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어때] 인생에 한 번쯤 '반가사유상'과 무언의 대화를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전시
삼국시대인 6세기 후반 제작된 반가사유상(왼쪽)과 7세기 후반 제작된 반가사유상.[사진/진성철 기자]
삼국시대인 6세기 후반 제작된 반가사유상(왼쪽)과 7세기 후반 제작된 반가사유상.[사진/진성철 기자]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생각하기 시작할 때 피어난 미소일까, 생각이 끝났을 때일까?" 한 관람객이 동반자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상설 전시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이처럼 우리에게 생각의 화두를 던져준다. 전시공간인 '사유의 방'은 1천 4백여 년 세월을 견뎌 온 반가사유상을 보는 것만으로 시간의 흐름을 잊게 만든다.

[사진/진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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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가사유상'만을 위한 생각의 공간

삼국시대인 6세기 후반 제작된 반가사유상.[사진/진성철 기자]
삼국시대인 6세기 후반 제작된 반가사유상.[사진/진성철 기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만날 수 있는 근사한 곳이 생겼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국보로 지정된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두 점을 나란히 전시한 '사유의 방'을 2021년 11월 개관했다. 일반에 공개된 지 두 달여 만에 11만 5천여 명이 다녀간 박물관의 핫플레이스이다.

삼국시대인 7세기 후반 제작된 반가사유상.[사진/진성철 기자]
삼국시대인 7세기 후반 제작된 반가사유상.[사진/진성철 기자]

'사유의 방'은 온전히 반가사유상만을 위해 만들어졌다. 삼국시대인 6세기 후반에 제작된 높이 81.5cm의 금동반가사유상과 7세기 전반에 만든 높이 90.8cm의 금동반가사유상 두 점이 관람객들을 맞는다. 소극장 규모로 439㎡ 크기다. 최욱 건축가가 디자인했다.

금동 색의 '사유의 방'과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글귀가 새겨진 입구를 지나 전시실로 들어서면 먼저 캄캄하고 긴 복도를 걷게 된다. 한 열 걸음 걸으면, 커다란 스크린에 흑백영화처럼 새하얀 연기가 바람에 어지러이 날린다. 장 줄리앙 푸스의 디지털비디오 작품 '순환'이다. 끝없는 물질의 순환과 우주의 확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반가사유상을 마주하기 전 잠시 생각을 가다듬게 한다. 또 열 걸음을 걸어 붉은빛이 새어 나오는 모퉁이를 돌면 토굴처럼 어둡고 텅 빈 듯한 전시실이 나온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사진/진성철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사진/진성철 기자]

◇아득히 멀어보이는 두 반가사유상 사이 거리

아득히 먼 곳처럼 여겨지는 곳에 반가사유상 두 점이 나란히 앉아 있다. 처음엔 존재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검은 공간만을 마주한다. 그러다 성급히 반가사유상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사유상을 음미하듯 다가가는 사람, 뒷걸음으로 물러나며 반가사유상의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뒤섞인다. 전시실 끝에서 사유상까지 거리가 사십 보가 넘는다.

[사진/진성철 기자]
[사진/진성철 기자]

계피 향을 섞은 황토로 벽을 만들었다. 벽과 바닥은 조금 기울어져 있지만, 설명을 듣지 않는다면 알아채기 힘들다. 조명을 최소화해 어둡다. 두 반가사유상 바로 위에는 20개씩 모두 40개의 작은 조명이 원 두 개를 그리며 사유상을 비춘다. 커다란 천장에는 조명 대신 알루미늄 봉 2만여 개가 박혀있다. 알루미늄 봉 끝은 1천 4백여 광년을 날아 온 별빛처럼 희미하게 빛난다.

타원형 받침대 위에 두 사유상이 나란히 있다. 받침대 주변으로 둥글게 설치된 테두리만 사유상과 관람객 간 거리를 유지해 준다. 몸을 기울이면 손이 닿을 듯한 거리다. 유리 진열장도 없다. 타원형 받침대 주변을 스물다섯 보가량 걸어 돌면 두 사유상의 앞, 옆, 뒤를 빠짐없이 감상할 수 있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나 바티칸 성베드로성당에서 '피에타'를 본 경험이 있는 관람객이라면 지금 사유의 방에서 반가사유상을 만나는 게 엄청난 행운임을 느낀다.

[사진/진성철 기자]
[사진/진성철 기자]

사진 촬영도 할 수 있다. 다만 플래시 기능과 삼각대는 사용할 수 없다. 관람객들은 연신 스마트폰으로 반가사유상을 찍는다. 너무 어둡다 보니 최신 스마트폰의 HDR 기능을 사용해도 천장 알루미늄 봉 끝의 빛까지 담기는 힘들다. 저감도에 30초 이상 장노출, 조리개는 11보다 깊게 촬영한 뒤에 어두운 천장 부분만 노출보정 작업을 해야 천장 빛을 살릴 수 있다. 관객들은 반가사유상에서 두어 걸음 물러나 바닥에 카메라를 내려놓고 촬영하면 가능하다. 바닥에 엎드려 찍지는 말자.

삼국시대인 6세기 후반 제작된 반가사유상.[사진/진성철 기자]
삼국시대인 6세기 후반 제작된 반가사유상.[사진/진성철 기자]

◇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시간을 잊게 한다

"'사유(思惟)'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깊은 생각에 잠긴 상태를 나타낸다"고 사유의 방 설명서는 말한다. 반가사유상처럼 그런 깊은 사유에 잠길 수는 없겠지만 멍하니 생각을 비우기도 좋은 곳이 사유의 방이다. 사유의 방에서는 무릎에 팔을 괸 채, 오른손을 뺨에 살짝 대고 생각 잠긴 반가사유상의 자세뿐 아니라 엷은 미소를 짓는 표정까지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사유상의 미소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자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삼국시대인 7세기 후반 제작된 반가사유상.[사진/진성철 기자]
삼국시대인 7세기 후반 제작된 반가사유상.[사진/진성철 기자]

실제로 두 시간 정도 반가사유상을 감상하다가 약속 시간에 늦어 서둘러 전시실을 나선 한 여승이 말했다. "너무 놀라서 말을 잊었다."
전시실 왼쪽의 반가사유상은 날카로운 콧대와 또렷한 눈매, 그리고 화려한 장신구와 정제된 옷 주름 등이 특징이다. 오른쪽 반가사유상은 민머리에 단순한 보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반신 등보다 단순하고 절제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문화재청의 지정문화재 번호 폐지에 따라 국보 제78호와 제83호라는 호칭을 없앤 대신 애칭을 찾고 있다. 지난해 9월까지 두 사유상의 애칭을 공모했으나 대상 수상작을 뽑지 못했다.

[사진/진성철 기자]
[사진/진성철 기자]

사유의 방에 머무는 시간은 '당신이 사유하는 시간만큼'이다. 개관 한 달 보름여 만인데 "벌써 10번을 왔다"는 관람객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무료인 만큼 사유의 방 입장료도 무료다. 어둡고 컴컴한 방인 탓일까. 엄마를 따라온 어린 관람객이 "여기 재미없어"라고 말했다. 저 아이도 먼 훗날 마음이 허하고 머리가 상념으로 복잡한 날 '사유의 방'을 다시 찾지 않을까?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z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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