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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의 외침...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송고시간2021/11/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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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1970년 11월 13일.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피복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노동운동가 전태일은 평화시장 앞에서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였습니다.

당시 22세인 그는 화염에 싸인 채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같은날 밤 숨을 거두었습니다.

1948년 대구의 가난한 집안 맏아들로 태어난 전태일은 1954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다니던 초등학교를 중퇴해야 했는데요. 이때부터 동생과 함께 동대문 시장에서 행상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아버지한테 배운 재봉기술을 바탕으로 1965년 평화시장 피복공장 보조로 취업해 하루 14시간씩 일하고 일당으로 당시 차 한 잔 값인 50원을 받았다고 하네요.

이듬해 직장을 옮겨 미싱사로 일하면서 어린 소녀들이 일당 70원을 받으며 점심도 굶고 일하는 것을 보고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여공들을 돕다가 해고되기도 했죠.

그는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돼 근로기준법 해설책을 사서 읽었다고 합니다. 여공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알리면서 노동조건의 부당성을 역설하는 등 활동을 벌이는 바람에 평화시장에서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게 됐죠.

하는 수 없이 공사판을 돌게 된 전태일은 1970년 9월 평화시장 노동환경 개선에 모든 것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의치 않게 되자 결국 분신으로 항거했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 항거는 한국 노동운동의 출발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식인의 노동현장 참여 등 사회운동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작년 11월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됐습니다.

유창엽 기자 이소은 인턴기자

yct94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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