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새해, 땅끝에서 빛을 맞이하다 ①포항 호미곶

(포항=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땅끝까지 가봤나. 북한 지역을 제외한 대한민국 육지의 동쪽 끝은 포항시 호미곶이다. 육지 최남단은 해남군 땅끝마을, 최서단은 태안군 모항리이다. 한반도의 땅끝은 맑고, 따뜻하고, 활기찼다.

여명의 호미곶 [사진/성연재 기자]
여명의 호미곶 [사진/성연재 기자]

답답한 일이 많아서일까.

요즘 동해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호미곶 일출을 보며 붉은 해의 기운을 느끼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귀띔한다.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굳어있었지만, 해가 뜨자 부드러워졌다.

이 희미한 미소 하나를 확인한 것만 해도 이번 여정의 목적은 달성한 듯하다.

◇ 추위와 어둠 속 해를 기다리는 간절함

호미곶은 대한민국 일출 관광지의 대명사다.

해마다 신년이면 이곳은 해맞이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팬데믹 영향으로 모두가 어려움을 겪는 요즘, 포항 호미곶을 찾아 일출을 바라보는 사람 수도 늘었다고 한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였지만, 마스크 밖으로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사람들은 일출을 기다렸다.

하필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되는 일 없이 갑갑한 요즘 상황과 똑 닮아 안타까웠다.

다행히도 해가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사람들은 휴대전화로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마스크에 가려진 얼굴 사이로 살짝 웃음이 번진다.

호미곶 해맞이에 나서려면 근처에서 1박을 해야 한다.

포항 시내에서 새벽에 출발한다면 1시간은 족히 걸려서다.

호미곶 일출을 즐기기에 가장 편한 곳은 다무포하얀마을이다.

호미곶에서 10분 이내 거리여서 이동이 편리하다.

다무포하얀마을에서 오징어를 말리는 모습. 이곳 오징어는 전량 백화점으로 납품한다.[사진/성연재 기자]
다무포하얀마을에서 오징어를 말리는 모습. 이곳 오징어는 전량 백화점으로 납품한다.[사진/성연재 기자]

이곳은 동해안의 넉넉함을 즐기기에 알맞은 작은 어촌이다.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마을 전체를 하얀 벽과 파스텔 지붕으로 바꾼 게 인상적이다.

걷다 보면 오징어를 말리거나, 과메기를 말리는 모습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탁 트인 전망과 등대 풍경은 덤이다.

올해는 지난해처럼 해맞이 축제가 열리지 않을 전망이다.

포항시는 일출 명소 호미곶에서 열려던 한민족해맞이축전을 2년 연속 취소했다.

◇ "겨울아, 반갑다" 거친 겨울바다 가르는 서핑

포항의 대표 해수욕장 중 하나인 북구 청하면의 월포해수욕장.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를 따라 '웨트수트'를 입은 여성이 미끄러지듯 넘실대는 파도를 탄다.

1주일에 며칠은 경주에서 기차를 타고 월포해수욕장에 도착해 파도 맛을 본다는 허모 씨다.

몇 번 고꾸라질 듯하다가도 오뚜기처럼 몸을 일으켜 파도 위를 내달리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포항엔 이처럼 바다를 즐길 수 있는 동호인들이 최근 몇 년 사이 급증했다.

월포해수욕장을 찾은 한 여성 서퍼 [사진/성연재 기자]
월포해수욕장을 찾은 한 여성 서퍼 [사진/성연재 기자]

강원도 양양이 인기를 끌지만, 붐비지 않는 이곳을 서울에서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월포해수욕장의 매력은 너무 강하지 않은 파도 덕에 초심자들이 서핑하기 적당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최근 동해선 월포역이 개통되면서 KTX 포항역에 내려 한 번만 갈아타면 어렵지 않게 올 수 있다.

월포해수욕장에서 서핑숍 '누나서프'를 운영하는 김경희 대표는 "3∼4년 전까지만 해도 동호인 위주였지만, 지금은 10대부터 50대 이상 장년층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고 말했다.

서핑하려면 보온을 위해 두께 5㎜ 이상 웨트 수트가 필요하다.

