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탐구생활] ⑥ '자연의 콩팥' 습지…철새·천연기념물 서식하는 생태계 보고
송고시간2022-02-23 07:00
국내 람사르습지 24곳…김해 화포천습지·화성 매향리 갯벌 등 올해 신청 예정
습지 둘러싼 보호 vs 개발 갈등 여전…습지 보전 위한 꾸준한 노력도 필요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서울 여의도와 마포 사이에 떠 있는 밤섬은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지나쳤을 '밤'(栗)을 닮은 초록빛 섬이다.
한때 수백명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으며, 인간의 개발로 파괴되기도 했던 이곳은 이제 인간의 것이 아니다.
흐르는 한강 물 덕분에 자연스럽게 예전의 모습을 되찾은 밤섬을 보호하기 위해 서울시는 1999년 밤섬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하고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밤섬은 해마다 겨울 철새 수십 종이 몰려드는 철새 도래지이자 매·흰꼬리수리 등 법정보호종 및 천연기념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寶庫)로 자리 잡았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2년 국내 18번째 람사르습지에 등록됐다.
이처럼 습지는 우리와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형성된 낯선 땅이 아니다.
생각보다 우리와 가깝게 있고, 우리가 일상에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 국내 람사르습지, 대암산용늪·창녕 우포늪·장항습지 등 24곳
우리나라는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습지보호지역 등 여러 제도를 마련하고, 1997년 습지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을 촉구하는 국제협약인 '람사르협약'에도 가입했다.
1971년 2월 이란의 람사르에서 채택된 람사르협약은 희귀하고 독특한 습지 유형을 보이거나 생물다양성이 풍부해 국제적으로 보전 가치가 있는 습지 지역을 지정해 보호하자는 내용의 협약이다.
올해 기준으로 172개 국가의 습지 총 2천438곳이 람사르습지로 등록돼 있다.
국내에는 1997년 강원 인제군 대암산 용늪을 시작으로 경남 창녕군 우포늪, 충남 태안군 두웅습지, 전북 고창군 운곡습지 등 모두 24곳이 '람사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1호 람사르습지인 대암산 용늪은 희귀한 식물과 생물들이 살고 있어 생태학적으로도,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 유일 고층 습원으로, 4천500년간 꾸준히 퇴적된 이탄층(泥炭層)과 멸종위기 2급 식물인 기생꽃, 끈끈이주걱, 삿갓사초, 금강초롱, 비로용담, 동자꽃 등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한다.
국내 람사르습지 중 가장 규모가 큰 습지는 창녕 우포늪이다.
우포늪은 창녕군 유어면, 이방면, 대합면, 대지면 등 4개 면에 걸쳐있는 총면적 250억5천㎡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늪지다.
800여종의 식물류, 209종의 조류, 28종의 어류, 180종의 저서성대형무척추동물, 17종의 포유류 등 수많은 생물이 서식하며, 천연기념물이자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돼있기도 한다.
2018년에는 제13차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세계 최초로 람사르습지도시로 인증받았다.
람사르습지도시는 습지 보전과 현명한 이용에 참여하는 도시 또는 마을을 3년마다 열리는 람사르 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인증하는 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창녕 외에도 제주·순천·인제 등이 람사르습지도시로 인증됐다.
가장 최근에는 고양 장항습지가 람사르습지로 신규 등록됐다.
한강 하구에 있는 장항습지에는 저어새, 흰꼬리수리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 9종(조류 7종)을 포함해 총 427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
환경부 소관 람사르습지 17곳 중 우포늪(8천652㎢) 다음으로 규모(5천956㎢)가 크며, 대륙 간 이동 철새 중간 기착지이자 서식지로 매년 3만여 마리의 철새가 도래한다.
국내에서는 람사르습지와 별개로 '자연 상태가 원시성을 유지하거나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지역 등 특별히 보전할 가치가 있는 습지'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해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
환경부, 해양수산부, 지자체 등이 지정할 수 있으며, 현재 전국 총 49개 지역이 지정돼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람사르습지는 국제적인 기준을 맞춰야 하는 등 지정이 까다롭기 때문에 더 넓은 구역을 습지보호지역으로 별도로 지정해 보전하려는 것"이라며 "환경부에서는 김해 화포천습지를, 해수부에서는 화성 매향리 갯벌을 올해 추가로 람사르습지로 등록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경기 고양시 소재 '장항습지'가 람사르협약 사무국으로부터 우리나라 24번째 람사르 습지로 공식 인정받았다. [환경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 습지 둘러싼 환경보호 vs 개발 논리 갈등
습지가 보전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생태계의 보고라는 것은 모두 인정하지만, 막상 그 지역을 언제까지, 그리고 어디까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놔둘 수 있는지를 두고는 갈등이 종종 일곤 한다.
최근에는 시흥시가 추진하는 배곧대교 건설 사업이 송도 람사르습지를 통과해 환경을 파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중단됐다.
배곧대교 건설 사업은 배곧신도시와 송도국제도시를 연결하는 길이 1.89㎞, 왕복 4차로의 교량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6.11㎢ 넓이인 송도 람사르습지는 수도권 최대 규모로, 저어새·검은머리갈매기 등 세계 멸종위기종이 서식해 보전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아 2014년 람사르습지로 지정됐다.
이번 사업에 대해 한강유역환경청은 전략·소규모 환경영향평가 결과 "환경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며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시흥시는 습지보전법 등에 근거해 핵심 습지를 피하는 노선을 정하고, 대체 습지를 조성하도록 했는데 이런 부분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행정심판을 제기할 예정이다.
하지만 송도습지보호지역·람사르습지보전대책위원회 등 인천 환경단체들은 "시흥시는 이미 제3경인고속도로를 이용 중이고, 제2순환고속도로사업이 추진되는 등 시흥과 송도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들이 있음에도 10분 더 빨리 가기 위해 법과 국제협약은 무시한 채 배곧대교 건설을 추진했다"며 사업 계획을 전면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인간의 손길이 닿는 만큼 습지를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지난해에는 창녕 우포늪에서 붕어 떼가 대규모로 폐사해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원인 조사에 나섰다.
낙동강유역청은 수온 등으로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질병이 영향을 줬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하고 전문 용역을 추진해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습지보호지역의 경우 환경청에서 분기별로 모니터링을 하면서 관리하고, 습지센터가 속한 국립생태원에서 5년 단위로 정밀 조사를 한다"며 "창녕 우포늪에 대해서는 습지센터에서 올해부터 장기 모니터링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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