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당진에서 영덕까지…우리가 몰랐던 국토의 속살 ②영덕

'맑은 공기 특별시' 영덕…볼 것 먹을 것도 많은 숨은 매력 즐비

(영덕=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죽죽 뻗은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시각적으로도 청량감을 준다.

사유지이지만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숲의 주인은 무료로 숲을 공개하고 있다.

3.18 만세운동이 벌어졌던 영해읍에는 365일 태극기가 내걸려 있다. 수백 년 된 고가옥들이 즐비한 괴시마을도 빼놓을 수 없다.

탁 트인 가을 하늘과 푸른 바다…영덕 블루로드의 매력 [사진/성연재 기자]
탁 트인 가을 하늘과 푸른 바다…영덕 블루로드의 매력 [사진/성연재 기자]

◇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한 바다 공기…블루로드 걷기

쓰고 있는 마스크가 갑갑한 건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가끔은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을 때가 있다.

확 벗어버리고 탁 트인 동해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가봤다.

동해로…

영덕에는 탁 트인 동해를 옆에 두고 걸을 수 있는 '해파랑길'이 있다.

해파랑길은 저 멀리 남쪽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조성된 688km의 걷기 길이다.

해파랑길이기도 하지만, 영덕군 구간은 '블루로드'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워낙 알려진 길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아껴둔 곳을 찾았다.

해안 절경 사이로 걷는 영덕 블루로드 [사진/성연재 기자]
해안 절경 사이로 걷는 영덕 블루로드 [사진/성연재 기자]

해파랑길 제21코스인 축산읍 축산항에서 영덕읍 노물리 해변까지의 길이다.

모두 12.7㎞의 이 길은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동해의 비경들이 모두 들어가 있다.

영덕읍 노물항에서 축산항까지의 길은 데크와 흙길이 적절히 섞여 있어 단조롭지 않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빨간 등대를 배경으로 걷다 보니 가슴이 탁 트인다.

요즘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 아무도 없는 길을 걷는 것은 참으로 호사스러운 일이라 생각됐다.

노물리에서 출발해 축산항까지 향했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와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 등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온다.

등허리에서 흐른 땀으로 촉촉했지만 잠시 쉬었더니 바닷바람이 모두 말려준다.

2시간여를 걸은 뒤 축산항에 도착하니 저녁나절이다.

괴시마을 전경 [사진/성연재 기자]
괴시마을 전경 [사진/성연재 기자]

◇ 고가옥 가득한 괴시마을

영해읍의 괴시마을은 올해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민속 마을이다.

그렇지만 전국적으로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조용한 동네다.

고려말 대학자인 목은 이색(1328~1396)의 고향으로도 알려진 이곳은 이후 1630년 영양 남씨가 정착해 400여 년간 후손들이 거주해 온 마을이다. 마을에는 종택과 고택, 서당 등이 17동 남아 있다.

마을은 기역 자 모양의 가옥과 미음 자 모양의 가옥 등 다양한 형태가 혼재돼 있다.

동해안의 황금 들판인 영해 들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이 지역 모든 정치 사회 문화의 중심이 돼 왔다.

즐비한 고가옥 중에는 영감댁과 천천댁 등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숙박을 받는 곳도 있다.

이 두 곳은 모두 미음 자 형태의 가옥으로, 바닷가의 거센 바람을 막기에 알맞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중 천천댁은 마을에서 가장 조경이 뛰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잘 가꾼 잔디마당 한가운데는 육중한 원목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기품있는 분재가 자리 잡고 있다.

손님들이 기거하는 방은 각종 다양한 책들로 가득 차 있다.

하룻밤 묵고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일정이 맞지 않아 숙박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천천댁의 인상적인 조경 [사진/성연재 기자]
천천댁의 인상적인 조경 [사진/성연재 기자]

◇ 365일 태극기 물결…영해 읍내

다소 차분해 보이는 영해 읍내. 한 가지 특이한 게 있었다.

국경일도 아니었는데 태극기가 곳곳에 걸려있다. 버스정류장의 한 주민에게 물어보니 365일 걸려있다는 것이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3.1절 이후 전국으로 퍼져나간 만세운동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만세운동이 펼쳐졌던 곳이었다.

3.18 독립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8일 오후 당시 동해안 최대시장이었던 영해 장날에 열린 동해안의 가장 큰 규모의 만세운동이다.

이 운동은 평양신학교로 유학을 하러 가다 서울에서 전개된 3.1 만세운동을 목격한 김세영에 의해 시작됐다.

그는 고심 끝에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와 지역 기독교인들 중심으로 거사를 준비했다.

뜻을 모은 이들은 일대의 유지들에게 참여 약속을 받고 장날인 3월 18일에 거사했다.

1년 내내 태극기가 걸려있는 영해만세시장 [사진/성연재 기자]
1년 내내 태극기가 걸려있는 영해만세시장 [사진/성연재 기자]

영해 주재소 앞에 당시 3천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손수 그렸던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들은 성난 파도처럼 영해공립보통학교와 소학교, 영해면사무소, 영해우편소 등을 점령했다.

한번 불이 붙은 운동은 밤새 계속됐다. 인근 병곡면까지 내달려 경찰주재소 등을 접수했다.

다음날 일본군 기마병까지 동원된 무자비한 탄압이 시작돼 주동자였던 임창목 등 모두 8명이 순국하고 180여 명이 검거됐다.

