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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소프트볼? 노!"…여자 야구대표팀 김라경의 '무한도전'

송고시간2021-12-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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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여성들처럼 소프트볼이 아닌 야구를 하고 싶다는 그녀들이 첫 승을 거두기 위해선 마지막 타자를 반드시 잡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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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야구 대표팀 에이스 김라경, 지난 9월 여자야구팀 JDB 창단

11월 남자 사회인 야구팀 상대 첫 승…"'여자는 야구 말고 소프트볼' 편견 바뀌기를"

김라경(아랫줄 맨 오른쪽)과 JDB 선수들
김라경(아랫줄 맨 오른쪽)과 JDB 선수들

[김라경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마지막 이닝인 4회말 스코어 8-7, 2아웃 주자 1,2루 상황.

여느 여성들처럼 소프트볼이 아닌 야구를 하고 싶다는 그녀들이 첫 승을 거두기 위해선 마지막 타자를 반드시 잡아내야 한다.

긴장한 탓일까? 투수 박민성(18)이 던진 공이 타자 옆으로 크게 벗어났다. 이대로 공이 빠지면 동점주자인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올 수도 있었다.

위기를 직감한 포수 김라경(21)이 몸을 던졌고, 다행히 공은 포수 미트 안으로 들어왔다.

그 사이 주자들이 모두 한 루 씩 진루하면서 2,3루가 됐다. 이제 안타 한 방이면 동점이 아니라 역전까지 내어줄 수 있는 상황에 몰렸다.

위기를 직감한 포수 김라경이 몸을 던졌고, 다행히 공은 포수 미트 안으로 들어왔다. 박민성이 긴 숨을 내쉰 뒤 포수 미트만 바라보며 마지막 공을 뿌렸다.

바깥쪽 높은 직구에 타자가 방망이를 휘둘렀고, 공은 유격수 쪽으로 강하게 뻗었다.

경기장 안 모든 사람이 그라운드에 공이 구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숨을 죽이며 타구를 바라봤다.

유격수 박주아(17)는 침착했다. 땅볼을 잡아낸 박주아는 재빨리 글러브에서 공을 빼내 1루에 힘껏 던져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고 승리를 지켜냈다.

타격하는 박민성 선수
타격하는 박민성 선수

[김라경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9월 창단한 여자 야구팀 'JUST DO BASEBALL'(JDB)이 11월 20일 경기 화성 드림파크야구장에서 남자 사회인 야구팀을 상대로 창단 첫 승리를 올렸다.

선발 투수로 출전해 3이닝을 3실점(1자책)으로 막아낸 뒤 4회부터는 포수를 맡은 김라경이 승리 투수, 4회말 2아웃에 등판해 마지막 타자를 아웃시킨 박민성이 세이브 투수가 됐다. 유격수 박주아의 깔끔한 수비도 JDB 첫 승에 힘을 보탰다.

JDB는 김라경이 만든 야구팀이다.

김라경(서울대 체육교육과)은 시속 110㎞에 육박하는 볼 스피드를 자랑하는 한국 여자야구 대표팀 부동의 에이스다.

첫 승리 경기에서 활약한 박민성과 박주아처럼 '제2의 김라경'을 꿈꾸는 어린 선수들이 마음껏 야구를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팀을 창단했다.

'국민 스포츠'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야구 인기는 절대적이지만 상대적으로 여자야구는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화려한 남자 야구선수들에 비교해 여자야구의 현실은 더욱 초라하다.

김라경은 그런 척박한 여자야구 현실을 자신의 손으로 바꿔보겠다는 의지로 JDB를 창단했다.

유튜브 채널 '프로동네야구 PDB'를 통해 JDB의 전 경기를 생중계하는 것도 야구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방편이었다.

지난 5일 경기도 구리에서 만난 김라경은 첫 승의 감격은 모두 잊은 채 JDB의 향후 행보와 한국 여자야구의 미래에 온 관심이 집중된 상태였다.

김라경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박민성과 박주아 같은 어린 여자야구 선수들이 야구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학원 스포츠 및 스포츠클럽'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15년 제정된 '김라경 룰'에 따라 여자 야구선수들은 중학교 3학년까지 리틀야구에서 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지만 이후가 문제였다.

