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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더스] <우리 문화-4> '짐대하나씨'의 수난

송고시간2021-10-02 10:30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한다. 21년째 전국을 돌아다니며 우리 옛 장승(長栍)을 연구하고 있는 황준구(76) 씨가 먼저 펜을 들었다.

짐대하나씨(솟대 할아버지)
짐대하나씨(솟대 할아버지)

(좌)도둑맞기 전 짐대하나씨의 올바른 모습.
(중)도둑맞은 짐대하나씨가 경기도 용인의 우리옛돌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2006년 9월 29일 촬영한 것으로 기록된 ‘산사애인’ 사진자료.
(우)문화재청의 제9차 민속문화재 분과회의 자료에 따르면 짐대하나씨가 하늘을 보고 누워 있는 오리 모습으로 연출돼 있다. 2019년 문화재청 자료. [장승 연구자 황준구 제공]

옛 부안읍성의 동문안짐대당산(국가민속문화재 제19호)에는 300여 년 동안 마을을 지킨 '짐대하나씨'(짐대(솟대)할아버지, 부안 지역 사투리)가 있었다. 이 물건이 2003년에 갑자기 행방불명됐다. 조상 대대로 모시던 물건을 잃어버린 마을 사람들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그로부터 12년 후인 2015년, 이 짐대하나씨가 경기도 용인에 있는 세중옛돌박물관에 버젓이 전시돼 있는 사진을 발견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찍힌 각기 다른 사진 3장이었다. 즉시 부안군청에 제보했다.

그런데 부안군청은 제보한 지 3년 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다가 2018년에야 "도난문화재는 문화재청의 소관"이라며 뒤늦게, 그리고 태연하게 도난 신고를 했다. 문화재청의 문화재사범단속반이 제보자인 필자를 찾아와 조서를 꾸몄다. 그리고 2019년 3월 5일, 문화재청이 짐대하나씨 반환식을 가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짐대하나씨 반환식
짐대하나씨 반환식

(부안=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2003년 도둑맞은 동문안짐대당산의 짐대하나씨를 되찾아 반환식을 하는 자리에서 국가 민속문화재 제19호를 뒤집어놓은 채 행사를 진행하는 문화재청장과 부안군수. 2019.3.5 jaya@yna.co.kr

반가운 마음에 유심히 뉴스에 실린 사진을 보다 기가 턱 막혔다. 정재숙 문화재청장과 권익현 부안군수가 거행한 반환식 행사에 짐대하나씨가 거꾸로 눕혀 있었기 때문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처럼 망신살이 뻗쳤다. 문화재청장이 우리 민속 문화에 이리도 관심이 없단 말인가! 아니면 무식한 것인가.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문화재사범단속반이 이 짐대하나씨를 충청북도 진천의 한 야산에서 찾았다며 관련 사진까지 공개한 것이다. 세중옛돌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던 짐대하나씨가 그새 또 진천의 야산으로 갔단 말인가? 또 문화재단속반은 그것을 어떻게 찾았을까? 추리해 보면 답은 빤하다.

도난당한 국가민속문화재가 전시돼 있다는 사실을 접한 세중옛돌박물관 측은 전시를 중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시를 중단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장물 취득의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책임 문제를 회피하려니 문화재는 다시 버려져야 했을 것이다. 박물관에 전시돼 있었다는 사실을 숨긴 채 그냥 야산에 버려져 있던 것을 문화재단속반이 처음 발견한 것처럼 하면 그 책임을 모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화재청은 짐대하나씨가 옛돌박물관에서 4년여 동안 전시돼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도 감추고 있다. 문화재단속반이 도난당한 짐대하나씨를 진천 야산에서 찾아냈다는 시나리오는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문화재청의 제9차 민속문화재 분과회의 자료(2019)에는 문화재청장이 반환식 때 뒤집어 놓은 짐대하나씨의 모습이 제대로 된 것인 양 주장하는 사진도 올라 있다.

그게 아니라고 지적하니 짐대하나씨 전문가를 찾고 있다고 변명한다. 300여 년 동안 마을제사 때마다 짐대하나씨를 가슴에 안고 짐대 위를 오르내린 마을 어른들보다 더 뛰어난 전문가가 있을까.

사실 문화재청에는 우리 민속 문화의 뿌리라고 하는 벅수(수호신)와 솟대(짐대) 전문가가 한 명도 없다. 벅수(法首)와 장승(長栍)을 제대로 구별할 줄 아는 이조차 없다. "장승은 자기들 소관이지만 벅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업무"라는 기절초풍할 소리를 하는 곳이 문화재청이다. 도난당한 벅수가 있는 곳을 제보하면 우선 "등록문화재가 아니면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고 발뺌부터 한다.

고방실 돌장승
고방실 돌장승

1982년 죽장리 고방실 장승배기 옛터에서 찾아낸 돌장승. 명문이 검은색 페인트로 덧칠돼 있다. 1985년 무렵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진자료. [장승 연구자 황준구 제공]

1982년엔 진짜배기 '돌장승'이 경상북도 선산읍 죽장리 고방실이라는 옛 장승배기 터에서 발견됐다. 이 돌장승은 장승에 사람의 얼굴 모습이 나타나기 약 200년 전인 1415년 무렵 승여사(乘輿司; 조선시대 왕의 행차에 관한 의장과 교통 관계 사무를 담당하던 관서)가 세운 '소후'(小堠; 5리 또는 10리 단위로 세웠던 작은 장승)로 장승의 뿌리에 해당하는 보물급이다.

