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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귀천' 천상병 시인 태어나다

송고시간2022/01/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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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시인 천상병의 '귀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연(聯)입니다.

1930년 1월 29일 일본 효고현 히메지시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광복을 맞아 귀국했습니다. 마산중학교에 다닐 때 일찌감치 '시인'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군 통역관으로 6개월 근무했다고 하네요. 전쟁중이던 1951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해 다른 시인들과 함께 동인지 '처녀'를 발간했습니다.

1952년에는 '문예'지에 '갈매기'가 추천을 완료받아 시인으로 정식 등단했습니다. 이후 '나는 거부하고 저항할 것이다'를 비롯한 평론을 발표하는 등 시 문학뿐만 아니라 평론에도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1955년 대학 4학년때 중퇴한 뒤 외국서적도 몇 권 번역했습니다. 특히 1964년에는 김현옥 당시 부산직할시장의 공보실장으로 재직했는데, 이는 생애에 월급쟁이로 생활한 유일한 이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유로운 성향으로 돌아다니기를 좋아했기에 2년만에 그만뒀습니다.

1960년대 천상병은 주로 명동 거리를 드나들며 또래 문학인들과 어울렸습니다. 지인들의 집을 돌아다니며 더부살이를 하거나 여인숙에 묵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공안사건에 휘말립니다.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사건에 연루돼 6개월간 옥고를 치르게 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전기고문을 받았는데요.

그 후유증으로 자식을 갖지도 못하게 되고 치아도 상했으며 정신질환까지 앓게 됐습니다. 30여년간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는 후유증으로 고통받던 1970년 '귀천'을 발표했습니다. 귀천을 비롯해 이 시기에 죽음을 소재로 한 시를 많이 발표했는데 후유증이 원인으로 여겨졌습니다.

시인은 숱한 일화를 남겼는데요. 그중 하나를 들면, 1971년 무연고자로 오인받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하게 됐는데, 동료 시인들은 소식이 끊긴 그가 객사한 것으로 알고 시들을 모아 유고시집 '새'를 출간했습니다. 이로써 '새'는 시문학사 최초의 생존 시인 유고시집이 됐습니다.

그는 자신을 간병해주던 친구 여동생과 1972년 결혼해 오랜 방랑을 끝냈죠.

1993년 63세로 별세한 그는 생전에 저서와 시선집을 다수 간행했습니다. '주막에서'(1979년),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1984년),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1987년),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1990년), '요놈 요놈 요 이쁜 놈'(1991년) 등입니다.

한편,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위원회는 동백림 사건이 1967년 6월 국회의원 부정선거 직전인 같은해 5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사건을 인지하면서 시작됐음이 조사결과 드러났다며 중앙정보부가 사전 기획·조작한 사건은 아니라고 2006년 1월 밝혔습니다.

다만 진실위는 정권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대규모 간첩사건으로 사건 외연과 범죄사실을 확대, 과장했으니 정부는 관련자들에게 포괄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유창엽 기자 김지효 크리에이터

yct94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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