 모델을 페론주의로 구현했다는 학설들이 있다. 나치는 우리 말로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이다. 실제로 페론 집권 1기에 나치가 패망했을 당시 많은 나치 전범들이 아르헨티나로 도피했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지낸 후안과 에바 페론 부부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지낸 후안과 에바 페론 부부

[dpa 제공. 재배포 DB 금지]

◇ '포퓰리즘의 꽃' 에바 페론

그런데 사실 이 '페론주의'는 한때 아르헨티나의 국모로 불렸던, 후안 페론의 부인 에바의 조력이 없었다면 지속하지 못했을 거라는 게 통설이다.

팜파스의 빈농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유흥가에서 여러 남자 품을 떠돌았고, 삼류 극단 배우로 이름을 알린 끝에 퍼스트레이디 자리에 오른 에바 페론은 파란만장한 풍운아였다. 특히 오랫동안 밑바닥 삶을 살았던 에바는 본능적인 생존 전문가이자 천부적인 포퓰리스트였다. 군사정부 노동부 장관으로 페론주의를 내걸고 정치적 야심을 키우던 후안은 한 모금 행사에서 만난 젊고 매력적인 에바에게 빠져 동거를 시작한다.

마침내 천부적 선동가이자 연예인인 에바의 재능은 후안이 반대파에 의해 구금되는 정치적 위기에서 빛을 발한다. 에바는 '빈민의 딸'임을 내세워 빈민과 노동자들을 상대로 구명 연설을 했고, 여기에 감화된 사람들은 총파업을 일으켜 후안의 석방을 끌어냈다. 정치적으로 한 단계 성장해 돌아온 후안은 답례하듯 에바와 정식으로 결혼했다.

결혼 이듬해 열린 대선에서도 에바의 포퓰리스트적 재능은 꽃을 피운다. 그는 남편의 유세에 동행하며 매력적 외모와 가난한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발언으로 다수의 마음을 사로잡아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에비타'라는 애칭이 모두에 알려지며 국민 연인 같은 이미지를 얻은 것도 이때부터다.

하지만 국가사회주의를 추구하는 후안과 천재 선동가 에바의 결합은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즘 질주에 가속 페달을 밟았다. 게다가 페론 부부는 좌파 정부라면 빼놓지 않는 우상화도 시도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페론 부부를 찬양하는 글짓기를 하도록 의무화하고 에바의 자서전을 교재로 채택했다. 비싼 옷과 구두로 치장하는 에바의 사치는 심해졌고 정부 돈을 횡령해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로 보냈다는 폭로도 나왔다.

후안 페론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부인 에바
후안 페론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부인 에바

'에비타'란 애칭으로 불리며 권력과 국민의 사랑을 누렸다.
[dpa 제공. 재배포 DB 금지]

◇ 유흥가 전전하던 빈민 소녀, 국모 올라 요절까지 극적인 삶

에바는 9년간 아르헨티나 왕비처럼 지냈지만 1952년 백혈병과 암으로 3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대중은 한 달간 장례식을 열며 '국모'의 죽음을 광적으로 슬퍼했지만, 그로부터 3년 뒤에 후안도 군부 쿠데타로 실각해 해외로 쫓겨났다. 두 부부는 아르헨티나에서 사라졌지만, 이들의 포퓰리즘 유산은 남았다.

아르헨티나는 페론주의 도입 이후 꾸준히 퇴락했다. 경제성장률은 고꾸라졌고 국가 재정은 끝을 모른 채 악화했다. 그런데도 아르헨티나 다수 민중은 1973년 대선에서 '에비타'를 그리워하며 후안을 다시 선택했다. 노조, 여성, 빈민 표가 후안을 재선으로 이끈 것이다. 하지만 후안은 임기를 1년도 못 채운 채 사망하고 세 번째 부인이자 부통령인 이사벨 페론이 대통령직을 물려받지만 역시 2년을 못 채우고 쿠데타로 쫓겨났다.

이후 아르헨티나는 군부와 민간, 친(親) 페론과 반(反) 페론 정권 등이 번갈아 집권했지만, 각 정권 성격과 구호와는 달리 모두 페론주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아르헨티나의 민도가 페론주의와 잘 맞았기 때문이었다.

