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물길과 철길이 남긴 아련한 추억 ② 익산

[※ 오랜 세월 금강 유역의 거점이었던 충남 논산과 전북 익산은 철도와 물길이 발달했던 곳이다. 많은 사람이 모이고 헤어졌던 오랜 교통 중심지는 철로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거나 새로운 교통수단이 나오면서 쇠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곳에선 빛바랜 사진에서 본 듯한 아련한 풍경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익산=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전라북도 익산은 일제강점기 수탈을 위한 철로가 놓이면서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곳이다.

호남선부터 전라선, 장항선까지 무려 3개 열차 노선이 이곳을 지나면서 한때 크게 부흥했다.

아직도 익산 곳곳에는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많이 남아있다.

익산 미륵사지석탑 [사진/ 성연재 기자]
익산 미륵사지석탑 [사진/ 성연재 기자]

◇ 일제강점기 발달한 춘포역

익산(益山)이라는 지명은 '산이 더해지다'란 뜻이 있는데, 실제로 산은 거의 없고 평지가 많은 편이다.

대부분이 평야 지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트막한 언덕도 이 지역에선 산으로 불렀다. 춘포면에 있는 해발 49m의 봉개산이 대표적이다.

산이라고 부르기도 난감한 높이지만, 평야 지대인 이곳에선 그래도 산 대접을 받는다.

춘포면에는 마을 북쪽에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춘포역이 서 있다.

일제가 수탈을 위해 세운 역이라고 한다.

익산 춘포역 [사진/ 성연재 기자]
익산 춘포역 [사진/ 성연재 기자]

역이라고 하지만, 실제 방문해 보면 철길은 완전히 철거된 채 역사만 덩그러니 서 있을 뿐 다소 썰렁한 느낌이다.

역사 수십m 뒤로 신설된 전라선이 호남평야를 가로지르고 있다.

규슈 구마모토에서 200여 명이나 이주해 오는 바람에 일본인이 마을 인구의 10%나 될 정도였다고 한다.

마을 남쪽에는 당시 지주였던 호소카와가 살던 2층짜리 적산가옥이 있다.

호소카와의 농장은 이 지역의 모든 것을 지배했다. 철도와 도로, 학교와 신사 등을 유치하고 미개간 지역을 개간해 쌀 생산량을 늘렸다.

춘포역 앞에는 때마침 조금 풀린 날씨 덕분인지 햇볕을 쬐기 위해 나온 노인들이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은 "이 역을 통해 미곡들을 마구 실어날랐다"며 소리높여 말했다.

역사 왼편에는 기차 모형을 한 놀이터가 조성돼 기대하고 왔던 여행자들의 허탈함을 다소 달래준다.

오른편에는 요즘 전국 어느 곳에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느린 우체통'이 있다.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매월 마지막 주 한꺼번에 배달된다.

익산 왕궁리오층석탑 [사진/ 성연재 기자]
익산 왕궁리오층석탑 [사진/ 성연재 기자]

◇ 왕궁터에서 홀로 밤드리 노니다가

익산은 금강을 끼고 있어 예로부터 풍요로운 고장이었다.

익산을 이야기할 때 백제 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보면 익산쯤에서 '왕궁 삼례' 라는 지명이 쓰인 이정표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왕궁과 삼례'라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지명을 본 적이 있기에 쉽게 기억되는 곳이기도 하다.

알고 보면 익산 왕궁면과 완주 삼례면에서 따 온 이정표다.

왕궁면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왕궁리 유적이 있다.

동서 245m, 남북 490m나 되는 왕궁 내부에는 오층석탑 하나와 백제 시대 건물 14동이 있었던 터가 발견됐다.

물을 활용하는 화장실과 금ㆍ동ㆍ유리 등을 만들던 공방 터도 발견됐다.

