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 호랑이 웅거한 인왕산 길

인왕산과 한양 도성[사진/조보희 기자]
인왕산과 한양 도성[사진/조보희 기자]

(서울=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벽초 홍명희(1888∼1968)가 쓴 근대 역사 대하소설의 최고봉 '임꺽정'에는 호랑이와 관련한 '꿀잼' 이야기가 많다.

임꺽정의 처남 황천왕동이는 백두산에서 태어난 '백두산의 아들'이다. 잘 생기고, 걸음이 빠르고, 장기 잘 두고, 여자라곤 아내밖에 모르는, 요샛말로 '훈남'이다. 천왕동이는 호랑이를 사냥하다 실패하고 새끼 네 마리만 잡는다.

그가 놓친 호랑이는 '돌팔매의 달인' 배돌석이 호랑이의 벌어진 아가리에 돌을 던져 넣어 잡게 된다. 임꺽정의 넷째 부인이 되는 과부 김씨는 혼인 첫날 밤 남편을 물고 가려던 호랑이 꼬리를 잡고 놓지 않은 채 끌려가다 결국 호랑이가 입에 물고 있던 남편을 내려놓게 만드는 억척녀이다.

◇ 영원히 길들지 않은 한민족의 반쪽, 호랑이

이 밖에도 '임꺽정'에는 호랑이에 대한 흥미로운 언급이 널려 있다. 이는 호랑이가 한민족에게 정서적으로 얼마나 가까운지 보여준다. 호랑이는 소나무와 함께 한민족 정서에 가장 깊이 녹아있는 생물일 듯싶다.

호랑이는 한반도 건국 신화에도 등장한다. 호랑이와 곰은 굴속에서 쑥과 마늘을 먹고 햇빛을 보지 않은 채 백일을 참으면 사람이 될 수 있었는데, 곰만 사람이 됐다. 한국인이 숭배하고 두려워했던 호랑이의 야성은 길들지 않은 채 민족정기로 흐르고 있지 않나 싶다. 1980∼1990년대에는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로 불렸던 적도 있다.

2022년 임인년(壬寅年)은 '검은 호랑이'해이다. '임'(壬)은 검정, '인'(寅)은 호랑이를 뜻한다. 몇 년 전 검은 야생 호랑이를 발견했다거나 흑호 새끼가 태어났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지만 사실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검은 얼룩무늬가 크거나 짙은 호랑이 또는 흑표범 새끼를 흑호로 오인하기 쉽다고 한다. 흰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를 가진 백호는 대립 유전자 구성이 열성 동형 접합일 때 나타난다. 희귀하나마 가끔 볼 수 있는 백호처럼 흑호도 존재할까. 알 수 없지만 흑호가 백호보다 귀한 것은 틀림없겠다.

인왕산 호랑이 상[사진/조보희 기자]
인왕산 호랑이 상[사진/조보희 기자]

◇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 없다

한국에서 호랑이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인왕산이다.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 없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옛날에 호랑이가 많이 살았다. 이제 호랑이를 찾아볼 수 없게 됐지만, 산과 바위의 모양, 이름에서 호랑이와 인연은 지금도 느껴진다.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내사산(內四山)은 북악산(342m), 인왕산(338.2m), 목멱산(남산, 265.2m), 낙산(125m)이다. 한국의 산은 첩첩이 이어진 겹산의 멋이 특징이다. 그러나 북악과 인왕은 단독으로 우뚝 솟아 있다. 서울의 심장부 광화문에서 올려다보면 의젓하고 당당한 게 수도의 자부심을 대변하고도 남는다. 이중 흰빛을 띤 큰 화강암 덩어리 같은 인왕산은 옆으로 길게 누운 호랑이를 연상시킨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정선과 강희언은 걸작 '인왕제색도'와 '인왕산도'를 각각 남겼다. 한여름 소나기가 그친 뒤 안개가 피어오르는 인왕산의 물기 머금은 바위를 우람하게 표현한 인왕제색도는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이건희 컬렉션'에서 공개돼 대중을 열광시켰다.