옛 아르헨티나 100소 지폐
옛 아르헨티나 100소 지폐

남편 후안 페론 전 대통령보다 한때 인기가 좋았던 에바를 모델로 발행했던 100페소 지폐. 2016년 좌파 청산을 내세운 새 정권이 선정한 새 지폐 모델 '사슴'에 밀려났다.
[게티 이미지]

그렇게 아르헨티나는 지금까지 수십 차례나 IMF 구제금융 수혜와 디폴트 선언을 반복하는 나라가 됐다. 게다가 서민과 빈민을 위한다는 구호와는 반대로 빈곤율은 50% 안팎을 넘나들며 가난한 사람이 더 많아졌다. 아르헨티나에서 오랫동안 계속돼온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당연히 부자보다 서민을 더 힘들게 만든다.

그래서 페론주의는 다수 대중의 잘못된 결정이 공동체를 더 그릇된 길로 이끈다는 '중우정치'(衆愚政治), '폭민정치'(暴民政治)의 대표 사례로도 지목된다. 후안은 냉혹한 군부 독재자였고 에바는 학교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해 전문성과 지적 능력이 떨어졌음에도 다수 대중은 이들이 내놓는 인기영합적 정책을 맹목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이다.

민주정(democracy) 시스템에서 결국 모든 국민은 각자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뽑는다. 아르헨티나의 영락(零落)은 사실 페론 부부 탓만이 아니라 페론주의가 득세하게 해준 아르헨티나인들의 민도 때문이란 얘기다.

에바 페론 초상을 넣어 발행한 과거 우표
에바 페론 초상을 넣어 발행한 과거 우표

[게티 이미지]

◇ 서구 시각에서 바라본 에바…뮤지컬 '에비타'

웬만한 영화나 드라마도 에바의 삶보다 더 극적이긴 어려울 듯하다. 대중예술계 종사자들이 이런 좋은 소재를 놓칠까?

미국 브로드웨이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에바의 생애를 소재로 록 뮤지컬 '에비타'를 제작해 1978년 영국 웨스트 엔드에서 초연했다. 에비타는 뮤지컬의 오스카로 불리는 토니상을 비롯해 많은 수상 기록을 남기며 레전드 작품으로 남았다. 1996년에는 마돈나 주연의 동명 뮤지컬 영화로도 제작됐다.

이 뮤지컬의 하이라이트는 자궁암에 걸린 영부인 에바가 자신의 쾌유를 위해 대통령 관저 앞에 몰려들어 '촛불 기도회'를 여는 군중 앞에 나타나 다시 한번 자신의 특기인 대중 연설을 하는 장면이다.

이 연설을 노래로 표현한 곡이 바로 'Don't cry for me, Argentina'(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이다. 이 노래는 올리비아 뉴턴 존, 둘리스 등 많은 팝스타가 별도로 리메이크해 불러 히트하기도 했다.

다만 영미권 작품인 이 뮤지컬은 에바 페론을 남미인들처럼 감성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다소 냉소적 시선에서 에바의 '쇼맨십'을 부각한다. 노래에서 에바는 자신이 부와 명예를 추구한 적 없다며 자기를 믿어달라 주장하지만, 감성에만 호소할 뿐 구체적 증거는 하나도 대지 못한다. 이 유명한 곡의 마지막은 이렇게 묘한 느낌을 주며 끝난다.

'하지만 여러분 모두 저를 바라보기만 하면, 제가 하는 모든 말이 진실임을 알게 될 거예요.'

아르헨티나에서는 에바가 희대의 성녀인지, 악녀인지를 놓고 여전히 논쟁 중이다. 다만 빈민층, 여성층 등 페론주의의 표적 공략층과 농촌 지역에서는 죽음마저 극적이었던 에바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아르헨티나 서민들이 점점 더 가난해지는 이유를 페론주의에서 찾는다. 그러나 다른 나라 정치인인 에바를 굳이 우리가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나눠 평가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하나는 말할 수 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에바 페론 초상화 구조물
에바 페론 초상화 구조물

2012년 에바 페론 사망 60주년을 맞아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가 빌딩에 설치했던 대형 초상화 철제 구조물
[게티 이미지]

[Don't cry for me, Argentina']

아르헨티나여, 날 위해 울지 말아요

Don't cry for me Argentina

아르헨티나여, 날 위해 울지 말아요

The truth is I never left you

진실은 내가 여러분을 저버린 적 없다는 거죠

All through my wild days

그 모든 거친 날들과

My mad existence

미칠 듯한 삶을 보내면서도

I kept my promise

난 약속을 지켰어요

Don't keep your distance

그러니 내게서 멀어지지 말아요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5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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