그러나 실제 눈여겨볼 만한 것은 드넓은 공간에 홀로 선 왕궁리 오층석탑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 오층석탑 하나만으로도 주변을 꽉 채울 만큼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엄청나게 넓은 공간이어서 사람과 부딪힐 가능성이 거의 없는 곳이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야트막한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양쪽에 큰 벚나무 군락 사이로 오층석탑이 점점 눈앞으로 다가오게 된다.

한 단계씩 더 올라서면 석탑을 코앞에서 볼 수 있다.

때마침 저녁나절이어서 아무도 이곳을 찾지 않았다.

석양에 물들어가는 오층석탑 주변으로 조명이 들어왔다.

거대한 왕궁터에 홀로 남아 천년 세월과 대화하는 시간이다.

인근에 백제 왕궁박물관도 있어 시간이 되면 한번 둘러봐도 좋다.

◇ '얼어붙은 듯' 바라봤던 미륵사지

익산 미륵사지석탑 [사진/ 성연재 기자]
익산 미륵사지석탑 [사진/ 성연재 기자]

익산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이 또 있다.

금마면에 있는 미륵사지다.

미륵사지는 무왕(600∼641년) 때에 창건한 사찰 자리로, 동서 178m, 남북 174m가량이나 된다.

백제 최대의 사찰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해발 430m 미륵산 남쪽 자락에 지어졌지만, 지금은 그 모습이 다 사라졌다.

국보 11호인 미륵사지 서탑과 당간지주 등이 남았지만, 사람들은 이 서탑만 기억한다.

서탑은 붕괴 위험 등으로 1998년부터 복원이 시작돼 21년만인 지난 2019년 복원을 완료해 일반에 공개됐다.

1993년 서탑 반대쪽의 동탑을 복원했지만, 세월의 흔적 하나 없는 동탑은 낯설다.

제대로 된 고증 없이 복원된 데다, 새하얀 석재의 모습이 너무 깔끔해 유적 같은 느낌이 전혀 없다.

그래서 미륵사지를 말할 때 대부분이 서탑만을 떠올린다.

저물녘의 미륵사지를 보고 싶었기에 해가 떨어지길 기다렸다.

마침내 서쪽 편으로 해가 졌을 때 미륵사지의 제 모습이 나타났다.

붉은 황혼과 함께 영롱한 자태가 더욱 빛이 났다.

조금 기다리니 조명이 들어왔다.

마치 우주선이 내려앉은 모습이다.

마침 기온이 급강하해 몹시도 추운 날씨여서인지 한동안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서서 영롱한 자태를 지켜봤다.

나바위성당 [사진/ 성연재 기자]
나바위성당 [사진/ 성연재 기자]

◇ 독특한 한옥의 아름다움…나바위성당

전북과 충남 논산 일대에는 유독 종교 성지들이 많다.

금강 뱃길을 통해 종교도 함께 전파가 됐기 때문이다.

망성면의 나바위성당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다.

나바위성당은 고딕식 종탑과 한옥 건물이 어우러진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건물이다.

미륵사지에서 약 30㎞ 떨어진 망성면은 금강을 끼고 있는 고장이다.

망성면 화산리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는 사뿐히 날아갈 듯 아름다운 한옥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성당은 1906년 인근에 우암 송시열이 '화산(華山)'이라고 이름 붙인 나지막한 산의 이름을 따 화산 본당으로 불렸다.

그러다 1980년대 말부터는 너른 바위를 뜻하는 나바위란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처음 지어질 때 벽은 흙벽이었지만 1916년 벽돌로 바꾼 뒤 종각을 높여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이곳은 마카오로 유학을 떠났던 한국인 첫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서품을 받고 조선 헌종 11년(1845년) 고국으로 돌아와 첫발을 내디딘 곳이다.

김대건 신부는 금강 뱃길을 통해 화산 언저리에 상륙했다.

성당 내부로 들어서니 하얀색 목조 기둥들이 눈에 띈다.

내부 기둥은 온통 흰색 목조 구조다.

때마침 여행객처럼 보이는 한 부부가 조용히 기도하고 있다.

성당 왼편 뒤쪽에는 성당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역사관이 있다.

