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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법 10년] ① 전쟁·박해 피해 전세계서 온 3천500명…"우리도 한국인"

송고시간2022-02-0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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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2012년 2월 10일 난민법 제정 후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난민들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사태와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입국 등을 겪으면서 난민에 무관심했던 한국 사회의 분위기도 바뀌고 있습니다.

난민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지만, 이들이 '한국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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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예멘인', '아프간 기여자' 등 한국사회 정착하는 난민 늘어

'난민 수용 찬성' 여론도 커져…난민들 "직장선 좋은 동료, 동네선 좋은 이웃 되고파"

의사소통 힘들어 단순 육체노동 등 종사…"자긍심 갖고 살도록 도와야"

[※편집자 주: 2012년 2월 10일 난민법 제정 후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난민들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사태와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입국 등을 겪으면서 난민에 무관심했던 한국 사회의 분위기도 바뀌고 있습니다. 난민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지만, 이들이 '한국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갈수록 늘어나는 난민 문제에 어떻게 지혜롭게 대응할지 해법을 모색하고자 연합뉴스는 많은 난민을 만나고 전문가들의 제언을 들은 후 4편의 기획기사를 제작해 차례로 송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대한민국 국민 D+597'

천주교 제주교구 이주사목 '나오미 센터'에서 일하는 라연우(30) 씨의 카카오톡 프로필 바탕화면에 떠 있는 글귀다. 우리 국적을 취득한 지 597일째라는 뜻이다.

난민 출신으로 2019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라연우 씨의 카카오톡 프로필 화면. [본인 제공]

난민 출신으로 2019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라연우 씨의 카카오톡 프로필 화면. [본인 제공]

라 씨는 난민법이 제정된 2012년 한국에 처음 발을 디뎠다. 고국인 시리아의 내전을 피해 제주도로 건너와 난민 신청을 했고,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았다. 2019년에는 귀화 심사를 거쳐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라 씨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시리아에 남아있었다면 징집돼 무고한 시민을 상대로 총을 겨눠야만 했을 것"이라며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고 한국으로 온 이유를 밝혔다.

올해로 한국살이 10년 차인 그는 이주민 지원단체인 나오미 센터에서 난민 관련 사업과 통·번역, 회계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2018년 제주에 입국한 예멘 난민을 돕고자 출입국외국인청과 이주인권단체 등을 오가면서 맺은 인연 덕에 이 일을 맡게 됐다.

천주교 제주교구 이주사목 '나오미 센터'에서 난민 사업 등의 업무를 맡는 라연우(30) 씨. [본인 제공]

천주교 제주교구 이주사목 '나오미 센터'에서 난민 사업 등의 업무를 맡는 라연우(30) 씨. [본인 제공]

라 씨는 "성은 제주 라(羅)씨, 이름은 넓을 연(衍)과 도울 우(禹)로 정했다"며 "넓은 마음가짐으로 다른 이를 도와주면서 살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온 뒤로 국적과 이름뿐 아니라, 생각도 많이 달라졌으니 새로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 외국인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렸고, 진짜 한국인이 되고 싶어 귀화 신청을 했다고 한다.

라 씨만큼이나 그를 둘러싼 주변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그는 "대부분의 난민이 큰 탈 없이 제주에 정착하면서 도민들의 거부감이나 두려움도 많이 사라진 것 같다"며 "직접 만나고 상대하면서 '이들도 평범한 사람'이란 사실을 깨닫게 됐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 제주 예멘인·아프간 특별기여자…우리 사회 뿌리내리는 난민들

10년 전인 2012년 2월 10일 난민법이 제정된 후 라 씨처럼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난민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이 아시아 최초로 도입한 난민법은 난민 신청자에 대한 생계 지원을 비롯해 국제적 수준의 난민 처우 보장 등의 내용을 담았다.

난민에 대해 무관심에 가까웠던 한국 사회는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사태와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입국 등을 겪으면서 '더는 남의 일이 아니다'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집계를 시작한 1994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에서 정식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받은 난민은 인도적 체류자 2천412명, 난민 인정자 1천163명 등 총 3천575명이다.

'인도적 체류 허가'는 난민 인정 사유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고문 등 비인도적 처우로 생명이나 자유 등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근거가 있을 때 내려진다.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심사 결과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심사 결과

[법무부 제공]

난민법이 시행된 이듬해인 2014년 627명을 시작으로 한국에 정착하는 난민들은 매년 수백 명에 달한다.

특히 제주 예멘 난민 사태가 발생한 2018년에는 역대 최다인 651명의 난민이 체류 자격을 부여받았다.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에 따르면 그해 예멘인 484명이 난민 인정 신청서를 냈다. 이 가운데 난민 인정 2명과 인도적 체류 허가 412명 등 신청자의 85.4%에 해당하는 414명이 정식으로 제주에 살 수 있게 됐다.

2018년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아 제주에서 사는 예멘 출신 무함마드 아우다리(왼쪽) 씨와 그의 가족. [본인 제공]

2018년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아 제주에서 사는 예멘 출신 무함마드 아우다리(왼쪽) 씨와 그의 가족. [본인 제공]

무함마드 아우다리(38) 씨는 그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아내와 함께 내전 중이던 모국을 떠나 말레이시아를 거쳐 제주도로 왔다. 곧바로 난민 인정 신청서를 냈고, 같은 해 5월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았다.

