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르포] 물도 못 마시고 검사, 검사, 검사…하루가 지나갔다

송고시간2022-01-07 06:30

beta

이달 4일 오전 8시 30분 서울 강남구 보건소 선별진료소.

"이렇게 하면 터치도 잘 되고 좀 덜 찜찜해요." 이곳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며 터득한 그만의 노하우였다.

작년 12월 14일 처음으로 3천명대를 찍은 하루 확진자 수는 차츰 줄어 1천명 아래로 내려갔지만 선별진료소들은 여전히 북새통이다.

요약 정보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줄인 '세 줄 요약' 기술을 사용합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사 본문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제공 = 연합뉴스&줌인터넷®

스트레스로 탈모까지 온 선별진료소 의료진…'아프게 찌른다' 실랑이 다반사

자원봉사하며 방호복 직접 입어보니 움직임 불편…"고맙다 한마디가 큰 힘"

검체 채취하는 의료진
검체 채취하는 의료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 "페이스실드 쓰고 남은 이 비닐로 휴대전화를 감싸면 좋아요."

이달 4일 오전 8시 30분 서울 강남구 보건소 선별진료소. 방호복을 건네주던 진료소 직원은 페이스실드 위에 붙어있던 비닐을 기자의 휴대전화에 둘둘 말아 붙여줬다.

"이렇게 하면 터치도 잘 되고 좀 덜 찜찜해요." 이곳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며 터득한 그만의 노하우였다.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6도에 머물렀던 이 날 롱패딩 위에 방호복을 덧입고 직원이 알려준 대로 휴대전화를 감싸 쥔 채 진료소로 종종걸음을 쳤다.

전날 서울에서는 938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새로 발생했다. 작년 12월 14일 처음으로 3천명대를 찍은 하루 확진자 수는 차츰 줄어 1천명 아래로 내려갔지만 선별진료소들은 여전히 북새통이다.

이날도 오전 9시 검사소가 문을 열기 전부터 검사를 받으려는 시민들로 입구 앞에는 긴 줄이 만들어졌다.

신발을 덮은 방호복 밑단이 의자에 끼는 바람에 의자 위에 있던 물건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초짜' 자원봉사자였던 터라 김이 서린 페이스실드에 앞을 제대로 못 본 탓이었다.

직원들은 분주히 책상과 의자를 정돈하고 컴퓨터를 작동시켰다. 검체 채취원이 빠르게 검사할 수 있도록 면봉이 담긴 봉투의 끝단을 조금 뜯어두는 '밑작업'도 순식간에 마쳤다.

한번 화장실에 다녀오면 새 방호복으로 매번 갈아입어야 해서 물은 되도록 안 마셨다. 아침잠을 쫓는 따뜻한 커피도 이뇨 작용을 한다고 하니 참아야 했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늘어선 검사자들에게 일일이 검사실 번호를 안내하다 보니 입속은 바싹바싹 말라갔지만 이날 12시간 동안 물 한 병을 채 못 마셨다.

방호복 한 벌만 입고 확진자를 만나야 하는 일도 어렵게만 느껴졌다. 문진표 작성을 위해 방문 경위를 묻자 검사자는 "간이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고 답하기도 했다.

직원들은 감염 위험에 익숙하다면서도 가족·친구들의 감염을 걱정했다. 직원 김모(42)씨는 "가족들 감염될까 봐 하도 검사를 많이 받아서 콧구멍이 남아나질 않는다"며 웃었다.

실제로 진료소 근무하다 코로나19에 걸린 50대 안모씨는 완치 후 다시 출근하기를 택했다고 한다. 안씨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보람도 커서 다시 근무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강남구 보건소 선별진료소 의료진
강남구 보건소 선별진료소 의료진

[촬영 이승연]

의료진과 검사자 사이에 벌어지는 실랑이도 다반사다. 많은 사람이 오다보니 검사만 하면서 하루가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건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후 3시께 검체채취실에서는 60대 노인이 스스로 검체 채취용 면봉을 코에 넣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검체 채취원이 규정을 설명하며 설득했으나 남성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결국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이런 모습에 익숙한 듯 채취원은 "여기 검사 취소 하나요"를 외쳤고 "이런 일이 하루에 한 번은 꼭 있어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루 수천 건의 검사를 반복 진행하면서 의료진들은 신체·정신적 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임상병리사 자격으로 진료소에 파견 지원을 한 김솔(30)씨는 "두 달 전부터 탈모가 생겼다"며 정수리 부분을 가리켰다. 그의 정수리에 동그랗게 남은 선명한 노동의 흔적이 1년 반가량 진료소에서 겪은 고단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김씨는 "아프게 찔렀다고 채취실에서 안 나가고 욕하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며 "병원에 있다가 코로나19가 터지고 최전방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원했는데 그런 분들을 만날 때마다 참 속상하다"고 덧붙였다.

검체 채취가 불편한 경험이 될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게 규정에 따른 엄격한 검사뿐 아니라 불안해하는 검사자들을 안심시키는 것도 신경 써야 할 부분 중 하나다.

의료진 조은서(27)씨는 면봉 앞에서 한껏 긴장한 남자아이를 향해 "이거 하나도 안 아파"라며 달랬고 검사 뒤에는 "여태껏 온 친구 중에 제일 잘했다"라며 따뜻한 칭찬을 건넸다.

쌓여있는 의료폐기물
쌓여있는 의료폐기물

[촬영 이승연]

오후 5시가 넘자 수시로 바꿔 입은 의료 장갑과 방호복이 산처럼 쌓였다. 일일 자원봉사자였지만 이날 12시간 동안 갈아입은 방호복만 네 벌이었다.

의료폐기물을 처리하는 직원 두 명은 봉투가 터지지 않게 조심하며 발로 꾹꾹 눌러 담았다. 정혜숙 씨는 "의료폐기물 한 봉투당 처리 비용이 5만원 정도로 비싼 편이라 조금이라도 더 담으려고 꽉꽉 눌러 담아야죠"라고 설명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며 기온이 떨어지자 직원들은 잠시 한숨을 돌리며 히터 앞에서 몸을 녹이기도 했다.

장갑과 패딩, 귀마개로 무장한 한경희(50)씨는 "히터가 있어도 요즘엔 너무 춥다"며 "여름에 하도 고생을 해서 이런 추위가 낫다고 느껴질 지경"이라고 말했다.

한 직원은 "여름에는 페이스실드와 얼굴이 닿는 부분에 땀이 차서 자꾸만 흘러내렸다"며 "겨울이 훨씬 일하기 편하다"고 했다.

코로나19 감염 위험과 추위 속에서도 직원들은 시민들이 무심코 건넨 '고맙다'는 말에 그래도 힘을 얻는다고 했다.

접수처 직원 김모(42)씨는 "감사하다거나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뿌듯하고 가슴이 뜨거워져요. 여기 오시는 분들은 다 코로나에 걸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오시죠. 불안함이 클 텐데도 종종 감사 인사를 해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힘이 됩니다"라고 말했다.

선별진료소의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2년 가까이 이곳을 지켰던 의료진들은 내일도, 그다음 날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묵묵히 추위를 견디며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지긋지긋한 코로나19가 끝날 때까지.

선별 진료소 앞 대기하는 시민들
선별 진료소 앞 대기하는 시민들

[촬영 이승연]

winkite@yna.co.kr
(계속)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
댓글 많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