당시 주 배경이 됐던 영해 시장을 들렀는데, 그곳에도 온통 태극기 물결이다.

이름도 '영해만세시장'이다. 좌판에는 바닷가 가까운 곳이라 그런지 싱싱한 가자미, 문어 등 해산물이 넘쳐났다.

장을 본 노인들은 노란색 버스 모양을 한 버스 정류소 건물에 머물렀다가 군내버스가 도착하자 바리바리 싼 비닐보자기를 들고 버스에 올랐다.

가슴이 뻥 뚫리는 메타세쿼이아 숲 [사진/성연재 기자]
가슴이 뻥 뚫리는 메타세쿼이아 숲 [사진/성연재 기자]

◇ 새로운 명소 메타세쿼이아 숲

영해면 벌영리에는 개인이 가꾼 메타세쿼이아 숲이 있다.

사유지였던 이곳은 블로거 몇 명 덕분에 알려지면서 일반인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주인은 숲을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특히 죽죽 뻗은 메타세쿼이아 나무의 모습은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갑갑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탁 트이게 만든다.

무료 주차장까지 있어 숲의 푸르름이 그리운 사람들은 잠시 차를 주차한 뒤 산책해도 좋은 곳이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길게 죽 뻗은 길에 사람 몇 명 없다.

이곳은 메타세쿼이아뿐만 아니라 피톤치드 함유량이 많은 편백이 공존하는 곳이다.

가을을 맞아 서서히 색이 변하고 있는 메타세콰이아 숲은 더욱 아름다웠다.

아이를 데리고 젊은 부부가 숲에서 함께 놀아주는 모습이 무척이나 보기 좋았다. 사진 한 장에 영감을 받고 대구에서 이곳까지 찾았다고 한다.

100년 전통의 한옥 건물 [사진/성연재 기자]
100년 전통의 한옥 건물 [사진/성연재 기자]

◇ 빼놓으면 아쉬운 숙소 은혜당

여행 과정에서 특색있는 숙소를 만나는 것도 큰 행운이다.

괴시마을에서 숙박하지 못한 아쉬움은 축산면의 지은 지 1백 년 넘은 고택 숙박으로 달래기로 했다.

포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주인 박태준 씨는 2013년 이곳에서 다 쓰러져가는 한옥을 인수해 하나하나 손수 고친 미음 자 형태의 가옥이다.

작은 방을 예약했는데 3인 가족이 머물 수 있는 황토 방갈로로 업그레이드가 돼 있었다.

이곳은 최대 8명까지 묵을 수 있는 사랑채와 2명이 묵을 수 있는 본채의 작은방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인상적인 것은 부드럽고 푸근한 한옥 특유의 따뜻함이 곳곳에서 느껴진다는 것이다.

마치 고향 집에 온 듯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집안 곳곳에 박씨가 손수 항아리를 활용해 제작한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포털이나 숙박 앱을 통해 예약이 가능하다.

아침 식사로 나온 호박죽 [사진/성연재 기자]
아침 식사로 나온 호박죽 [사진/성연재 기자]

주인 부부는 특히 친절해 주변 가 볼 만한 곳과 맛집 등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숙박객에는 모닝커피도 무료로 제공한다.

아침에 일어나 음료를 주문했더니 호박죽도 함께 내주신다.

안주인이 직접 조리한 것이라 구수한 맛이 느껴졌다.

산 중턱에서 만날 수 있는 수프 전문점 [사진/성연재 기자]
산 중턱에서 만날 수 있는 수프 전문점 [사진/성연재 기자]

◇ 송이 향 그윽한 수프…숲속의 통나무 카페

영덕 강구항에서 머지않은 야트막한 야산에 영덕 특산물인 송이를 주재료로 한 수프를 파는 카페가 있다.

3년째를 맞는 이곳은 알음알음 사람들이 찾기 시작해 이제는 제법 마니아층이 형성돼 있다.

맛도 맛이지만, 산속 깊은 곳에 빨간색 페인트칠이 된 통나무집이 서 있는 모습은 특히 이국적이다.

그 앞쪽 아름드리나무 그늘에는 아웃도어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젊은 여성이 반갑게 맞이한다.

이곳을 운영하는 김수빈 씨다.

송이버섯 향이 느껴지는 수프 [사진/성연재 기자]
송이버섯 향이 느껴지는 수프 [사진/성연재 기자]

원래 서울의 광고 에이전시 디자이너로 일하던 김씨는 지난 2018년 외가 쪽인 영덕으로 귀촌했다.

그는 운 좋게 경상북도의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 사업 대상자가 됐다.

영덕 자연산 송이 수프와 영덕 송이 크림 라떼 등 이곳만의 특색있는 먹거리를 몇 가지 주문했다.

송이 수프를 한 숟갈 떠 넣자 향긋한 송이 맛이 입안에 그득 퍼졌다.

유기농 흑당에 조린 버섯을 넣은 라테도 생각보다 송이 맛이 잘 어울린다.

젊은 여성 2명이 따로 들어와 테이블에 앉는다. 한 명은 안동, 다른 한 명은 경주에 사는 여성이었다.

친구 사이인 둘은 이곳이 좋아 몇 주에 한 번씩 수프를 맛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버섯 수프 전문점을 찾은 여성들이 대화하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버섯 수프 전문점을 찾은 여성들이 대화하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1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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