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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제주문화] (28)"10년은 앞당긴 듯" 코로나19가 바꾼 제주 설 풍속

송고시간2022-02-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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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설 명절 풍속도가 바뀌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세상의 변화 탓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제주의 독특한 명절 풍속은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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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마을 공동체 위한 독특한 풍속…세대 갈등 속 사라져

"전통 이어가고 싶지만…" vs "다른 방식 모색해야 할 때"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의 설 명절 풍속도가 바뀌었다.

판매 시작 전부터 긴 줄…설 연휴 승차권 예매 (CG)
판매 시작 전부터 긴 줄…설 연휴 승차권 예매 (CG)

[연합뉴스TV 제공]

지난 1일 제주에서 일가친척들이 모여 집마다 돌아다니며 합동으로 차례를 지내고 음복을 하며 새해를 맞이하는 모습을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세상의 변화 탓이다.

코로나19 발생 첫해만 하더라도 일시적인 현상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추석과 설, 다시 돌아온 추석, 그리고 이번 설까지….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제주의 독특한 명절 풍속은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다.

전통문화를 현대에 맞게 수용해 그 의미를 되새기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 신과 조상을 섬기는 제주의 명절

우리나라의 전통 4대 명절이라 하면, 설·한식·단오·추석을 일컫는다.

이 중 현대에 접어들면서 한식과 단오의 비중은 현격히 낮아진 반면, 설과 추석은 한국인이 가장 중시하는 양대 명절로 거듭났다.

제주에서도 설과 추석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다른 지역과 달리 독특한 풍습이 남아 있다.

제주에서는 설을 일컬어 '정월 멩질', 추석을 '팔월 멩질'이라 한다. '멩질'은 명절을 뜻하는 제주 사투리다.

설날 아침 일찍부터 8촌 이내의 가까운 친족들이 모여 웃어른에게 먼저 세배를 하고 조상에 차례를 지낸다.

제주의 차례 문화
제주의 차례 문화

[연합뉴스 자료사진]

차례는 고조부모제·증조부모제·조부모제·부모제 순으로 4대를 모시며, 기일에 제사를 지내는 것과 똑같이 예를 갖춰 진행한다.

다른 지역에서처럼 종갓집을 중심으로 한 집에서 모든 차례를 지내는 것은 아니다.

제를 마치고 음복을 한 뒤 다른 친족 집으로 이동해 다음 조상 차례를 지내는 방식으로 하루에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제를 지낸다.

제를 지내는 방식은 다른 지역과 큰 차이는 없지만, 제주에선 독특하게도 조상뿐만 아니라 신(神)을 위한 특별한 제를 올린다.

바로 문전코시(門前告祀, '문전제' 또는 '문제'라고도 함)다.

'신들의 고향'이라 불리는 제주에는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관장하는 1만8천에 이르는 수많은 토속신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문전신'이다.

가택신 중에서도 문 앞을 지키며 집 안으로 들어오는 사악한 기운을 막아주는 신이다.

대문 앞에 1/3 정도로 축소된 상차림을 마련해 조상이 드나드는 길목을 관장하는 문전신에게 먼저 제를 올리는 것이다.

문전제는 유교식 제사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무속의 의례에서 유래된 제사다.

무속적 풍속과 유교적 제례 방식이 자연스럽게 결합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지역이 바로 제주다.

제주 문전제 모습
제주 문전제 모습

[제주학연구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처럼 집마다 모든 차례를 지내고 음복을 하며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한나절 또는 그 이상 걸리기도 했다.

이를 제주말로 '멩질 먹으러 간다'고 한다. 제삿날 '식게 먹으러 간다'는 표현과 비슷하다.

이러한 풍습은 왜 생겨난 것일까.

향토사학자들은 척박한 제주의 자연환경을 이겨내며 혈연 중심의 가족공동체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바람 많고, 돌 많고, 각종 자연재해가 해마다 이어지는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제주 사람들은 조상과 마을신을 잘 섬겨야 그들의 보호 속에 가정과 마을이 평안해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농업과 어업이 주된 산업인 제주에서는 노동력을 위해 친족간 유대를 강화해야 했고, 마을 주민 간 협동이 중요했다.