말레이시아에서 낳은 장남과 제주에서 얻은 막내딸 등 네 식구가 정식으로 한국에 터전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이후 제주 서귀포시의 한 감귤 농장에 취직해 줄곧 일하고 있다.

아우다리 씨는 "한국에서 보낸 4년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고 밝혔다.

그는 "어느새 장남인 '함자'는 유치원에 입학했고, 막내딸인 '마리아'는 3살이 됐다"며 "아이들이라 그런지 한국말 습득이 빠르고, 나와 아내도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8월 한국 땅을 밟은 아프간 특별기여자들도 지역사회에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 3년간 모국의 한국직업훈련원에서 일했던 자마니 타예브(32) 씨는 탈레반 정권의 박해를 피해 아내와 딸 3명과 함께 한국에 왔다.

최근 임시생활시설인 전남 여수 해양경찰교육원을 퇴소해 인천의 한 플라스틱 제조업체에 취직해 새 보금자리를 일구는 데 여념이 없다.

그는 "얼마 전에 카카오톡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사용법을 익히고 있다"며 "집 주변에 할랄 음식점은 어디 있는지, 슈퍼마켓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일상에 익숙해지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다.

할랄은 이슬람 율법에 의해 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도록 허용된 식품을 말한다.

이어 "일은 어렵고 힘들지만, 직업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라며 "적응을 잘 마쳐서 직장에서는 좋은 동료, 동네에서는 좋은 이웃이 되고 싶다"고 웃었다.

◇ '이웃에 난민이 산다'…낯섦이 익숙함으로 바뀌다

'법질서 준수' 서약하는 국내 인도적 체류 예멘인
'법질서 준수' 서약하는 국내 인도적 체류 예멘인

2018년 10월22일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국내 인도적 체류가 허가된 예멘인들이 '법질서 준수 서약서'를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난민법 제정 후 10년간 크고 작은 난민 문제를 겪어온 우리 사회도 이 같은 변화에 적응해 가는 모습이다.

제주도 출입국외국인청장을 지낸 김도균 제주 한라대 특임교수는 "제주 난민 사태의 가장 큰 의미는 난민에 대해 전국민적인 관심을 모았다는 것"이라며 "이전까지 먼 나라 이야기였던 난민이 '우리의 문제'로 인식됐고, 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화두를 던졌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다행히 문제를 일으킨 난민이 거의 없이 무사히 안착하면서 난민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꿔놓는 데 일조했다"고 분석했다.

2020년 12월 유엔난민기구(UNHCR)가 전국 18세 이상 남녀 1천1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33%가 '난민 수용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이는 제주 예멘 사태가 발생한 2018년 24%에 비해 9%포인트 올라간 수치다. 같은 기간 '반대한다'는 응답자는 56%에서 53%로 낮아졌다.

'재정착 난민'이 모여 사는 경기 김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 씨는 "3∼4년 전만 해도 난민이 손님으로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불안했다"며 "이제는 '반찬에 돼지고기 빼죠?'라고 먼저 물어볼 정도가 됐다"고 전했다.

재정착 난민은 법무부 심사를 통해 국내 체류 인정을 받은 게 아닌, 유엔난민기구(UNHCR) 추천을 받아 서류와 면접 심사를 거쳐 유입된 난민을 뜻한다. 2020년까지 7차례에 걸쳐 수용된 재정착 난민은 170여 명이다.

업사이클링 작가 김지환(45) 씨가 작업을 마친 후 자신과 함께 일한 제주 난민과 남긴 기념사진. [본인 제공]

업사이클링 작가 김지환(45) 씨가 작업을 마친 후 자신과 함께 일한 제주 난민과 남긴 기념사진. [본인 제공]

제주 바닷가의 쓰레기를 활용해 예술 작품을 만드는 업사이클링 작가 김지환(45) 씨는 지난해 추석에 예멘 출신 난민 A씨와 손발을 맞춰 목공 작업을 했던 시간이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고 한다.

김 씨는 "일손이 부족하던 차에 지인의 소개로 A씨와 열흘 정도 함께 일을 했는데, 그만큼 성실한 사람은 처음 봤다"며 "내가 '좀 쉬었다 하자'고 부탁할 정도로 최선을 다해 일했다"고 전했다.

그는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A씨를 대하는 시선이 나도 모르게 바뀌었다"며 "난민 역시 제주도의 다양한 풍경 중 하나로 자리 잡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이어 "다만 (난민들이) 남들이 고되다는 이유로 꺼리는 농사일이나 산업 현장 등에 주로 종사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는 하다"고 덧붙였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이일 변호사는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는 새터민에 비해 난민은 의사소통이 힘들고, 지원 혜택도 덜하다"고 전했다. 이들이 일할 수 있는 분야가 단순 육체노동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학술지 '공익과 인권'에 실린 '대한민국 체류 난민의 취업 실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난민 인정자 97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건설 현장 등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가 절반에 육박했다. 무직자도 18.5%에 달했다.

이 변호사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이민자의 경우 범죄나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며 "이들도 '한국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살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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