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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김신조 일당, 청와대 뒷산까지 침투

송고시간2022/01/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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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무장대원 31명이 청와대 뒷산까지 침투한 이른바 '1·21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의 대남공작 특수부대 '124부대' 소속인 김신조 일당은 같은 달 13일 청와대 습격 및 요인 암살 지령을 받고 4일 후 군사분계선 철조망을 자르고 남측으로 넘어왔습니다.

이어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너 삼봉산 등을 거쳐 청와대를 향했습니다. 중간에 군복을 사복으로 갈아입었죠.

이들은 같은 달 21일 밤 세검정 고개 창의문을 통과하려다가 비상근무중이던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청와대 앞 500m까지 진출한 것입니다.

김신조 일당은 이에 수류탄과 기관단총을 쏘며 저항하는 한편 마침 그곳을 지나던 시내버스에도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대한민국 군경은 비상경계 태세를 확립, 현장으로 출동해 소탕작전을 벌였습니다. 군경합동 수색전은 경기도 일원에서 1월말까지 전개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124부대 소속 31명 중 29명이 사살됐습니다. 김신조는 투항하고 나머지 한 명은 도주해 북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민간인 7명과 군경 23명도 희생됐습니다.

사건 직후 남한에는 북한 도발을 대비한 여러 변화가 생겼습니다.

향토예비군과 육군3사관학교가 창설됐습니다. 또 군 장병들의 제대가 6개월 미뤄졌습니다. '북파공작'용인 실미도 부대(684부대)도 생겨났는데요. 이 부대는 3년여만에 폐쇄됐습니다.

대통령 경호강화 필요성으로 북한산과 인왕산 일대와 청와대 앞길의 일반인 출입이 금지됐습니다. 출입통제는 최근에야 풀렸죠.

1969년에는 교련이 고등학교 필수과목으로 지정돼 고교생들도 기초적인 군사훈련을 받게 됐습니다. 교련은 1997년 선택과목으로 전환돼 28년만에 사실상 폐지됐습니다.

북한 무장대원 중 유일하게 남한에 남은 김신조는 이후 대한민국에 귀순했죠. 현재 개신교 목사로 활동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창엽 기자 김지효 크리에이터

yct94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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