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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무늬벽돌 나온 '부여 외리 유적' 유물 보고서 발간

송고시간2022-03-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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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군 규암면 외리 절터에서 나온 다양한 백제 무늬 벽돌(문양전·文樣塼)은 금동대향로와 함께 백제 후기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로 꼽힌다.

국립부여박물관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 이뤄진 외리 유적 발굴조사를 통해 수습한 벽돌 220점을 실측하고 관련 정보를 정리한 보고서를 펴냈다고 1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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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여박물관, 벽돌 220점 총정리…"유적 가치 재조명되길"

부여 외리 유적에서 나온 백제 산수풍경 무늬 벽돌
부여 외리 유적에서 나온 백제 산수풍경 무늬 벽돌

[국립부여박물관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충남 부여군 규암면 외리 절터에서 나온 다양한 백제 무늬 벽돌(문양전·文樣塼)은 금동대향로와 함께 백제 후기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로 꼽힌다.

보물로 지정된 외리 유적 벽돌은 정사각형이며, 한 변 길이는 약 29㎝다. 연꽃도깨비 무늬, 산수도깨비 무늬, 산수풍경 무늬, 산수봉황 무늬, 연꽃 무늬, 연꽃구름 무늬, 용 무늬, 봉황 무늬 등 8종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산수풍경 무늬 벽돌이 특히 유명하다. 우뚝 솟은 산을 중심으로 아래쪽에 동글동글한 봉우리들을 배치했다. 봉우리에는 소나무 군락이 있고, 하늘에는 구름을 표현했다.

국립부여박물관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 이뤄진 외리 유적 발굴조사를 통해 수습한 벽돌 220점을 실측하고 관련 정보를 정리한 보고서를 펴냈다고 1일 밝혔다.

외리 유적은 지역 주민이 1937년 3월 9일 무늬 벽돌을 발견하면서 존재가 알려졌다. 그해 4월 18일부터 약 보름 동안 남북 방향 약 75m, 동서 방향 27m 부지에서 발굴조사를 했고, 무늬 벽돌뿐만 아니라 토기 조각과 철기 등도 확인됐다.

보고서에는 외리 유적의 자연·고고학 환경, 조사 과정에 관한 설명이 수록됐다. 또 벽돌을 무늬별로 나눠 사진과 그림, 표를 실었다.

부여 외리 유적에서 출토된 무늬 벽돌
부여 외리 유적에서 출토된 무늬 벽돌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국립부여박물관은 외리 유적 벽돌을 크게 무늬가 사각형인 유물과 원형인 유물로 분류하고, 두 종류의 벽돌에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이 담겼다고 주장했다.

박물관은 "무늬 벽돌은 거푸집 틀을 바닥에 놓은 다음 그 안에 점토를 넣어 제작한 듯하다"며 "벽돌 뒷면에 점토를 위에서 손으로 누른 흔적이 남은 것도 있다"고 짚었다.

이어 "두 벽돌을 이어 붙일 때는 중간에 나무 조각을 끼워 고정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벽돌 홈의 방향과 높이가 조금씩 달라 연결 방식이 단순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연꽃도깨비 무늬 벽돌과 산수도깨비 무늬 벽돌을 비교하면 산수도깨비 무늬 벽돌의 도깨비에는 위쪽 송곳니 옆에 작은 이가 하나씩 더 났고, 앞니 사이에 ∞자 모양 혀가 있다고 설명했다.

원형 무늬 벽돌은 무늬 바깥쪽에 수많은 점이 있는데, 문양에 따라 개수가 다르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연꽃 무늬는 61개, 봉황 무늬는 62개, 용 무늬는 67개, 연꽃구름 무늬는 68개로 조사됐다.

일제강점기 조사자인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가 외리 유적과 유물에 대한 쓴 글의 번역문과 당시 유리건판 사진을 부록으로 담았다.

윤형원 국립부여박물관장은 발간사에서 "외리 무늬 벽돌은 출토 양상과 제작 과정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보고서 발간을 통해 외리 유적의 가치가 재조명되길 바란다"고 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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