여자 야구팀이 있는 고등학교나 대학교가 한 곳도 없어 리틀야구를 졸업한 여자 야구선수들은 더는 학생 선수 신분으로는 야구를 할 수 없다.

유일한 선택지는 여자야구 사회인리그(WBAK) 뿐이다.

한국여자야구연맹이 주관하는 WBAK는 수도권 리그 23개 팀, 대전·충청·호남권 리그 6개 팀, 영남권 리그 6개 팀으로 운영된다. 여자야구 선수들 대부분이 소속돼 있는 한국 여자야구의 근간이다.

역투하는 김라경
역투하는 김라경

[김라경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하지만 김라경은 WBAK와 같은 사회인리그 중심으로 운영되는 여자야구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직업과 취미를 병행하는 수준의 사회인 리그에서는 체계적인 선수 육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자야구 선수들은 리틀야구를 졸업하면 더는 학교에서는 야구를 할 수가 없어요. 여자야구 중학교팀과 고등학교팀이 한 곳도 없어요. 결국 WBAK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죠. 하지만 사회인리그에서는 제대로 된 지도자를 모시기 힘들기 때문에 어린 선수들이 체계적인 훈련을 받을 수가 없어요. 결국 혼자서 운동하거나 개인 레슨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팀 스포츠인 야구는 그런 식으로는 실력이 늘 수 없어요. 사회인리그의 한계죠."

김라경이 바라는 한국 여자야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지난 2010년 여자 프로야구를 출범한 일본처럼 우리도 실업리그와 프로야구로 이어지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자고 강변한다.

그 계획의 첫 단계로 어린 선수들이 체계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는 JDB를 창단했다.

김라경이 자신의 친오빠 김병근 전 한화 이글스 투수를 감독으로 선임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JDB가 WBAK에 참여하지 않고 자신들보다 힘과 체격이 훨씬 앞서는 남자 야구팀과 경기를 갖는 것도 사회인리그를 뛰어넘어 새로운 여자야구 시스템으로 나아가는 토대를 마련하고 싶어서다.

"여자 야구가 사회인 리그 틀에만 갇혀 있는 한계를 느꼈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차원의 리그를 만들고자 합니다. JDB가 WBAK에 참여하는 것은 창단 취지와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WBAK를 뛰어넘는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죠"

문제는 실업리그의 기반이 될 지자체와 기업들의 참여를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느냐다. JDB 창단이 첫 단추였다면 이들의 협조를 얻어내는 것이 두 번째 관문이다.

"지역별로 9개의 실업팀을 육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시다발로 9개의 여자 실업팀이 생겨서 서로 경쟁하는 구도가 만들어지면 충분히 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가장 적극적인 지자체는 창원이에요. 사기업인 LG도 여러 국제대회와 국내대회를 개최하는 등 여자야구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요. 이들 중심으로 실업리그만 만들어지면 자연스럽게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도 여자야구팀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경기 시작 전 김병근 감독의 작전 지시를 듣는 JDB 선수들
경기 시작 전 김병근 감독의 작전 지시를 듣는 JDB 선수들

[김라경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하지만 김라경과 JDB만으론 한계가 분명하다.

체계적인 기반이 없는 여자야구가 살아남기 위해선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남성 중심적으로 판이 짜여있는 현 야구계의 지원이 절실한 상태다.

"야구장을 찾는 여성 야구팬이 갈수록 늘고 있어요. 그들이 단순히 관중석에서 응원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경기장으로 내려와 직접 야구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줘야 해요. 한국야구위원회(KBO)나 야구 구단들이 이를 방임해선 안 됩니다. 여성도 직업으로서 야구선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겁니다. 진정한 국민스포츠가 되려면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여자야구선수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여성은 소프트볼을 해야 한다'는 편견은 야구에 한없이 진지한 김라경과 JDB 선수들에게는 '차갑고 단단한 벽'이다.

"신체적 차이 때문에 여성은 소프트볼이 낫지 않냐는 분들이 있는데, 야구와 소프트볼은 완전히 다른 스포츠라고 생각해요. 물리적 힘에 대한 문제라면 성장에 따라 야구장 규격을 조절해 체계적으로 배우면 됩니다. 야구를 하고 싶은 저희를 온전히 야구선수로 바라봐 주세요."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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