특히, 제주에서는 장남을 중심으로 '장자상속'의 관행이 아닌 모든 자식에게 골고루 재산을 나눠주는 '균분상속'의 풍습을 이어오고 있다.

부모의 재산을 골고루 나눠 받았으니 부모가 맡아 지내던 조상의 제사 역시 형제들끼리 나눠 지냈다.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는 제사는 물론 명절의 제사도 나눴는데 이를 통해 비용이 많이 드는 제사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한 마을에서 분가해 독립적으로 생활하던 자식들은 제사와 명절 때만 되면 모두가 함께 모였고, 이러한 풍습은 일가 친족으로 확대됐다.

중요한 제사 때에는 시집간 딸과 사위는 물론 고인의 친구들까지 참여하기도 하는 등 제주 사람들은 가족공동체와 마을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했다.

같은 조상을 가진 친족 집단인 씨족(氏族)사회의 전통, 1만8천 신을 신성하게 여기는 무속신앙의 전통이 남아있는 곳이 바로 제주다.

신들의 고향 제주
신들의 고향 제주

[연합뉴스 자료사진]

◇ "세상이 변했다. 변화 어쩔 수 없어"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늙은 사람들이 붙잡아봐야 어쩔 수 있나요."

제주 토박이 K(84)씨는 변화하는 세상이 안타깝고 야속한 듯 한마디를 내뱉었다.

지난해 추석 때 K씨 친족들은 오랫동안 이어오던 제주의 명절 풍속을 중단하기로 했다.

각자 집안에서 맡은 차례를 지내면서도, 명절에 친족 집을 돌아다니며 제를 지내고 음복을 하는 행위를 앞으로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소위 '멩질 먹으러 간다'는 말은 앞으로 K씨 집안에서 사라지게 됐다.

코로나19 탓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가족 구성원들의 불만이 젊은 세대에서부터 불거져 나왔기 때문이다.

서울과 경기 등 다른 지역에 사는 젊은 세대들이 명절에 제주를 찾는 횟수는 해마다 줄어들었다.

웃어른들만 잊지 않고 만나 친족간 교류를 할 뿐 젊은 세대 간 교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단절됐다.

이 때문에 명절에 만나더라도 낯설고 어색한 대면 접촉 때문에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젊은 세대들이 많아졌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비롯한 여성들은 명절 때마다 차례상을 차리느라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설 연휴 귀성객 "제주로"(CG)
설 연휴 귀성객 "제주로"(CG)

<<연합뉴스TV 제공>>

반면, 남성들은 반나절 동안 여러 친족 집을 돌아다니면서 제를 올리고 음복을 하면서 4∼8번 식사를 해야 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반복됐다.

과거 친족간 유대를 강화하며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풍속이 세대가 바뀌면서 불합리하고 불편한 풍속이 돼버린 것이다.

이는 비단 K씨 집안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K씨의 사례처럼 영영 중단한 곳도 늘어나고 있고, 코로나19 동안 잠정 중단한 곳도 많다.

사람들도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명절을 간소하게 보내게 되자 젊은 세대들은 물론 여성들은 오히려 "코로나19가 고맙다"라는 반응까지 보인다.

사람들은 지난 설 연휴 기간 가족끼리 오붓하게 나들이 가거나 집에서 모처럼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일상을 회복하더라도 앞으로 예전처럼 명절을 보내는 것이 어려울 것이란 말도 나온다.

여전히 기존의 전통을 고수하는 기성세대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어쩔 수 없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K씨는 "제주 고유의 풍속을 끝까지 이어가고 싶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는데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며 "언젠가 올 변화라 생각했지만, 코로나19가 10년은 앞당긴 듯 하다.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인 M(35)씨는 "이제는 친척들보다 오히려 직장 동료나 친구가 더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 예전처럼 한마을에서 함께 살며 돕고 살 때는 과거의 전통이 필요했겠지만, 모든 것이 변한 지금까지 이를 강요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다른 방식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세상의 변화에 따른 전통문화의 단절, 변형은 거스를 수 없는 사회현상이다.

다만, 전통문화를 현대에 맞게 수용해 형식을 바꾸고 그 의미와 정신을 되새기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귀성길(CG)
귀성길(CG)

<<연합뉴스TV 제공>>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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