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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붕괴참사 그후] ① 치유하지 못한 비극

송고시간2021-11-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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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철거건물 붕괴가 6일로 150일의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악몽을 치유하고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성찰과 대책이 필요합니다.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사업지에서 지난 6월 9일 철거 중인 건물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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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무너져내린 유가족 "하루하루 악몽, 트라우마 사비로 치료"

'마음의 병' 앓는 소방 구조대…'송구한 나날' 보내온 경찰 수사관

광주 철거건물 붕괴참사 희생자 추모제…멈추지 않는 눈물
광주 철거건물 붕괴참사 희생자 추모제…멈추지 않는 눈물

[연합뉴스 자료사진]

[※ 편집자 주 :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철거건물 붕괴가 6일로 150일의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복마전이 판친 재개발사업과 아무런 관련 없는 시내버스 탑승자가 대가를 치른 사회적 참사입니다. 악몽을 치유하고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성찰과 대책이 필요합니다. 지난 흔적과 남은 여정을 2건의 기사로 송고합니다.]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사업지에서 지난 6월 9일 철거 중인 건물이 무너졌다.

도로변에 자리한 5층 건물의 잔해는 바로 앞 정류장에 멈춰 선 시내버스를 덮쳤다.

짓눌린 버스 안에서 승객 9명이 숨졌고, 다른 승객과 운전기사 등 8명은 크게 다쳤다.

그날 이후 유가족은 이전의 일상을 되찾지 못할 정도로 고통의 나날을 보낸다.

참혹했던 현장을 경험한 소방관은 마음의 병을 안고, 진상규명이라는 짐을 진 경찰관은 송구함을 지닌 채 다섯 달을 거쳐왔다.

재개발사업지 철거공사 중 무너진 건물, 시내버스 탑승자 참변
재개발사업지 철거공사 중 무너진 건물, 시내버스 탑승자 참변

[연합뉴스 자료사진]

◇ "사라지지 않는 악몽…이 또한 책임자의 과오"

아들 없이 자매만 다섯인 집에서 A씨는 강아지 같은 막내였고, 오랜 친구처럼 살가운 딸이었다.

A씨는 시내버스를 타고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에 참변을 당했다.

버스에는 A씨 아빠도 함께 타고 있었다.

정류장 옆 아름드리나무가 버스 전면부 충격을 덜어주면서 목숨을 구한 부상자 명단에는 아빠가 포함됐다.

의식을 되찾은 아빠에게 가족들은 막내의 죽음을 알리지 못했다.

병원을 옮겨가며 몇 달씩 여러 수술을 받아야 했던 아빠는 굳이 막내의 상태를 묻지 않았다.

가족들은 A씨 사십구재를 치르고 나서야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자신의 부상 상태도 심각했기에, 막내가 식물인간이 됐더라도 살아있기만을 바랐던 아빠는 말을 잃었다.

여전히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한 아빠는 매일 악몽에 시달린다.

요양병원에서 퇴원한 엄마는 막내와 살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경기도에서 큰딸과 함께 지낸다.

엄마는 아침에 눈을 뜨면 발길 닿는 대로 낯선 동네를 배회한다.

광주 철거건물 붕괴참사 합동분향소
광주 철거건물 붕괴참사 합동분향소

[연합뉴스 자료사진]

A씨의 둘째 형부인 황옥철(46) 씨는 그날 이후 장인과 장모의 영혼이 무너져내렸다고 말했다.

유가족이면서 참사 부상자인 A씨 아빠의 육체적, 심리적 치료는 재개발 시행사이자 철거 원청인 HDC현대산업개발이 부담하고 있다.

단지 유족일 뿐인 A씨 엄마의 트라우마는 가족이 병원비를 부담하며 치료 중이다.

장인과 장모를 대신해 유가족 공동대표를 맡은 황씨는 현대산업개발에 책임 있는 태도를 요구했다.

돌아온 답변은 '사망자나 부상자가 아닌 가족의 트라우마 치료비는 지급할 수 없다. 청구된다면 합의금에서 제외한다'였다고 황씨는 설명했다.

