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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 내비게이션] '대한민국 나성특별시'를 아시나요?

송고시간2022-03-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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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 소득이 세계 하위권이던 당시 미국으로 떠나던 사람들은 세계 최강국을 향한 동경과 풍요로운 환경 등에 이끌려 낯설고 물선 곳으로 삶의 터전을 바꾸는 인생 결단을 내렸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데다 정서와 시스템도 다른 이역만리 타국에 정착하기가 쉬웠을까?

지구촌 어디에 있든 원하는 시간에 영상통화나 메신저로 대화 가능한 요즘은 상상조차 어려울 만큼 통신 수단이 형편없던 시절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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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샘트리오 '나성에 가면'…아메리칸 드림 일구던 '제2의 고향'

황혼의 로스앤젤레스 도심
황혼의 로스앤젤레스 도심

[게티이미지]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1970년대와 1980년대는 우리나라에서 미국 이민 붐이 불었던 때다.

이 시기 매년 수만 명이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대한민국 국민 소득이 세계 하위권이던 당시 미국으로 떠나던 사람들은 세계 최강국을 향한 동경과 풍요로운 환경 등에 이끌려 낯설고 물선 곳으로 삶의 터전을 바꾸는 인생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데다 정서와 시스템도 다른 이역만리 타국에 정착하기가 쉬웠을까? 많은 이민자가 블루칼라 업종에 종사하거나 세탁소와 마트 등 소규모 노동집약형 자영업을 하면서 눈물 젖은 빵을 먹어야 했다.

삶이 고단하고 팍팍할수록 향수병도 심해진다. 고국에 두고 온 친지나 친구들이 그리웠지만,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를 듣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지구촌 어디에 있든 원하는 시간에 영상통화나 메신저로 대화 가능한 요즘은 상상조차 어려울 만큼 통신 수단이 형편없던 시절이어서다. 국제전화 요금은 웬만한 이는 감당하기 힘들었고, 198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엔 유선전화 한 대 없는 집이 많았다.

그래서 많은 미국 이민자들은 국제우편으로 편지나 엽서를 보내 고국의 그리운 이들과 소식을 주고받았다. 연락하는 방법이 어려울수록, 그리고 연락이 닿는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반가움과 애틋한 감정은 배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펜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를 읽으며 그들은 웃고 울었다.

하늘에서 본 메트로 LA
하늘에서 본 메트로 LA

[게티이미지]

◇ 나성으로 떠난 그대,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이런 애틋한 정서는 세샘트리오가 1978년 발표한 노래 '나성에 가면'의 첫 소절에 잘 투영돼 있다.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이 강렬한 한 소절은 당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가족·친지가 미국 이민을 하지 않았더라도 감정 이입이 절로 될 만큼 원초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가사와 멜로디였다. 노래는 크게 히트했고 남녀노소 흥얼거리는 유행가가 됐다. 당시로는 매우 드물게 라틴 음악을 하던 세샘 트리오는 이 노래 하나로 유명 가수가 됐다. 영화 '수상한 그녀'(2014)의 삽입곡으로 리메이크된 덕분에 이 노래를 아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요즘 세대가 들으면 "나성은 뭐고, 편지는 또 뭐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나성(羅城)은 미국 서부 대도시 로스앤젤레스를 한자로 음차(音借)한 말이다. 원제목은 'LA에 가면'이었는데, 외국어 사용을 최소화하자던 당시 정책에 따라 '나성'으로 바꿔썼다고 한다. 유럽은 '구라파', 프랑스는 '불란서'로 부르던 시절이었다.

'나성에 가면'은 라틴풍 음악답게 경쾌한 리듬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사는 애절한 이별 노래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 나라로 떠나보내는 화자가 함께 가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계속 소식을 전해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을 담았다.

시적 비유가 효과적일 때도 있지만 어떨 땐 직설적으로 솔직하게 말하는 화법이 마음속에 더 와닿는다. 옛날 노래는 그렇게 담백한 말로 심금을 울렸다.

'함께 못 가서 정말 미안해요/ 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줘요/ 안녕 안녕 내 사랑'. 덤덤한 듯 말하지만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모를 정인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흠뻑 묻어난다.

LA 코리아 타운
LA 코리아 타운

[게티이미지]

◇ 한인 이민사의 상징 로스앤젤레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서부 최대 도시인 로스앤젤레스는 한인 이민사를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이주해간 미국 도시이면서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코리아타운'이 있다. '대한민국 나성시'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한국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의 뇌리엔 지금도 '나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한인이 LA 코리아타운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영어를 잘하지 못해도 사는 데 큰 불편함이 없다고 한다.

한인의 미국 이민 역사는 20세기 초반 수년에 걸쳐 조선인 수천 명이 이민선을 타고 하와이로 건너가 사탕수수 재배 노동자로 일하게 된 게 시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미국 정착과 세력 확장이 이뤄진 장소가 바로 LA이다.