말 그대로 물이 몸 안으로 자연스레 스며들지만, 체온을 바깥으로 뺏기지 않는 옷이다.

모자와 장갑, 신발도 필요하다.

서프보드의 경우 3m 이상 롱보드와 2m 내외 쇼트 보드 등으로 나뉜다.

보드를 고를 땐 키와 몸무게 또는 서핑 장소를 고려해야 하므로 전문매장에 조언을 구하는 게 좋다.

보드를 연결해 분실을 막고 안전하게 탈 수 있는 '리시 코드'도 필수다.

밤이 되면 더욱 아름다운 스페이스 워크 [사진/성연재 기자]
밤이 되면 더욱 아름다운 스페이스 워크 [사진/성연재 기자]

◇ '워킹 롤러코스터' 포항 스페이스 워크

'세상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북부 환호공원에 조성된 스페이스 워크 사진을 처음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접했을 때 깜짝 놀랐다.

롤러코스터를 걸어서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즐길 거리 같았기 때문이다.

스페이스 워크는 포스코가 4천925㎡ 부지에 117억 원을 들여 조성한 가로 60m, 세로 56m, 높이 25m 규모의 곡선형 조형물이다.

333m 길이의 철 구조물 트랙을 따라 걸으며 환호공원과 포항 풍광을 즐길 수 있다.

계단 개수는 717개, 전체 무게는 317t이나 된다.

독일계 부부 작가인 하이케 무터와 울리히 겐츠가 설계했다. 실제로 이런 형태의 기구가 독일에 있지만, 규모는 이곳이 훨씬 크다.

롤러코스터에 레일이 깔려있다면, 스페이스 워크엔 계단이 깔려있다는 점이 다를 뿐, 스릴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구조적으로 바람에 흔들리게 설계된, 아슬아슬한 각도의 스페이스 워크를 걷다 보면 흔들림에 놀라 저절로 난간을 잡을 수밖에 없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규모 6.3 이상 지진을 견디는 내진 설계에 풍속 기준, 난간 높이 등 안전 규정을 확실히 지켰으니 말이다.

이라크에서 왔다는 한 유학생은 "세상에 이런 즐길거리는 처음 봤다"며 흥분했다.

스페이스 워크의 본질을 보려면 해 질 녘에 가야 한다.

일몰 후 모든 관람객이 내려오면 조명이 들어온다.

붉은 기운이 살짝 남아 있을 때 어둠이 잦아들면, 스페이스 워크는 그야말로 우주에 붕 떠 있는 우주선처럼 보인다.

첫 계단을 오르며 마치 천상으로 향한 계단(Stairway to Heaven)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닻 모양의 이가리 닻 전망대 [사진/성연재 기자]
닻 모양의 이가리 닻 전망대 [사진/성연재 기자]

◇ 탁 트인 바닷가에 빨간 등대 하나…이가리닻 전망대

이제 북적이는 여행지는 기피 대상이다.

이런 트렌드에 딱 맞는 여행지가 있다.

탁 트인 곳에서 동해를 바라볼 수 있는 북구 청하면 이가리닻 전망대는 포항시가 역점을 두고 추진한 '그린웨이 프로젝트'의 하나다.

닻 모양을 형상화한 전망대는 시원한 동해 파도를 내려다볼 수 있는 10m 높이 구조물이다.

특히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주변에 많다.

가만히 서서 파도를 바라다보면 자연스럽게 '물멍'(물을 멍하게 바라보며 무념무상을 즐긴다는 뜻의 속어)에 빠진다.

닻 모양 구조물에서 뒤를 돌아보면 돌 위로 자리 잡은 해송들이 청량하게 다가온다.

아래쪽으로는 데크로 된 걷기 길이 있다.

길 따라 가보니 이가리닻에서 해변 쪽을 바라보면 차에서 숙박하는 '차박족'들이 눈에 띈다.

또는 간단히 '차크닉'(차와 피크닉을 합성한 속어)을 즐기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코로나 시대 여가를 즐기는 한 방법이다.