인왕산 정상 가까이에는 범바위가 있다. 범바위는 수많은 탐방객이 매일같이 찾는 명소 중 한 곳이다.

한양도성길 인왕산 구간[사진/조보희 기자]
한양도성길 인왕산 구간[사진/조보희 기자]

◇ 그 많던 호랑이는 다 어디로 갔나

인왕산의 이름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의 이름 '인왕'(仁王)에서 유래했다. 옛날 호랑이는 '어진 동물의 왕'(仁王)으로 여겨졌다. 호랑이는 재미로 사냥하지 않고, 배가 부르면 먹잇감이 제 발로 와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수호랑이는 사냥 후 새끼와 암컷부터 챙겨 먹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의 70%가량이 산인 한국은 호랑이가 서식하기 좋아 '호랑이의 나라'라고 일컬어지기도 했다. 주역에서 호랑이의 방위를 지칭하는 '인방'(寅方)은 한반도와 만주를 뜻하는 동쪽 혹은 동북쪽을 말한다. 한국인들은 호랑이를 무서워했지만 미워하지는 않았다. 호랑이가 사납지만 간교하지 않고 용맹하고 우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서식하던 호랑이는 17세기부터 인구 증가와 농경지 확대로 감소하기 시작해 일제강점기 유해조수 구제조치가 시행되면서 격감했다.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한 마리가 마지막으로 포획된 뒤 더는 관찰되지 않았다. 환경부는 1996년 공식적으로 휴전선 이남에서 호랑이가 멸종했다고 선언했다. 현재 동아시아 분포권에서는 한국의 백두산 일대, 중국 동북 지방, 소련의 극동, 연해주 흑룡강 계곡 등에 극히 적은 호랑이가 생존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왕산 치마바위[사진/조보희 기자]
인왕산 치마바위[사진/조보희 기자]

◇인왕산 세 갈래 길…한양도성길 4코스, 인왕산 자락길, 인왕산 숲길

서울의 진산인 인왕산에는 걷기 좋은 도보 여행길이 여러 갈래이다. 주요한 길만 꼽아도 한양도성길, 인왕산 자락길, 인왕산 숲길 등 세 갈래나 된다. 2011년에 타개한 박완서 선생의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에는 어린 소녀가 서대문구 현저동 산비탈에서 인왕산길을 걸어 종로구 필운동에 있던 매동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이 그려져 있다. 외로운 소녀가 고독하게 걸었던 길은 이제 많은 시민의 탐방로가 됐다.

내사산에 있는 한양도성길 중 4코스인 인왕산 코스는 창의문에서 시작해 윤동주 문학관∼치마바위∼선바위∼권율 도원수 집터∼홍난파 가옥∼월암근린공원∼베델 집터∼경교장∼돈의문터∼창덕여중 후문∼이화여고∼정동극장∼정동교회∼배재학당∼소의문(서소문) 터∼숭례문으로 이어진다. 약 5㎞ 거리인데 역사 유적을 꼼꼼히 둘러보려면 걷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인왕산 정상은 서울 시내, 내사산과 외사산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서울을 바깥쪽에서 둘러싼 북한산, 관악산, 아차산, 덕양산이 외사산(外四山)이다. 8개 산 중 행주산성이 자리한 덕양산만 안산에 막혀 볼 수 없다. 중종의 첫째 부인으로 비극적 삶을 산 '7일의 왕비' 단경왕후 신씨가 중종을 잊지 못해 다홍치마를 내다 걸었다는 장소인 치마바위를 비롯해, 기차바위, 부처바위, 모자바위, 선바위 등이 정상 부근에 있다.

