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酒먹방] 사람을 품은 술…강원도 원주 모월 양조장

인근 농부들이 재배한 쌀로 양조

(원주=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치악산과 백운산 자락으로 둘러싸인 원주시 판부면 신촌리.

이곳에 자리 잡은 모월양조장은 원주 토박이인 김원호 씨가 조합원들과 함께 꾸려가는 곳이다.

농부의 아들인 그는 우리 쌀로 우리 술을 빚으며 '사라져가는 고향 논을 지키겠다'는 신념을 묵묵히 실현해가고 있다.

치악산 아래 자리한 강원도 원주는 예로부터 텃새가 없고 정이 많은 곳이었다.

그래서 모월(母月)이라고도 불렸다.

'잘난 아들 못난 아들 구분 없이 다 품어주는 어머니처럼,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누구에게나 밝은 빛을 밝혀주는 달처럼, 누구라도 품어주는 고장'이라는 뜻이다.

모월에서 생산되는 제품 [사진/전수영 기자]
모월에서 생산되는 제품 [사진/전수영 기자]

원주시 끝자락 판부면 신촌리에는 이 '모월'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술을 빚는 양조장이 있다.

원주 토박이인 김원호 씨가 '사람을 품은 술',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술'을 만들겠다는 철학을 담아 술을 빚는 양조장이다.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던 김 대표가 술을 빚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

술에 관심이 있던 친구들과 동호회처럼 모여 취미 삼아 술을 빚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해보자며 2014년 협동조합 형태로 회사를 만들었다.

농부의 아들인 김 씨는 직접 자신의 땅에서 재배한 쌀과 주변 농가에서 계약 재배한 쌀로 술을 빚는다.

점점 사라져가는 고향의 논을 지키겠다는 것이 본격적으로 양조에 나서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쌀시장 개방을 앞두고 농민시위가 한창이던 시절, 시위에 나섰던 아버지가 논두렁에서 먹던 막걸리는 외국산 쌀로 만든 막걸리였어요. 수입쌀로 만든 술을 마시면서 쌀 수입 반대를 목놓아 외치다니 아이러니하죠. 양조장을 차리겠다고 나섰던 저를 처음에 말리셨던 아버지도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으시더니 '그럼 잘해보라'며 제 편이 되어주셨죠."

2014년 조합을 설립한 김 대표는 2년 뒤인 2016년 제조 면허를 따고 증류식 소주 '모월 인'과 '모월 로'를 선보였다.

김원호 대표가 발효조에 담긴 술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김원호 대표가 발효조에 담긴 술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알코올 도수 41도의 '모월 인'은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한 우리술 품평회에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유명해졌다.

모월의 술이 다른 양조장의 소주와 확연하게 차이 나는 점은 누룩취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원주산 쌀과 누룩, 물로만 빚어 드라이하면서도 깔끔하고 청량한 맛을 자랑한다.

비결은 깐깐한 제조법에 있다.

"누룩취가 나지 않는 것은 누룩의 양을 최소화하기 때문이에요. 두 차례 밑술을 담그는 이양주 방식으로 술을 빚는데, 덧술을 할 때 1차로 담근 밑술의 효모 개체 수를 현미경으로 확인해 많으면 누룩을 적게 넣고 적으면 많이 넣는 방식으로 누룩의 양을 조절하면서 누룩의 비율을 5% 정도로 최소화합니다."

누룩이 적게 들어가다 보니 발효 기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20도의 저온에서 3∼4개월 발효를 거친 후 증류에 들어간다.

증류 전 발효 기간이 보통 열흘에서 길어야 2주가량인 것에 비하면 훨씬 길다.

증류 방식도 깐깐하다.

병입 완료한 증류식 소주 [사진/전수영 기자]
병입 완료한 증류식 소주 [사진/전수영 기자]

증류 초기에 나오는 높은 도수의 원액인 '초류'와 증류 끝부분에 나오는 40도 미만의 '후류'는 술 만드는 데 쓰지 않고 버리거나 소독용으로 쓰기 위해 따로 모아 둔다.

초류에는 숙취를 유발하는 나쁜 성분이 들어있고 40도 미만의 후류에는 술맛을 헤치는 나쁜 냄새까지 딸려오기 때문이다.

초류와 후류를 버리면 그만큼 나오는 술이 줄어들 수밖에 없지만, 최상의 원액만을 상품화하기 위해 이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이렇게 두 차례 증류를 거친 술은 유약을 바르지 않은 옹기 항아리에서 최소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 숙성을 거친 뒤 제품으로 출시된다. 모월에서는 약주인 '모월 연'과 모월 청'도 빚고 있다.

단맛과 신맛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일반적인 약주와 달리 단맛이 전혀 없는, 개성 넘치는 약주다.

단술을 좋아하지 않는 조합원들의 취향이 반영됐다고 한다.

침샘을 자극하는 신맛 때문에 호불호가 갈려 양조장을 직접 방문해 시음한 고객에게만 판매한다.

막걸리도 준비 중이다.

원주의 특산물인 닥나무로 탁주를 만들어 이미 지난해 특허를 출원했다.

닥나무를 우려낸 차로 술을 빚어 구수한 단맛이 깃들게 한 탁주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농사지은 쌀로 술을 빚기 시작한 김 대표는 부족한 양을 동네 논에서 재배한 쌀로 보충했고, 술 빚는 양이 늘면서 원주농협에서 원주산 쌀을 공급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직접 재배한 쌀이 5%, 주변 농가와 계약 재배한 물량이 15%, 원주농협에서 공급받는 쌀이 80%가량을 차지한다.

내년에는 양조장 앞 버려진 땅에 밀을 심어 직접 누룩을 빚을 예정이라고 한다.

사라져가는 고향 논밭을 지키겠다는 뜻을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1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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