청하리 드라마 촬영지 [사진/성연재 기자]
청하리 드라마 촬영지 [사진/성연재 기자]

◇ '으랏 차차차' 갯마을에 관광객 몰려온다

최근 인기를 끈 한 드라마 덕분에 포항의 조용한 어촌 마을 북구 청하리가 떠들썩해졌다.

별생각 없이 이곳에 들렀다가 단체여행객을 만나 깜짝 놀랐다.

조용한 시골 동네에 단체 여행객이 들를 정도로 명소로 부상한 것이다.

청하시장 앞에 주차한 단체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삼삼오오 드라마의 배경이 된 반점과 슈퍼 등을 구경하느라 분주하다.

이곳에서도 '달고나'를 만날 수 있다.

또 다른 드라마의 영향이다.

청하시장 김상락 상가번영회장을 만났다.

정육점을 운영하던 그는 단체 주문한 삼겹살을 썰고 있었다.

"드라마 덕분에 관광객도 많이 늘고 동네 주민들이 싱글벙글한다"고 말했다.

청하시장을 거쳐 드라마 배경이 된 다른 마을을 찾았다.

구룡포읍 석병리 마을. 호미곶에서 조금 더 울산 쪽으로 내려간 이곳엔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살던 집들이 있다.

실제 주민들이 살던 집을 빌려 촬영했다.

따라서 주민들의 생활을 방해하지 말라는 안내문이 대문에 붙어 있다.

구룡포 근대역사관 [사진/성연재 기자]
구룡포 근대역사관 [사진/성연재 기자]

◇ "일본 소도시에 와있는 듯"…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다른 드라마 촬영지로 명성을 얻은 호미곶면 구룡포도 들렀다.

호미곶 아래쪽에 있는 구룡포엔 일본인 가옥 거리가 있다.

아기자기한 일본 가옥들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마치 일본의 한 거리에 온 듯한 느낌이다.

드라마 배경이 된 카페 내부를 들어가 봤다. 동백꽃 모양 '동백빵'과 카푸치노를 시켰더니 은근 잘 어울렸다.

카페 2층은 다다미가 그대로 남아 있다.

저렴한 가격에 일본 여행을 다녀오고 싶은 사람들에게 잘 맞는 여행지인 듯하다.

그 옆 건물은 셀프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진관이 있다.

구룡포가 오늘날 모습을 갖추게 된 건 일제 강점기 때다.

고기잡이가 시원치 않던 일본 가가와현 등의 어부들은 물 반 고기 반인 구룡포를 '엘도라도'라 부르며 앞다퉈 이곳에 진출해 물고기를 잡아 날랐다는 말이 전해진다.

구룡포 근대역사관은 1920년대 가가와현에서 온 하시모토 젠기치(橋本善吉)가 지은 2층짜리 일본식 목조 가옥이다.

이곳에선 일제의 바다 자원 수탈에 관한 정보를 들을 수 있다.

◇ 빼놓을 수 없는 겨울 진미…포항 과메기와 북부시장 회

포항을 대표하는 먹거리 하면 포항 사람들은 주저 없이 과메기를 꼽는다.

과메기는 겨울에 청어나 꽁치를 얼렸다 녹였다 반복하며 그늘에 말린 반건조 생선이다.

원래 청어로 만들었으나 생산량이 줄면서 꽁치로 만들다가 최근 청어 생산량이 회복되면서 꽁치와 청어 두 가지로 만든다.

과메기는 포항 남구 구룡포읍과 장기면, 호미곶면 일대 바닷가에서 건조하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과메기 맛은 꽁치나 청어의 질이 어느 정도인지, 얼마나 잘 말리는지에 달렸다.

등푸른 막회거리가 있는 영일대북부시장 [사진/성연재 기자]
등푸른 막회거리가 있는 영일대북부시장 [사진/성연재 기자]

포항에 가면 회도 빼놓을 수 없다.

북부시장에서는 '등푸른막회'를 주메뉴로 내걸고 관광객을 유혹한다.

지인이 소개한 횟집에 들러 가자미 회 1㎏을 시켰다.

알다시피 가자미는 양식을 할 수 없다.

혼자였지만 1㎏을 거뜬히 먹어 치울 만큼 맛이 있고 신선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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