이 진짜 장승을 문화재청은 '이정표석'(里程標石)이라는 일제강점기 때의 폄하된 이름으로 기록하고 백과사전에도 버젓이 올려놨다. 이는 우리식으로 '장승'으로 불러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에 구미시청과 경북도청 관계자 및 문화재청 학예사 등은 콧방귀만 뀌었다. 일제가 벅수를 장승으로 왜곡했다는 설명에 어떤 이는 "재미있는 추리"라며 비아냥댔다.

돌장승
돌장승

마을 공동 쓰레기장 옆에 버려진 듯 세워져 있는 장승. [장승 연구자 황준구 제공]

문화재청은 어쭙잖은 반환식을 거행하기 앞서 부안의 짐대하나씨가 어떤 경위로 세중옛돌박물관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4년여 동안이나 전시돼 있었는지, 그 사실이 알려진 뒤 누가 또 그것을 진천 야산으로 가져갔는지를 밝혀야 했다. 문화재청의 문화재사범단속반은 그런 일을 하라고 만든 공무원 조직이다.

2003년 도난 때부터 2019년 반환식까지의 과정이 궁금해 전화로 물어보니 대뜸 하는 소리가 "원하는 게 뭐요?"였다. 이게 도난당한 문화재를 되찾게 해준 제보자에게 할 소린가. 20년 넘게 벅수와 장승을 찾아 헤매는 내게 "원하는 게 뭐요"라는 말은 충격 그 자체였다. 75년을 살면서 그렇게 무례한 일을 당한 적이 없었다.

깃발꽂이 벅수
깃발꽂이 벅수

경상감영 선화당 앞의 깃발꽂이 벅수들. 1905년 발행된 ‘우편엽서’ 일부. [장승 연구자 황준구 제공]

1700년 즈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대구 경상감영의 선화당에서 의전용으로 사용되던 깃발꽂이 용도의 벅수를 대구보건고등학교 뜨락에서 발견하고 대구시청에 제보한 적도 있다. 1907년부터 경상감영을 일제통감부의 대구이사청(大邱理事廳)으로 사용하면서 벅수 11개를 모두 뽑아버린 뒤 행방불명됐던 것이다.

깃발꽂이 용도의 벅수는 통영의 세병관과 논개고개, 밀양 사명대사 사당, 진주객사. 경주국립박물관, 호암미술관에서만 만날 수 있는 희귀한 돌벅수다.

얼마 뒤 대구시청은 경상감영의 '석인상'(石人像)을 찾았다는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돌렸다. 문화재청이 '벅수'를 부정하고 일제 강점기 때 만든 용어인 '석인상'을 고집하니 그 용어를 썼을 것이다. 그런데 자료에는 이 물건의 소유주(장물 취득자)를 의인으로 표현하면서 이를 어렵게 찾아낸 제보자에 대해선 일언반구 언급조차 없었다.

대구시청은 이 깃발꽂이 벅수가 어떤 과정을 거쳐 엉뚱한 곳에 가 있었는지엔 관심이 없었고, 오직 기증을 받는 일에만 신경을 썼다. 그리고 제보자를 푼돈이나 벌려는 파파라치 정도로 취급한 것이다. 짐대하나씨를 제보한 이에게 "원하는 게 뭐냐"고 물을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랴.

훼손된 벅수
훼손된 벅수

대구보건고등학교에서 발견된 팔꿈치가 훼손된 벅수. [장승 연구자 황준구 제공]

지금까지 도난당한 벅수를 10여 건이나 제보해 되찾았지만 담당자는 물론, 군청이나 시청 관계자로부터 빈말이라도 "고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없어진 문화재를 찾는 것도 어렵지만 제보를 하는 것은 더 어렵다. 특히 중요 문화재에 대해 제보할 때는 목숨을 걸 결심을 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역사적 존엄이나 문화의 품위보다 값나가는 재물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용인의 문시랑이 벅수를 찾아내고도 10년을 망설여야 했다.

'어제를 담아, 내일에 전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문화재청 사람들이 우리 것에 대해 더 많은 애정을 갖고 우리 옛것의 소중한 의미를 되살리는 데 진력해주기를 바란다. 또 하루빨리 일제강점기 때 배운 1세대 친일 민속학자들의 정서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그리고 도난당한 문화재를 찾아 제보하는 이가 있다면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길 바란다.

'장승(長栍)' 연구자 황준구
'장승(長栍)' 연구자 황준구

홍익대학교와 이 대학 산업미술대학원에서 광고디자인을 전공한 그래픽 디자이너다. 선경그룹과 현대중공업에서 일했다. 정년퇴직한 2000년부터 장승과 벅수를 공부하기 시작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제삿밥을 먹고 있는 500여 곳의 전통 벅수들을 기록하는 중이다.
누군가에 의해 납치당해 행방불명됐다가 그의 발품 덕에 원래 있던 곳으로 무사히 되돌아온 벅수가 여럿이다. 용인 '문시랑이'의 '미륵댕이', 밀양 원서리 '석골당산' 벅수, 구미시 선산읍 '부처밭골' 벅수, 부안읍성의 동문안 '짐대'(국가민속문화재 제19호) 등이 그들이다.
또 대구시 경상감영에 있던 '깃발꽂이 벅수'와 선산읍 '고방실' 장승배기의 돌장승도 찾아냈다. [황준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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