한양도성길 4코스는 한국 근대사가 복잡다단하게 펼쳐진 무대인 정동과 남대문으로 이어진다. 김구 선생 사저인 경교장, 1905년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했던 장소인 중명전 등에는 초겨울 쌀쌀한 날씨에도 탐방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양도성길에 얽힌 근대사는 여기서 간략히 다룰 수 없는 큰 주제이다. 별도의 탐방 기회를 엿보기로 한다.

다만 정동 일대에는 '한국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랜드마크가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1935년 최초의 연극 전용 극장으로 문을 연 동양극장 터,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손탁호텔 터, 최초의 여성 전용 병원이었던 보구여관 터, 최초의 장로교 교회당인 정동교회 터, 최초의 감리교 교회당인 정동제일교회, 최초의 서양식 천주교 성당인 약현성당이 도성길을 따라 펼쳐져 있었다.

수성동 계곡[사진/조보희 기자]
수성동 계곡[사진/조보희 기자]

◇ 오직 아름다운 경치만 있을 뿐…무무대(無無臺)

인왕산 자락길은 북악스카이웨이와 연결된 인왕스카이웨이 옆으로 난 산책길이다. 윤동주 문학관∼무무대 전망대∼황학정∼황학정 국궁전시관∼사직단으로 이어진다. 거리는 2.7㎞ 정도다. 데크길이 잘 조성돼 해가 져도 산책하는 시민들이 많다. '무무대'(無無臺)는 '아무것도 없구나, 오직 아름다운 경치만 있을 뿐'이라는 의미다. 무무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새로 지어진 '초소책방 더 숲'은 '핫 플레이스'이다. 1968년 일명 '김신조 사건'으로 불리는 1·21 사태 이후 청와대 방호를 위해 운영해오던 경찰 초소를 2018년 인왕산 전면개방에 따라 리모델링했다.

인왕산 숲길은 자락길 아래쪽에 나 있는 숲속 산책로이다. 윤동주 문학관∼이빨바위∼가온다리∼해맞이 공원∼수성동 계곡∼택견수련터로 이어진다. 거리는 약 2.5㎞이다. 숲길 코스에서 놓치면 아까운 곳이 수성동 계곡이다. 계곡의 물소리가 커 '수성'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계곡은 인왕산에서 가장 우람한 바위인 치마바위를 감상하기 좋은 포인트이다. 정선이 그린 '장동팔경첩' 중 '수성동'의 배경이 됐다.

인왕산 숲길[사진/조보희 기자]
인왕산 숲길[사진/조보희 기자]

◇ '가지 않은 길'과 '갈 수 있는 길'

20세기 미국 국민 시인으로 통하는 로버트 프로스트는 시 '가지 않은 길'에서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노래했다. 선택과 회한이라는 삶의 본질을 통찰한 시이리라.

프로스트가 가지 않은 길과 달리 인왕산의 세 갈래 길은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길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임인년 벽두를 '임꺽정'과 인왕산에서 출발해보는 것도 색다를 것 같다. 홍명희는 '임꺽정'에 대해 "사건이나 인물이나 묘사로나 정조로나 모두 남에게서는 옷 한 벌 빌려 입지 않고 순조선 거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고 말했다.

'조선말의 무진장한 노다지'로 평가받은 '임꺽정'을 읽으면서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지, 있기나 한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를 성찰하는 것은 책 속에서 노다지를 캐는 것과 흡사할 것이다. '임꺽정'은 호방한 서사의 멋과 술술 읽히는 재미가 쏠쏠하다. 섬뜩한 내용의 '지옥'이나 폭력 표현의 수위가 높은 '오징어 게임'보다 정초 오락거리로 제격일지도 모르겠다.

인왕산 길을 이리 걷고, 저리 가보면서 선택한 길과 가지 않은 길이 은유하는 삶의 역정을 되짚어 보는 것도 신년 초에 어울리는 일이다. 세 갈래 길은 미시적 차원에서는 다르게, 거시적 차원에서는 비슷하게 보일 것이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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