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 청소년, 증인신문에 2차피해"…법조계, 헌재 비판
송고시간2022-03-17 16:58
여성변회 심포지엄…현직 판·검사도 '법정 출석 증언만 효력'에 비판 목소리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성폭력 범죄 피해를 겪은 미성년자가 법정에 출석해서 직접 진술해야만 증언 효력을 인정하도록 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두고 변호사들은 물론 현직 판사와 검사도 2차 피해를 우려하며 비판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여성변호사회(회장 김학자 변호사)는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변호사교육문화회관에서 '위헌결정 이후의 대응 방안'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어 법조계 전문가들이 헌재의 결정을 평가하고 피해자들의 2차 피해를 최소화할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
헌재는 작년 12월 23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가운데 19세 미만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진술을 촬영한 동영상에 증거 효력을 인정한 조항이 위헌이라고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결정했다.
종전까지는 조사에 동석한 조력인이 '진정한 진술'이라고 인정하면 진술 동영상을 증거로 쓸 수 있어 미성년 피해자를 법정에 출석시키지 않고도 가해자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었다.
그러나 헌재의 결정으로 미성년자인 피해자가 법정에 출석해 직접 피해 내용을 증언해야 하는 일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지정토론자로 나선 임수희 수원지법 안산지원 부장판사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위헌으로 결정된 조항이 처음 제정된 것이 2010년이며, 헌재가 2013년에도 이 조항에 합헌 결정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임 부장판사는 "헌재의 결정으로 약 12년 전인 2010년 이전 상태로 어떤 완충·보완 장치도 없이 아동 인권 보호가 후퇴한 것"이라며 "2013년과 비교해 8년 사이 우리 사회나 형사사법 시스템에 무슨 변화가 있어서 헌재의 입장이 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헌법재판관 3명의) 반대의견에서 과거 10여 년의 통계를 들면서 성범죄 대상 아동 피해자의 보호를 강조한 것처럼, 성범죄의 심각성이나 피해 연령이 낮아지는 점 등은 더 절박하게 아동 피해자를 보호할 필요성을 뒷받침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신수경 여성변호사회 아동청소년지원특별위원회 부위원장도 이날 발표에서 "미성년 피해자는 증언 중 사건을 회상하다가 감당하기 어려운 불안과 두려움, 우울감, 수치심 등 부정적 감정을 느껴 예상치 못한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 부위원장은 또 "법정 진술을 통해 미성년 피해자에게 유의미한 답변을 끌어내기 어려울 수 있고 오히려 유도되거나 오염된 진술로 실체적 진실 발견을 어렵게 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 형사법제과장인 문지선 부장검사 역시 지정토론을 맡아 "헌재가 대안으로 증거보전 절차를 제시했지만, 이 경우에도 피해자가 수사기관 진술 이후 다시 법정 증언을 할 수밖에 없어 진술을 반복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고 재판에서 실체적인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한 증인신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인격권을 침해하는 신문을 제한하는 등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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