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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76년전 해방공간 신의주에선 어떤 일?

송고시간2021/11/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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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1945년 11월 23일 평안북도 신의주에선 학생들이 소련 군정과 공산당에 저항하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신의주학생의거'는 사소한 소동에서 시작됐습니다. 1945년 11월 18일 소련군이 주둔한 신의주 용암포에서는 공산당 주도로 인민위원회가 공산당을 환영하는 군중대회를 열었습니다. 인민위원회는 광복 직후 한반도 곳곳에 조직됐던 조선인 자치기구입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연단에 올라간 학생대표가 주최측 계획과 달리 축하연설을 하는 게 아니라 소련군과 공산당의 행패를 규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죠. 소련 군정 당시 한반도 최북단 접경지역인 신의주에서 북한 주민들에 대한 소련군 행패는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소련군 병사들이 현지 여성들을 겁탈하고 소련 군정을 등에 업은 좌익 세력이 주민들을 수탈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면서 공산주의에 대한 주민들의 염증이 점점 심해지던 상황이었죠.

소련군과 공산당 측은 규탄대회 소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게 돌아갔고 신의주 일대에는 소련 군정과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퍼져나갔습니다.

결국 이 지역 6개 중학교가 주축이 된 학생 3천500여명은 11월 23일 오후 2시 반공시위를 시작합니다. 학생들은 "공산당은 소련군의 군사력을 악용해 약탈·불법·기만 등 갖은 학정을 자행하고 있다"는 호소문을 낭독하고서 평북 인민위원회, 공산당 본부, 신의주 보안서(경찰서) 등을 습격했습니다. 이에 소련군 측은 기관총, 탱크, 전투기 등을 동원해 가혹하게 진압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 23명이 숨지고 700여명이 다친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또 1천여명이 체포됐으며 이들 가운데 일부는 시베리아로 끌려가 생사가 묘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의주학생의거는 해방 이후 처음으로 일어난 대대적인 반공시위로, 뒤이은 평양과 함흥 등 북한 지역의 반공 운동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사건 이후 한국 정부는 이를 '학생의거'로 규정하고 의거가 일어난 11월 23일을 '반공학생의날'로 1956년 지정했습니다. 그러나 1973년 각종 기념일이 통합 폐지돼 반공학생의날이 사라졌습니다. 이후 수십 년이 흐르면서 신의주 반공학생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점차 잊히고 있습니다.

유창엽 기자 송정현 인턴기자

yct94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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