옛 사제관 건물이다.

당시 사진과 풍금 등 다양한 물품이 보존돼 있다.

익산 여산교회 [사진/ 성연재 기자]
익산 여산교회 [사진/ 성연재 기자]

◇ 여산에서 만난 '여산진면목'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은 중국 송나라 때 소식이 지은 '제서림벽'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보는 장소에 따라 여산이 달리 보이므로 참모습을 알기 어렵다는 뜻을 가진 말로 썼다.

그런데 시구와 큰 관련이 없지만, 익산의 여산면에서 '진면목'이라 할 만한 곳을 몇 군데 발견했다.

여산남부교회는 그 가운데 하나다.

1967년 세워진 이 교회는 55년 동안 큰 주목을 받지 않았던 조용한 시골 교회였다.

그런데 누군가 소셜 미디어에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교회 사진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위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연의 일치로, 교회 바로 옆에는 주변의 농가에서 조성한 잔디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축구장 하나 크기의 잔디밭 바로 옆이 교회인데 푸른 잔디밭 뒤쪽으로 빨간 지붕을 얹은 뾰족 교회의 모습이 사람들의 흥미를 자아냈다.

보는 장소를 달리하니, 새로운 모습이 보인 셈이다.

익산 여산정미소 [사진/ 성연재 기자]
익산 여산정미소 [사진/ 성연재 기자]

여산에는 다른 진면목이 하나 더 있다.

60년 전통의 여산양조장이다.

이곳은 최형진 사장이 2대째 가업을 이어 막걸리를 만들어오고 있는 곳이다.

그는 단 한 명의 공장장과 함께 생막걸리를 제조 중이다.

이곳은 다른 메이커 막걸리의 절반 가격에 생막걸리를 판매한다.

20년째 값을 올리지 않고 그대로 받다가 최근에야 50원을 올렸다고 한다.

이곳에서 만드는 막걸리는 완전한 생막걸리로 유통에 어려움이 많지만, 다른 첨가물을 넣지 않고 생막걸리만 고집해 만들어오고 있다.

누군가 언젠가는 이 막걸리의 가치를 알아주리라 생각하며 고집스럽게 저렴한 가격을 고집하고 있다.

이곳은 봉준호 감독이 2009년 제작한 영화 '마더'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지금의 신축 건물 이전에 세트장을 지어 촬영한 뒤 철거했지만, 당시 영화에 쓰였던 '50년 전통 막걸리 여산 양조장' 간판이 출입구에 남아있다.

건물 앞에는 과거 약주를 만들 때 썼던 커다란 목재 작업 틀이 전시돼 있다.

익산 달빛소리수목원 소나기나무 [사진/성연재 기자]
익산 달빛소리수목원 소나기나무 [사진/성연재 기자]

◇ 500년 수령 '소나기 나무'

춘포면에 있는 달빛 소리 수목원은 개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각종 다양한 수목이 식재돼 있다. 특히 이곳 초입에는 5백 년 수령을 자랑하는 느티나무인 '황순원 소나기 나무'가 있다.

소나기 나무는 가운데가 텅 비어있는데, 마을 소년 소녀들이 이곳에서 만나 사랑을 키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언덕 위로 올라가다 보면 향기가 짙은 금목서 군락이 나온다. 매년 여름 아름다운 향기를 선사한다.

언덕 위에는 규모가 거대한 2층 통나무집이 기다린다. 내부에서 간단하게 차를 즐길 수도 있다. 통나무집 주변에서는 귀여운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다.

익산 아가페 정원 [사진/성연재 기자]
익산 아가페 정원 [사진/성연재 기자]

이밖에 전북 제4호 민간정원으로 지정된 약 11만5천500㎡(약 3만5천 평) 규모의 아가페 정원도 찾아볼 만하다.

그러나 최근 익산에 오미크론 환자가 증가해, 시청에서 잠정 폐쇄 결정을 내렸다. 상황이 개선되면 다시 문을 연다니 기다려보기로 하자.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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