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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세계유산 후보 '사도광산'은 침략전쟁 위한 탐욕의 땅"

송고시간2021-12-30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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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니가타(新潟)현 '사도(佐渡)광산'은 수백 년간 일본 침략전쟁의 원동력이 된 탐욕의 땅이라는 학계 비판이 제기됐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은 동북아역사재단이 30일 공개한 '동북아역사 리포트' 제7호에 게재한 글에서 "사도광산은 임진왜란 군자금으로 사용한 은을 채굴한 곳이자 태평양 전쟁 시기 조선인 1천200여 명을 동원한 현장"이라고 밝혔다.

일본 문화심의회는 최근 사도광산을 세계유산 등재 추천 후보로 선정했고, 이변이 없는 한 내년 초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서가 제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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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경 박사 "강제동원 조선인 처우 열악…후유증 시달리기도"

웅장한 규모의 부유 선광장 모습
웅장한 규모의 부유 선광장 모습

[정혜경 박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니가타(新潟)현 '사도(佐渡)광산'은 수백 년간 일본 침략전쟁의 원동력이 된 탐욕의 땅이라는 학계 비판이 제기됐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은 동북아역사재단이 30일 공개한 '동북아역사 리포트' 제7호에 게재한 글에서 "사도광산은 임진왜란 군자금으로 사용한 은을 채굴한 곳이자 태평양 전쟁 시기 조선인 1천200여 명을 동원한 현장"이라고 밝혔다.

사도광산은 니가타항에서 배로 1시간을 가야 닿는 사도섬에 있다. 일본 문화심의회는 최근 사도광산을 세계유산 등재 추천 후보로 선정했고, 이변이 없는 한 내년 초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서가 제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니가타현과 사도시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관련 서류에서 광산 역사를 1867년에 끝난 에도(江戶) 시대 이전으로 한정했다. 조선인 강제동원 등 역사 문제가 불거져 국제사회 비판에 직면할 것을 우려한 '꼼수 전략'으로 분석된다.

조선인 합숙소 식당 자리
조선인 합숙소 식당 자리

[정혜경 박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한국 근대사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은 정 위원은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사도광산에서 영토 확장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사용된 금은 78t(톤)이고, 은은 2천300t에 이른다"며 "에도 시대 사도광산 광부들은 투입된 뒤 2∼3년밖에 살지 못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1939년 이후 조선인 강제동원이 본격화했고, 미쓰비시광업 소속 사도광산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처우는 형편없었다고 강조했다.

정 위원은 "사도광산이 1943년 6월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년 3월 기준으로 조선인 1천5명이 동원됐는데, 그중 10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탈출했다"며 조선인이 파업을 했다가 진압당한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조선인 사도광산 근무자 가운데 당시 상황을 구술한 유일한 인물인 고(故) 임태호 씨 사례를 인용해 "숙소에서 광산까지는 한 시간 반이나 걸렸고, 지하에서 죽음을 맞닥트리는 일을 해야 해서 하루하루가 공포 그 자체였다"고 주장했다.

사도광산이 작성한 조선인 동원 현황
사도광산이 작성한 조선인 동원 현황

[정혜경 박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사도광산 노동자 중 일부는 광복을 맞아 귀국한 뒤에도 심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폐에 먼지가 쌓여 생기는 병인 진폐증으로 고생한 이가 특히 많았다.

정 위원은 "한국 정부가 인정한 사도광산 피해자는 148명으로, 9명이 현지에서 사망했고 73명이 후유증을 신고했다"며 "73명 중에는 1970년대 사망한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는 이처럼 슬픈 역사가 얽힌 사도광산의 역사를 에도 시대 이전으로 제한하면 대부분의 산업시설 유적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세계 시민이 공유해야 하는 '완전한 역사'를 빠뜨려서는 안 된다"며 "완전한 역사는 16세기부터 정권을 위해 일본 민중을 동원했고, 일본의 침략전쟁을 뒷받침하기 위해 조선 민중을 동원했던 곳이라는 사실"이라고 역설했다.

일본 정부는 2015년에도 이른바 '군함도'(하시마·端島) 등 조선인 강제노역 시설 7곳이 포함된 메이지(明治) 시대 산업유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면서 징용 역사를 알리겠다고 약속했으나, 지금까지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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