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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유물에 없는 역사 정보, 사람 뼈와 미라에 남아 있죠"

송고시간2022-02-0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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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리학 연구자인 신동훈 서울대 의대 교수는 최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사람 뼈에는 당대에는 기록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의미 있는 정보와 유물에서 찾아낼 수 없는 소중한 정보가 남아 있다"며 "건강 상태와 스트레스도 인골과 미라를 통해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미라와 인골 연구가 선진국에서는 100년 넘게 이어졌지만, 국내에서는 역사학계와 고고학계는 물론 의학계에서도 직계가 아닌 방계로 인식돼 왔다"며 "맨바닥에서 시작해 이제야 어느 정도 연구 방법을 확립했다"고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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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 교수·인골 연구자들 "맨바닥서 출발해 이제야 연구방법 확립"

법률 개정으로 인골도 문화재 인정…"인간 존엄성 잊지 말아야"

신동훈 서울대 교수와 미라·인골 연구자들
신동훈 서울대 교수와 미라·인골 연구자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신동훈 서울대 의대 교수(가장 왼쪽)와 미라·인골 연구자들. 신 교수 옆으로 오창석 교수, 이혜진 감식관, 홍종하 교수가 서 있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지난해 경주 탑동 유적에서는 신장이 180㎝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 남성 인골(人骨)이 발견됐다. 약 1천500년 만에 빛을 본 신라 남성은 큰 키와 비교적 온전한 형체로 화제를 모았다.

지금은 통계가 발달해 평균 신장과 체중을 쉽게 검색할 수 있지만, 역사 기록을 적은 고문헌에는 일반인의 몸집에 관한 내용이 거의 없다. 옛사람의 신체적 특성이 고스란히 남은 인골이 중요한 이유다.

고병리학 연구자인 신동훈 서울대 의대 교수는 최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사람 뼈에는 당대에는 기록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의미 있는 정보와 유물에서 찾아낼 수 없는 소중한 정보가 남아 있다"며 "건강 상태와 스트레스도 인골과 미라를 통해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20년간 미라와 인골 연구라는 한 우물을 팠다. 지난해 출간된 2권짜리 두툼한 영문 학술서 '미라 연구 편람'(The Handbook of Mummy Studies)에는 그가 쓴 글 10여 편이 담겼다. 신 교수는 공동 편집자로도 이름을 올렸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비로소 우리 사회에 인골과 미라를 연구할 여건이 생긴 것 같아요. 미라 연구 계기가 있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데, 특별한 건 없었어요. 저도 정상적인 사람이랍니다."

신 교수는 "미라와 인골 연구가 선진국에서는 100년 넘게 이어졌지만, 국내에서는 역사학계와 고고학계는 물론 의학계에서도 직계가 아닌 방계로 인식돼 왔다"며 "맨바닥에서 시작해 이제야 어느 정도 연구 방법을 확립했다"고 자평했다.

그는 "후배들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고 거듭 역설했다. 인터뷰에는 신 교수와 함께 연구 활동을 한 후배 학자인 오창석 을지대 교수, 홍종하 경희대 학술연구교수, 이혜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감식관도 동석했다.

오 교수는 지금까지 10구가 넘는 미라를 분석했다. 2006년 경남 하동 발굴 현장에서 미라를 처음 만났다. 마침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이었다. 400년 전쯤 묻힌 미라를 보고는 표정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 미라에서는 '참굴큰입흡충'이라는 기생충이 나왔다. 국내에서 1980년대에야 존재가 알려진 기생충이 조선시대 미라에서 확인된 것이다. 하동은 오늘날 굴이 거의 생산되지 않는 지역임에도 자연산 참굴을 숙주로 하는 기생충이 나타난 점이 특이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연구자들이 미라보다는 시신을 감싼 옷감에 관심이 더 많았다"며 "미라에는 각각의 스토리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학부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지만, 문헌에 기록되지 않은 개인의 이야기를 탐구하고 싶다고 생각해 미라와 인골 연구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미라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크게는 이집트에서처럼 일부러 제작한 미라와 조선시대 미라처럼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미라로 나뉜다"며 "우리나라 미라 중에는 위장에 음식물이 남은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인골 연구를 통해 선인들의 식생활은 얼마나 파악할 수 있을까.

홍 교수는 "쌀을 많이 섭취했는지, 아니면 잡곡을 섞어 먹었는지 정도는 추정할 수 있다"며 "치아를 보면 태어난 곳과 죽은 곳이 다른지도 알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골을 주로 연구하는 이 감식관은 "한국전쟁 때 사망한 유해를 보면 국군으로 짐작되는 인물의 치아와 미군으로 보이는 사람의 치아는 현저히 다르다"며 "동일 나이대라고 했을 때 국군 치아에서는 충치가 거의 관찰되지 않지만, 미군 치아에는 충치가 두세 개씩 있다"고 했다.

"미군이 치아를 더 잘 닦았을 테니 충치가 적을 듯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사람보다 농사짓는 사람의 치아에서 충치가 더 많이 나옵니다. 치석은 탄수화물을 먹어야 생기니까요."(이혜진)

신동훈 서울대 교수와 미라·인골 연구자들
신동훈 서울대 교수와 미라·인골 연구자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문화재 발굴 현장 등에서 나온 인골과 미라를 연구하는 학자들. 왼쪽부터 홍종하 교수, 이혜진 감식관, 신동훈 교수, 오창석 교수. 홍 교수와 이 감식관이 '미라 연구 편람'을 들고 있다.

미라와 인골 연구는 매장문화재법 일부 개정안이 지난달 공포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개정안은 지금까지 문화재에 포함되지 않았던 미라와 인골을 역사·학술 자료로 규정하고, 전문기관을 정해 연구·보관 비용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신 교수는 "일본이나 중국에는 고인골이 수천 개씩 있지만, 우리나라는 토양이 산성이어서 인골이 많지 않고 연구의 법적 기반도 없었다"며 "인골과 미라가 많아지면 우리 조상님이 사셨던 시기의 환경이 어떠했는지 분석할 수 있고, 중국·일본·러시아와 비교 연구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미라나 인골이 평범한 유물이 아닌 만큼 연구하면서 인간의 흔적임을 잊지 않고 존엄성을 지키려 노력한다고 역설했다.

신 교수는 물론 다른 연구자들도 인터뷰 도중 미라나 인골을 '뵀다'라거나 '모셨다'고 표현했다. 조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묵념하고, 미라 사진을 되도록 외부에 유출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문화재보호법 개정이 반갑기는 하죠. 인골 연구 여부를 결정할 때 전문가 2명 이상이 자문하게 돼 있는데, 되도록 많은 사람이 참여하면 좋을 것 같아요. 장기적으로는 인골과 미라를 연구하는 전문기관이 설립되고, 고고학 유물처럼 데이터베이스도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오창석)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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