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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도광산 세계유산 추천서에 '조선인 강제노동' 제외

송고시간2022-02-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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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사도(佐渡) 광산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면서 대상 기간을 일제 강점기를 제외한 19세기 중반까지로 삼은 것으로 14일 파악됐다.

일본 정부는 이달 1일 사도 광산 추천서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한 후 대상 기간 등에 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일제 강점기가 핵심에서 제외됐다는 것이 일본 당국자의 설명을 통해 확인됐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 강제 동원이라는 가해의 역사를 감춘 채 세계유산 간판만 노리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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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9세기 기술이 세계유산으로서 가치"…일제강점기 사실상 배제

역사왜곡 티 덜 나게 시대표현 없이 '사도섬 금광' 명칭 사용

강제노동 부정은 군함도 등재 때와 마찬가지…역사 논쟁 불가피

메이지 시대 이후 건설된 사도광산 갱도
메이지 시대 이후 건설된 사도광산 갱도

(사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사도광산을 대표하는 아이카와 금은산에서 메이지시대 이후 건설된 갱도. 구불구불하고 좁은 에도시대 갱도와 달리 비교적 넓게 매끈하게 뚫려 있다. 사도광산에는 2천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조선인이 태평양전쟁 기간 일제에 의해 동원돼 가혹한 환경에서 강제노역했다. 일본 정부는 이런 사도광산의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천을 검토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는 이에 반발하고 있다. hojun@yna.co.kr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 정부가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사도(佐渡) 광산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면서 대상 기간을 일제 강점기를 제외한 19세기 중반까지로 삼은 것으로 14일 파악됐다.

일본 정부는 이달 1일 사도 광산 추천서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한 후 대상 기간 등에 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일제 강점기가 핵심에서 제외됐다는 것이 일본 당국자의 설명을 통해 확인됐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 강제 동원이라는 가해의 역사를 감춘 채 세계유산 간판만 노리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 전경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 전경

[유네스코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일본 정부 관계자는 유네스코에 제출한 사도 광산 추천서의 대상 기간에 관해 "16세기에서 19세기 중반에 걸친 (사도 광산의) 생산 기술이나 생산 체제 등에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추천했다"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말했다.

사도시와 니가타(新潟)현 등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해 온 지자체나 일본 정부는 앞서 공개한 설명 자료에서 '16∼19세기', '에도(江戶) 시대(1603∼1867년)' 등으로 기간을 한정해 사도 광산의 가치를 설명한 바 있다.

이 관계자는 사도 광산을 세계유산으로 선정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일본이 주장하는 대상 기간이 추천서를 제출할 때 달라지지 않았다는 취지로 덧붙였다.

그는 한국 측이 반발하는 상황임에도 일제 강점기를 추천서에 반영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사도 광산의 세계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는 대상은 주로 에도시대"라고 답했다.

세계유산이 될만한 가치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한반도 출신 노동자가 사도 광산에서 일했다'는 사실이 추천서나 관련 자료에 언급됐느냐는 질문에는 "추천서는 비공개이므로 대답을 삼가겠다"고 반응했다.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 군함도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 군함도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명확한 답변을 회피했으나 제출된 자료에는 조선인 강제 노동이 아예 기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설령 조선인에 관한 내용을 담았더라도 가해의 역사를 직시하는 방식은 아닌 것으로 풀이된다.

제반 상황을 종합하면 일본 정부는 조선인 강제 노역의 역사를 외면하는 방식으로 사도 광산을 세계유산으로 추천한 셈이다.

이는 일본 정부와 정치권의 움직임에서도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다.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사도 광산을 세계유산으로 추천하는 것에 한국이 반대한 것 등에 관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한국의 독자 의견'이라고 지난달 28일 규정한 바 있다.

군함도의 훼손된 건물
군함도의 훼손된 건물

(나가사키=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동원 현장인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의 건물들이 비바람 등에 장기간 노출돼 훼손돼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은 "일본으로서는 한국 측의 독자 주장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의견을 한국 측에 표명했다"고 같은 날 말했다.

한국의 비판에 대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역사전(戰)을 걸어 온 이상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날이 선 반응을 보이는 등 집권 자민당에서 강경 대응 목소리가 커진 상황이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일본 정부나 유네스코 측이 사도 광산 추천서를 정식으로 공개하지 않은 상태이며 내용을 당장 상세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군함도 약속 불이행 지적한 유네스코
군함도 약속 불이행 지적한 유네스코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위원회가 2021년 7월 31일자로 내놓은 결정문에 군함도를 비롯한 세계문화유산에 관해 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 동원 등을 제대로 알리는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아울러 일본과 유네스코 측의 논의 과정에서 추천서 내용이 일부 변경될 여지는 남아 있는 것으로 본다고 당국자는 덧붙였다.

한가지 눈에 띄는 점은 2015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군함도(정식 명칭 하시마·端島)를 세계유산에 추천할 때처럼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노골적인 명칭을 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외무성의 관계자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사도섬 금광'(Sado island gold mines)이라는 이름으로 추천서를 제출했다.

2010년 사도 광산을 세계유산 추천 잠정 목록에 올릴 때는 '금을 중심으로 하는 사도 광산의 유산군(群)'(The Sado complex of heritage mines, primarily gold mines)이라는 이름을 썼는데 이번에 추천서를 내면서 명칭이 달라진 것이다.

일본은 2015년 군함도 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할 때는 '메이지(明治)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Sites of Japan's Meiji Industrial Revolution)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메이지 시대는 1868년부터 1912년까지 약 44년에 걸친 기간이다.

일본 외무성 청사
일본 외무성 청사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지난해 2월 12일 강창일 주일본한국대사가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당시 외무성 사무차관을 면담하고 떠난 후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소재 외무성 청사에 곳곳에 조명이 밝혀져 있다.

당시 일본 정부는 대상 기간을 1850년대부터 1910년까지로 한정해 조선인 강제 노역의 역사를 애초에 배제하려고 했는데 이런 의도가 명칭에서 뻔히 들여다보였다.

일본 정부는 일제 강점기 징용이 강제노동에 해당한다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한국의 사도 광산 비판을 수용할 수 없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일본이 강제노동의 역사를 부정한다는 점은 군함도 등재 때와 마찬가지이며 사도 광산에 어떤 명칭을 사용했는지와 상관없이 역사 논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심사 과정이 통상적인 절차를 밟는다면 등재 여부는 내년 여름쯤 최종 결정된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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