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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종로서 폭탄 던진 김상옥 열사 순국하다

송고시간2022/01/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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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적의 심장부에 폭탄을 던지고 떼지은 왜경과 싸우고 또 싸우다 아아 - 내 조국이여 외쳐 부르며 최후의 일발로 자결순절하신 거룩한 님의 의거 터에 그 모습을 새겨세워 높은 공을 기린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는 있는 김상옥 열사의 동상 받침돌 측면에 적힌 글입니다. 열사의 의거를 압축해놓은 것입니다.

1890년 1월 서울 종로구 효제동에서 태어난 김 열사는 8살 때부터 일을 해야할 정도로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야학교를 다니며 학업에 정진했습니다. 20대초 약행상을 하는 등으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비밀결사 광복단을 조직했습니다.

이후 3·1운동을 겪으며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의 길에 나섰습니다. 비밀결사인 혁신단을 조직하고 조선총독 암살과 기관 파괴 등을 계획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해 1920년 10월 상하이로 망명했습니다.

그 곳에서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을 만나 그가 세운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에 가입했습니다.

김 열사는 1922년 권총과 실탄, 폭탄 등을 갖고 서울로 잠입, 다음해인 1923년 1월 12일 저녁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습니다. 종로서는 아수라장이 되고 건물 일부가 파손됐습니다. 또 행인 7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 등을 고문해 일제 탄압의 상징이 된 종로서에 폭탄을 던진 것은 조선총독부 공격을 위한 연습이었다고 합니다.

이에 일경은 추적에 나서 김 열사는 은신했으나 조선인 순사의 밀고로 은신처가 발각됐습니다. 일경이 은신처를 에워쌌지만 뛰어난 사격술 덕분에 포위망을 벗어났습니다.

그는 또다시 몸을 숨겼지만 이 역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1월 22일 새벽 5시께 두번째 은신처가 일경에 포위되자 김 열사는 양손에 권총을 들고 인근 다섯 채의 가옥 지붕을 넘나들며 500여명의 일경과 접전을 펼쳤습니다.

3시간여의 치열한 전투 끝에 탄환이 떨어지자 벽에 기댄 채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마지막 한 발로 자결 순국했습니다. 그때 나이는 33세였습니다.

가족들이 시신을 거둘 때 몸에 11발의 총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일경은 조선인들에게 이런 사실이 알려져 독립운동의 자극제가 될까봐 언론을 통제했습니다.

유창엽 기자 김지효 크리에이터

yct94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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