황씨는 "현대산업개발은 사람이 생명과 육체만을 가졌다고 여기는 듯하다"며 "참사로 가족을 잃은 모두가 피해자이며 정신적인 고통 또한 과오임을 성찰했으면 한다"고 허탈함을 내비쳤다.

철거건물 붕괴참사 현장 구조작업
철거건물 붕괴참사 현장 구조작업

[연합뉴스 자료사진]

◇ "참사 현장이 일터…트라우마는 운명"

15년 차 소방관인 김영조(45) 소방장은 짓눌린 버스 차체를 비집고 들어갔던 때의 기억을 아픔으로 안고 있다.

움직임 없이 굳어버린 손과 발이 어둠 속에서 손전등 불빛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잊고 지낸 줄 알았던 새내기 소방관 시절의 교통사고 현장도 이번 참사를 겪고 나서 되살아났다.

가슴 한편에서 싸하게 퍼지는 서늘함과 등줄기를 타고 돋는 소름은 그날 이후 5개월이 지났는데도 불쑥 찾아온다.

"영문 모른 채 돌아가신 분도, 지금껏 다친 몸을 회복하지 못한 분도 계시는데요."

그의 잘못이 아닌데도 떨쳐내지 못한 죄책감, 소방관은 강인해야 한다는 강박은 마음속 상처가 밖으로 드러나지 못하도록 동여맸다.

광주 동부소방서는 참사 수습을 마무리하고 현장 활동에 투입된 모든 소방관이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상담에 참여하도록 했다.

상담이 시작되자 저마다 봉인해둔 생채기가 아물지 않은 채로 드러났다.

최일선에 나선 김 소방장뿐만 아니라 아비규환인 현장에서 저마다 몫을 수행했던 모두가 닮은꼴의 상처를 지니고 있었다.

봉인해둔 상처를 꺼내 보인 이후 김 소방장과 동료들은 위로와 격려를 전하며 함께 아픔을 극복 중이다.

김 소방장은 "참사 현장이 일터이기 때문에 정신적인 충격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 또한 소방관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철거건물 붕괴 수사 경찰, 현장 사무실 압수수색
철거건물 붕괴 수사 경찰, 현장 사무실 압수수색

[연합뉴스 자료사진]

◇ "한 줌 힘 보태는 구성원으로 성역 없는 수사"

"성역 없는 책임 규명, 저희에게 주어진 책무이자 시대적 요구임을 알고 있습니다."

광주경찰청에서 철거건물 붕괴참사 진상 규명의 한 축을 담당하는 A 수사관은 하루하루가 모든 국민이 지켜보는 평가대에 오른 나날이었다고 말했다.

참사 당일 수사 전담팀을 꾸린 광주경찰은 붕괴 직접 원인 제공자, 재개발 복마전에 뛰어든 브로커 등 20여 명을 검찰에 넘기거나 피의자로 입건해 조사 중이다.

현대산업개발 본사 등 30여 곳에서 압수 수색을 해 확보한 증거물, 통신기록과 금융자료는 A4용지로 10만 쪽에 달한다.

참사 발생 두 달 보름가량 주말 구분 없는 수사가 매일 자정까지 이어졌다.

굴착기 기사, 현장소장, 감리자, 시행사 직원, 공무원 등 주요 피의자 9명을 수사 착수 약 50일 만에 검찰로 넘기는 등 초기에는 속도감을 보이기도 했다.

경찰 수사는 철거 원청의 책임 소재를 규명하는 단계에 접어들면서 유가족과 시민사회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됐다.

현대산업개발 최고 경영자 등에 대한 처벌이 '꼬리'를 다룰 때만큼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A 수사관은 "붕괴 직접 책임을 현대산업개발에 물어야 한다는 국민 눈높이를 수긍한다"며 "법의 영역 안에서 지금껏 시원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점은 송구하다"고 말했다.

그는 "비극의 반복을 막는 초석은 책임자 처벌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유념하고 있다"며 "참사 수습에 한 줌 힘을 보태는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남은 수사에 집중하겠다"고 덧붙였다.

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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