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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강경 진압 거부' 정웅 전 의원 별세(종합)

송고시간2021-12-2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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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지역 향토방위사단장으로서 강경 진압을 거부한 정웅(鄭雄) 전 의원이 23일 오전 10시께 서울 자택에서 잠을 자던 중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5·18 민주화운동 초기 강경 유혈 진압 지시를 거부했다가 사단장직에서 해임된 뒤 예편까지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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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사단장 재직 중일 때의 고인
1980년 사단장 재직 중일 때의 고인

[유족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지역 향토방위사단장으로서 강경 진압을 거부한 정웅(鄭雄) 전 의원이 23일 오전 10시께 서울 자택에서 잠을 자던 중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93세. 유족은 "어제까지 식사도 잘하셨고, 평안하게 운명하셨다"고 말했다.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육군 호국군사관학교(육군보병학교로 통폐합)를 1기로 졸업한 뒤 6·25 전쟁 때 육군 소위로 소집된 것을 계기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전쟁 중 공로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뒤 대대장, 연대장을 거쳐 1980년 1월 소장 진급과 함께 광주 제31향토사단장으로 부임했다. 5·18 민주화운동 초기 강경 유혈 진압 지시를 거부했다가 사단장직에서 해임된 뒤 예편까지 당했다.

1981년 제11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외부 강압으로 중도 사퇴했고, 1987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부의장을 거쳐 1988년 광주 북구에 평민당 후보로 출마해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당시 득표율은 91.45%였다. 같은 해 평민당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장을 맡았다. 독실한 기독교도로 최근 기독교대한성결교회에서 '자랑스러운 성결인상'을 받기도 했다.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최근까지 회고록을 집필했다. 회고록 머리말에는 "(죽고 다친 광주시민과 국민뿐 아니라) 전두환 등 정치 군인들에게 이용당한 대한민국 국군도 피해자"라며 "나는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국민들에게 총을 쏠 수 없었다. 삼엄한 계엄 하에서 나는 상부의 명령에 불복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선택하였다"고 적었다.

또 1980년 5월19일 낮에 광주 지역 기관장들로부터 "이러다가는 광주시민들 다 죽이겠다"는 말을 들은 뒤 그날 밤 사단 작전참모를 불러 "지금 이 시간부터 상부의 강경진압명령을 무혈진압명령으로 전환하여 작전한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진압시 대한민국의 국민이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고 지시했고, 작전참모가 "구두 명령으로 하달하시겠습니까? 문서 명령으로 하달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문서 명령으로 하달한다"고 답변했다고 회고했다. 이 명령 문서는 정부 공식 기록에 포함됐다.

유족은 부인 전성원(전 한기총 여성위원장)씨와 사이에 2남(정대균<경희대 유전생명공학과 교수>·정성균<신한대 치위생학과 교수>), 며느리 이현미(웨스트민서대학교대학원 특임교수)·윤정현(중앙성결교회 오르가니스트)씨 등이 있다. 빈소는 24일 오전부터 강남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되고, 27일 오전 발인을 거쳐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1988년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에서 증언하는 고인(1988.12.21)
1988년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에서 증언하는 고인(1988.12.21)

[촬영 김영철]

chung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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