특히 1960년대 중반 미국이민법이 개정되자 의료인과 유학생 등 '화이트칼라'가 대거 영주권을 취득하면서 한인의 미국 이민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국가기록원 자료에 따르면 1970년 초부터 매년 3만 명가량이 미국으로 터전을 옮겼고, 1985~1987년 3년간에는 연평균 이민자 3만5천 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당시엔 한국이 세 번째로 미국 이민을 많이 보낸 나라로 기록됐으나 이후 한국의 비약적 경제 발전과 맞물려 미국 이민자는 꾸준히 감소했다.

1992년 4월 29일 LA에서 발생한 흑인 폭동
1992년 4월 29일 LA에서 발생한 흑인 폭동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 LA 폭동·LA 아리랑·박찬호·류현진

'나성특별시'로 불릴 정도로 한인들이 하나의 세력을 형성한 만큼 LA에 얽힌 사연들도 많다. 미국 이민 한인들의 애환이 집약된 곳이다.

먼저 1992년 4월 말 발생한 LA 폭동이 떠오른다. 인종 차별에 분노한 흑인들의 폭력 소요가 며칠간 이어졌는데 폭행·방화·약탈의 피해는 역설적으로 흑인보다 더 '마이너리티'였던 한인들이 가장 많이 봤다. 코리아타운이 파괴와 약탈의 표적이 됐기 때문이었다. 한인 이민자들은 땀과 눈물로 일군 점포와 회사가 잿더미로 변하는 모습을 망연자실한 채 지켜봐야 했다. 그들의 아메리칸 드림이 물거품처럼 사라져갔다. 지옥 같은 현장에 고립된 채 목숨마저 위협받았으니 얼마나 무섭고 황망했을까.

처음엔 속수무책으로 한인 가게가 털리고 폭행을 당했지만, 징병제 국가 출신인 한인 남성 예비역들이 자경단을 조직해 지휘 체계를 세우고 집총 경계를 서는 등 무력으로 대응하자 즉각 약탈이 잦아들었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LA 폭동 당시 소유한 상점이 불타버린 재미 교포가 잔해를 정리 중이다.
LA 폭동 당시 소유한 상점이 불타버린 재미 교포가 잔해를 정리 중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우리나라에 '미국식 시트콤' 장르를 정착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드라마도 LA 교민 사회를 소재로 했다. 1990년대 중반 방영돼 인기를 끌었던 'LA 아리랑'이다. 스타급 중견 연기자들이 대거 출연했고 이제니, 한고은 등 미국 교포 출신들도 기용했다.

LA 다저스 시절 박찬호
LA 다저스 시절 박찬호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족적을 남긴 박찬호와 류현진도 LA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인 메이저리거 1호인 박찬호와 지금도 현역으로 역사를 쓰고 있는 류현진의 첫 빅리그 소속팀이 바로 로스앤젤레스를 연고지로 한 LA 다저스다. 다저스가 이들을 영입한 건 한인들을 상대로 한 마케팅을 의식한 측면이 있다.

LA 다저스 시절 류현진
LA 다저스 시절 류현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 가난과 눈물 젖은 빵은 옛날이야기라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보니 세샘트리오의 '나성에 가면'이 세상에 나왔던 때와 비교해 많은 것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며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었다. 예전엔 외국에 나가 한국 출신이라고 하면 어디에 있는 나라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지금은 우리 기업들 제품이 일류로 취급받고 세계 각지에 한국 가수들의 열성팬이 있다. 한국 가요나 드라마를 원어로 즐기려고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도 있다.

이제는 LA 외에 뉴욕 인근 뉴저지, 워싱턴DC 인근 북버지니아, 남부 조지아 애틀랜타, 최북단 알래스카 등에도 대규모 한인 타운이 들어섰다. 1970년대만 해도 미국을 간다는 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곳으로 떠나는 듯한 느낌을 줬다. 하지만 국력과 국격이 높아진 것과 비례해 자신감이 넘치는 요즘 우리 젊은이들은 혼자서도 미국 여행을 즐긴다.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고 통신 수단이 발달한 지금은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으로 언제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를 접할 수 있는데, 굳이 느려터진 편지를 보내겠는가. 그래서 저 노래가 더욱 애절하게 느껴진다. 타국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터져 나오는 그리움과 슬픔을 꾹꾹 눌러 참아야 했던 이민 1세대, 그리고 그들이 고국에 남겨놓은 친지들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세샘 트리오 리드 보컬로 활동했던 가수 권성희
세샘 트리오 리드 보컬로 활동했던 가수 권성희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나성에 가면]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사랑의 이야기 담뿍 담은 편지

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줘요

하늘이 푸른지 마음이 밝은지

즐거운 날도 외로운 날도 생각해 주세요

나와 둘이서 지낸 날들을 잊지 말아줘요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함께 못 가서 정말 미안해요

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줘요

안녕 안녕 내 사랑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꽃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어 보내요

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줘요

예쁜 차를 타고 행복을 찾아요

당신과 함께 있다 하면은 얼마나 좋을까

어울릴 거야 어디를 가도 반짝거릴 텐데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함께 못 가서 정말 미안해요

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줘요

안녕 안녕 내 사랑, 안녕 안녕 내 사랑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3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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