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한중일은 가위바위보"…혜안으로 동아시아 문화 통찰한 이어령

송고시간2022-02-26 14:06

beta
세 줄 요약

26일 세상과 작별을 고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1950년대 문학계 거물을 비판하며 이른바 '세대 논쟁'을 일으킨 문학평론가로 이름을 알렸지만,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동아시아 문화를 분석한 연구자이기도 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쥘부채, 주먹밥, 문고본, 분재, 휴대용 카메라와 라디오 등 일본 문화 구조를 '축소'라는 주제어로 살펴 현지 언론으로부터 '유니크하고 당당한 일본론', '일본인이 미처 생각지 못한 의미를 폭로한 저서'라는 평가를 받았다.

요약 정보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줄인 '세 줄 요약' 기술을 사용합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사 본문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제공 = 연합뉴스&줌인터넷®
이 뉴스 공유하기
본문 글자 크기 조정

'축소지향의 일본인'서 일본 문화 날카롭게 분석…"한국이 중일 분쟁 막아"

생명존중 사상 기초한 AI 활용 강조…"인간과 말은 경주하지 않는다"

지난해 8월 25일 연합뉴스와 인터뷰 당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지난해 8월 25일 연합뉴스와 인터뷰 당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26일 세상과 작별을 고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1950년대 문학계 거물을 비판하며 이른바 '세대 논쟁'을 일으킨 문학평론가로 이름을 알렸지만,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동아시아 문화를 분석한 연구자이기도 했다.

그가 문화 연구자로서 내놓은 저서 중에는 1982년 일본어로 발간된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한국어는 물론 영어와 불어로도 번역된 이 책은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쥘부채, 주먹밥, 문고본, 분재, 휴대용 카메라와 라디오 등 일본 문화 구조를 '축소'라는 주제어로 살펴 현지 언론으로부터 '유니크하고 당당한 일본론', '일본인이 미처 생각지 못한 의미를 폭로한 저서'라는 평가를 받았다.

고인은 일본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국과의 비교가 필요하다면서 "한국에는 확대하는 접두사는 있어도 축소하는 접두사는 없지만, 일본에서는 확대보다 축소의 뜻으로 사용하는 접두사가 많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는 한국어 접두사 '왕'과 일본어 접두사 '마메'(豆)를 제시했다. '왕'은 '크다'와 동격인 말이지만, 콩을 의미하는 '마메'는 '작은'을 의미하는 용어다. '마메'는 책, 자동차, 인형, 양초, 전구 등 여러 단어에 붙어 쓰인다.

그는 '작은 것'에 집착하는 일본인에 대해 "큰 것을 작게 줄인 것은 그냥 작은 것과는 달리 원형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 좀 더 힘센 것이 된다"고 분석했다.

노년에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으로 활동한 고인은 '가위바위보'나 '보자기' 같은 친숙한 주제로 동아시아 삼국이 융화할 필요성을 논하기도 했다.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별세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별세

(서울=연합뉴스) 문화부 초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자대학교 명예석좌교수가 26일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9세. 1933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호적상 1934년생)한 고인은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대표 석학이자 우리 시대 최고 지성으로 불렸다.
노태우 정부 때 신설된 문화부 초대 장관(1990~1991)이었으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문학평론)으로 활동했다. 사진은 2021년8월 25일 서울 종로구 영인문학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는 이 전 장관. 2022.2.26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그는 한중일을 자주 '가위바위보'에 비유했다. 2010년 일본 도쿄 한국문화원 연설에서는 "한중일 어느 나라도 혼자 잘 살 수는 없다"며 "만약에 중국과 일본만 있었다면 두 나라가 허구한 날 싸웠겠지만, 한반도가 중간에 있어서 충돌을 막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저서 '가위바위보 문명론'에서는 "바위는 가위를 이기지만, 가위는 보자기를 이긴다"며 동그랗게 순환하는 가위바위보의 관계가 새 문명을 열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가위바위보는 혼자서는 할 수 없고, 동시에 손을 내미는 평등한 게임"이라며 "상호 의존하는 네트워크 시대에는 가위바위보가 문명의 독을 정화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저작인 '보자기의 인문학'을 통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물건을 쌀 수 있는 보자기에 주목해 동아시아 문명론을 설파했다.

고인은 한국과 일본에서 유독 많이 사용된 보자기에 대해 "커다란 물건과 작은 물건, 둥근 물건과 네모난 물건을 모두 유연하게 감싼다"며 "쌀 수도 있고 입을 수도 있으며 묶을 수도 있는데, 사용한 후에는 다시 아무것도 없는 평면으로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대 문명을 사실상 주도한 서구와 차별화되는 동아시아 문화를 끊임없이 파고들고자 했고, 그 안에 현실의 문제점을 극복할 대안이 있다고 믿었다.

2017년 한 심포지엄에서 고인은 인간이 인공지능에 이길 수는 없지만, 동양의 생명존중 사상으로 인공지능을 잘 활용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인간은 말과 경주하지 않는다"며 "말의 등에 올라타 이용하는 존재로서 인마일체(人馬一體)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psh59@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
오래 머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