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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제주문화](24) 제주 상징 돌하르방 "국가대표 문화재 될래요"

송고시간2021-11-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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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대표하는 상징물 하면 많은 사람이 '돌하르방'을 떠올린다.

제주의 상징 돌하르방이 제주 섬을 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지정문화재로의 도약을 꿈꾼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이하 유산본부)가 제주 돌하르방의 국가민속문화재 등록을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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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국가민속문화재 등록 추진…국내 47기 남아

"마을의 악한 기운을 막고 소원을 이뤄주는 수호신"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를 대표하는 상징물 하면 많은 사람이 '돌하르방'을 떠올린다.

다양한 모습의 제주 돌하르방
다양한 모습의 제주 돌하르방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에는 과거 조선시대 성문 밖 입구에 모두 48기의 돌하르방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현재 1기는 사라지고 47기가 남아있다. 사진은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로부터 받은 47기의 돌하르방 사진을 편집한 것. 2021.11.21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돌하르방은 벙거지를 쓰고, 툭 튀어나온 부리부리한 눈에 넓적한 주먹코, 꾹 다문 입을 하고 있어 어딘지 모르게 범접할 수 없는 근엄함을 풍기면서도 묘한 친근감을 준다.

제주의 상징 돌하르방이 제주 섬을 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지정문화재로의 도약을 꿈꾼다.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공항에서 만나는 돌하르방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 돌하르방 국가민속문화재 될까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이하 유산본부)가 제주 돌하르방의 국가민속문화재 등록을 추진한다.

유산본부는 우선 내년 1월부터 '돌하르방 국가민속문화재 지정 신청을 위한 자료보고서 작성 용역'을 시작, 돌하르방의 문화재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

유산본부는 제주의 상징인 돌하르방의 가치 연구를 통해 국가민속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재발굴, 국가지정문화재로의 승격을 위한 기초 자료로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제주 돌하르방 48기에 대한 문헌조사 분석, 민속문화재로서의 지정 가치와 필요성 도출한다.

현재 돌하르방은 제주도 민속문화재 제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관덕정 앞 돌하르방
관덕정 앞 돌하르방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의 대표 상징물 관덕정 앞 돌하르방. 사진은 23일 촬영한 관덕정 앞 남쪽에 있는 돌하르방의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우리나라 문화재 지정체계는 1962년 공포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국가지정문화재는 국보·보물·국가민속문화재·사적·명승·천연기념물·국가무형문화재로 분류하고 있다.

시·도지정문화재는 유형문화재, 민속문화재, 기념물, 무형문화재로 분류된다.

분류체계상 국가지정문화재의 경우 건축물을 제외한 유형문화재를 국보와 보물로 나누고, 기념물을 사적·명승·천연기념물로 세분화하고 있다는 게 차이점이다.

돌하르방이 지역 문화재를 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재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지 기대가 모인다.

◇ 제주의 수호신 돌하르방

'돌하르방'은 '하르방'(할아버지)이란 제주 방언에 '돌'이라는 낱말이 앞에 붙여진 단어로, '돌로 만들어진 할아버지'라는 뜻이다.

해방 이후 어린이들 사이에 장난스럽게 '돌하르방'이라 불리던 것이 1971년 제주도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면서 '돌하르방' 명칭이 공식화됐다.

그러나 원래 이름은 아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 석상을 '벅수머리', '우석목(偶石木)', '옹중석(翁仲石)'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다.

예부터 제주 사람들은 돌하르방을 마을의 악한 기운을 막고 소원을 이뤄주는 수호신이라 생각했다.

할머니들은 돌하르방을 보면 두 손을 모아 합장했고, 공손히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마을에 질병이 번지지 않은 것도, 숱한 난리가 일어났을 때 피해를 보지 않은 것도 모두 다 돌하르방 덕분이라 믿는 사람도 있었다.

아기를 갖지 못한 여인들이 돌하르방의 코를 쪼아서 돌가루를 물에 타 먹곤 했기 때문에 일부 돌하르방의 경우 코가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제주의 다양한 돌하르방(왼쪽부터 제주목·대정현·정의현의 돌하르방)
제주의 다양한 돌하르방(왼쪽부터 제주목·대정현·정의현의 돌하르방)

[촬영 변지철] 돌하르방 모두 현무암으로 만들어졌지만 조선시대 1목 2현 중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모양과 크기가 각기 다르다.

돌하르방은 조선시대 당시 제주의 행정구역인 제주목·대정현·정의현 등 1목 2현의 성문 밖 입구에 모두 48기(제주성 24, 대정성 12, 정의성 12)가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모두 제주에서 흔한 현무암으로 만들어졌는데, 1목 2현 중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모양과 크기에 공통점과 차이가 있다.

