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통신 연락선 복원 계기로 남북 대화 재개 나서야
송고시간2021-09-30 13:35
(서울=연합뉴스) 미·중 패권 경쟁 심화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쪽을 향해 유화적인 손짓을 보냈다. 30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최고인민회의 시정 연설을 통해 "민족의 기대와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다음 달 초 남북 통신 연락선을 복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통신 연락선은 정전협정 기념일인 지난 7월 27일 단절된 지 13개월 만에 복원됐으나 북한은 불과 2주 후인 지난달 10일 한미 연합훈련을 이유로 이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지금은 우리 정부가 매일 통화를 시도하고 있어 북한의 호응만 있으면 소통 채널이 언제든 다시 열릴 수 있는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단순한 통신선 복원을 넘는 남북관계의 진전에 대해서는 남측의 태도에 달려있다며 공을 남쪽에 넘겼다. 또 "남조선은 북조선의 도발을 억제해야 한다는 망상과 위기의식·피해의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미국과 남조선이 도를 넘는 우려스러운 무력 증강, 동맹 군사 활동을 벌이며 조선 반도 주변의 안정과 균형을 파괴하고 북남 사이에 더욱 복잡한 충돌 위험들을 야기시키고 있다"는 등의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발언 기조는 남북관계 개선 쪽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판단된다.
김 위원장은 이번 연설에서 미국을 겨냥해 "교활하다"고 비난하는 등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에 강한 실망감을 표시했다. 실용주의적 대북 접근 정책을 천명한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 1년이 다 되도록 별다른 행동을 나서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보인다.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전임 미국 대통령 당시 다분히 이벤트적 성격이 짙은 톱다운식 외교 정책의 한계를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으나 과거 오바마 행정부 때의 '전략적 인내'로의 회귀는 더욱더 끔찍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관심과 현상 고착이다. 최근 대화 시그널을 간간이 발신하는 동시에 탄도 미사일 발사나 핵시설 재가동 움직임과 같은 도발적 행동을 병행하는 것도 어떻게든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런데도 미국이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만날 준비가 돼 있다"는 원칙론적 입장만을 반복하자 김 위원장이 거친 언사로 좌절감을 표출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 위원장의 통신 연락선 복원 발언은 북미 관계 개선의 우회로로 '통남봉미(通南封美)' 전술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우선 남북 관계 개선을 모색함으로써 꽉 막힌 한반도 정세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남북이 다시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을 갖게 됐다는 것은 남북 관계의 경색 국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북한이 한국과 미국을 갈라치려는 속셈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한미 동맹은 이런 정도에 흔들릴 만큼 허약하지 않고, 남북 대화에 미국의 지지 또한 명확하다. 미 국무부는 김 위원장의 연설 직후 "남북 협력을 강력히 지지하며 (남북 협력이) 한반도에 좀 더 안정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믿는다"고 논평했다. 핵 개발 문제가 부상하면서 북한 이슈의 핵심축이 북미 관계 쪽으로 이동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한반도 문제의 최종적이고 직접적인 당사자는 결국 남북한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반도는 세계 전략의 한 부분이지만 우리로서는 민족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한반도 평화와 민족 화해를 위한 노력은 국제 정세의 변화, 국내의 정치적 지형과 관계없이 언제나 추구해야 하는 정부와 정치권의 책무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이 말한 대로 통신 연락선이 복구된다면 본격적인 교류·협력을 위한 남북 대화의 마중물이 생기는 셈이고, 우리 정부가 북미 관계의 중재자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더욱 넓게 열릴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진의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국제 사회의 움직임에도 치밀하게 대응해야 함은 물론이다. 정부는 어렵게 찾아온 기회에 남북 대화가 재개되고 더 나아가 북미 관계 개선과 종전선언의 발판이 마련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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