크기만 비교하면 제주목 돌하르방의 평균 신장은 181.6㎝로 가장 크고, 정의현 돌하르방은 141.4㎝, 대정현 돌하르방은 136.2㎝다.

제주목의 돌하르방이 당당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 더 위용 있고 예술성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48기 중 돌하르방 1기는 사라져 현재 제주목 23기, 대정현 12기, 정의현 12기 등 47기만 남아있다.

제주목의 돌하르방 2기는 서울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옮겨져 제주에는 45기만 남아 있다.

제주에 남아 있는 돌하르방은 사람들의 무관심과 도시 발달과정에서 무단으로 옮겨지면서 원래 위치가 아닌 관공서와 공항, 학교, 관광지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한때 돌하르방을 원래 위치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주장과 움직임이 있었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이뤄지지 못했다.

제주 돌하르방과 닮은 중국 요나라 시대 석인상
제주 돌하르방과 닮은 중국 요나라 시대 석인상

(선양=연합뉴스) 신민재 특파원 = 중국 랴오닝성 차오양시 젠핑현 박물관에 전시 중인 요나라 시대 석인상(왼쪽)과 제주 관덕정 앞 돌하르방. 2014.10.29 << 국제뉴스부 기사 참조, 우실하 한국항공대 교수 제공 >> smj@yna.co.kr

◇ 돌하르방의 기원 논쟁

아직 돌하르방의 기원에 대한 정설은 없다.

그동안 한국 학계에서는 제주 돌하르방의 기원에 대해 몽골(1206∼1368년)의 한반도 지배와 관련됐다는 '북방설'과 남미, 동남아 일대에서 유사한 석인상(石人像)들이 발견된다는 점에 착안한 '남방설', 조선시대 때 자체적으로 세웠다는 '자생설' 등이 제기됐었다.

그중에서도 몽골에서 기원했다는 북방설이 학자들 사이에 좀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존하는 돌하르방의 조성 시기를 추적해보면, 대정현·정의현·제주목 순으로 돌하르방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정현과 정의현 돌하르방은 각 현성(縣城)의 축성 시기인 15세기 초, 제주목의 돌하르방은 관덕정이 건설된 시기인 18세기 중반이다.

문제는 제주도 내에서 고대로부터 석인상을 조각했던 전통이 없던 상황에서 돌하르방이 갑자기 등장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돌하르방이 제주에 등장하게 된 배경을 외부에서 찾았다.

제주목의 돌하르방은 18세기 조선에서 유행한 석장승과 조형적 영향 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자생설을 뒷받침하는 듯하지만, 이보다 앞서 조성된 대정현과 정의현 돌하르방의 기원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맹점이 있다.

안녕! 돌하르방
안녕! 돌하르방

(제주=연합뉴스) 수학여행으로 제주돌문화공원을 찾은 학생들이 돌하르방을 보며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또 적도 해류와 구로시오 해류를 타고 남미와 동남아 지역의 석조 문화가 전파됐다는 남방설 역시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이 많다.

북방설은 13∼14세기 몽골 초원에 조성된 '훈촐로' 석인상의 모습이 놀랍게도 돌하르방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기인하고 있다. 몽골의 한반도 지배 시기에 닿아있어 15세기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대정현과 정의현 돌하르방의 기원을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다 지난 2014년 10월 제주 돌하르방과 생김새가 매우 흡사한 중국 요(遼)나라(907∼1125년) 시대 석인상(石人像)이 만주에서 발견돼 돌하르방의 기원과 관련해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우실하 한국항공대 인문자연학부 교수는 당시 "제주 돌하르방이 몽골을 통해 왔다고 할지라도 그 외형은 최소한 요대부터 시작됐고 요대 석인상의 외형이 몽골시대로 이어져 몽골 지배기에 제주까지 전해졌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성권 단국대 교수는 2015년 '제주도 돌하르방의 기원과 전개'란 논문을 통해 돌하르방의 기원을 북방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유라시아 대륙의 돌궐계 석인상과 몽골풍이 혼합돼 나타났다"는 주장을 폈다.

정 교수는 "제주도 돌하르방은 유라시아 대륙에 기원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도 자체의 독자성이 잘 나타나 있는 대표적인 문화 교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돌하르방은 제주에서 성문을 지키는 수문장으로서의 새로운 성격을 부여받았고, 18세기 들어와서는 한반도 남단의 석장승 문화의 영향으로 더 준수하고 잘생긴 제주읍성 돌하르방으로 발전하는 등 진화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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