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 백두대간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야생화 길

(태백=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태백산국립공원 내 금대봉~대덕산 구간은 국내 최대 야생화 군락지다. 금대봉(1,418m)은 남한 지역 백두대간의 한가운데에 해당한다.

백두대간 중심을 가로지르는 걷기 좋은 길이 있다. 두문동재∼금대봉∼고목나무샘∼분주령∼대덕산∼검룡소로 이어지는 탐방로이다. 금대봉 코스, 검룡소 야생화 탐방로 등의 이름을 달고 있다.

금대봉과 고목나무샘 사이 지점. 운탄고도, 하이원리조트 스키 슬로프, 가리왕산, 대덕산, 두타산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사진/전수영 기자]
금대봉과 고목나무샘 사이 지점. 운탄고도, 하이원리조트 스키 슬로프, 가리왕산, 대덕산, 두타산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사진/전수영 기자]

◇ 백두대간의 중앙 금대봉

강원도 인제군 점봉산에 있는 곰배령과 함께 이곳은 대표적 야생화 서식지여서 '천상 화원' '산상 화원'으로 불린다. 금대봉 코스는 인문·자연 지리를 알게 되면 더 걷고 싶어진다. 몇 번 탐방하게 되면 다른 곳으로 더는 가고 싶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적인 자연'과 백두대간의 웅장한 매력에 빠지게 된다.
싸리재라고도 불리는 두문동재(1,268m)는 정선의 만항재(1,330m), 지리산의 정령치(1,172m)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3대 고개다.

두문동재에서 금대봉을 거쳐 대덕산(1,307m)을 지나 검룡소로 내려오는 금대봉 코스는 태백산국립공원 내 5개 탐방 경로 중 하나다. 거리는 10㎞ 정도. 산행의 난이도는 상·중·하로 치자면 '하'에 해당하는 쉬운 길이다.

금대봉과 대덕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오르막을 제외하면 노인과 어린이도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다. 오르막길은 그리 길지 않다. 나머지는 대부분 평지처럼 편안한 길이다. 지질 용어로는 '고위평탄면'이라고 부르는 지형으로, 오래전 지질 활동으로 인해 평지가 융기한 지역을 말한다. 덕분에 체력이 강하지 않아도 해발 1천200m가 넘는 산악의 생태와 경관을 느껴볼 수 있다.

두문동재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금대봉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새벽에 가는 비가 내린 탓에 대기는 촉촉하고 햇빛은 맑았다. 박인섭 태백산국립공원 자연환경해설사는 금대봉 코스 일대에 "꽃이 많은데 인위적으로 심은 것은 하나도 없다"며 "같은 꽃이라도 인공과 자연의 차이는 사람에게 미묘하게 다른 반응을 일으킨다"고 말했다.

억지를 부리지 않은, 자연다운 자연은 사람을 더 편안하게 만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길이 가파르지 않아서인가. 초가을의 대기가 신선하고 습도가 적당해서인가. 숲으로 들어갈수록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고요해졌다.

금대봉 탐방로 풍경[사진/전수영 기자]
금대봉 탐방로 풍경[사진/전수영 기자]

◇ 슬픈 역사여 안녕

태백산국립공원 일대에는 피자식물(꽃을 이용해 번식하는 식물) 800여 종이 서식한다. 약 600종의 피자식물이 자라는 금대봉 권역은 1993년부터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금대봉 탐방로를 걸으면 노변에서만 최소 20~30여 종의 야생화를 볼 수 있다.

투구꽃은 앙증맞은 보라색 고깔 모양이었다. 가을에 고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꽃은 독성 때문에 옛날 사약 재료로 쓰였다.

소의 혀를 닮은 쇠서나물, 보라색 산부추, 곤드레나물이라고도 하는 보라색 고려엉겅퀴, 개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개미취, 마타리, 자주쓴풀, 쥐손이, 짚신나물, 질경이, 고들빼기, 각시취, 구절초, 놋젓가락나물, 산비장이, 수리취 …. 이날 만난 꽃의 상당수는 처음 본 것들이었다.

보라색 꽃이 많은 것은 이 색이 가을에 개체 수가 적어진 곤충의 눈에 잘 띄어 수분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금대봉에 오르니 남북으로 갈라지는 두 갈래의 백두대간 길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한 갈래는 매봉산을 거쳐 설악산, 금강산으로 이어지고 다른 갈래는 두문동재, 함백산, 만항재를 거쳐 지리산으로 내리뻗는다.

투구꽃[사진/전수영 기자]
투구꽃[사진/전수영 기자]

하늘에서 내리는 비도 금대봉에서 나뉘어 한강으로,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금대봉 남동 사면으로 떨어지는 비는 낙동강, 서북 사면으로 떨어지는 비는 한강으로 모인다. 금대봉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연못이 있다.

박 해설사는 백두대간 개념과 산맥 개념을 구분했다. '산맥'은 일제의 광물자원 수탈 과정에서 생긴 개념인 반면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의 긴 산줄기를 이르는 '백두대간'은 조선 시대 영조 때까지 흔히 쓰던 말로 우리 민족의 생활과 정서에 깊이 녹아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지난 2009년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산을 사랑하는 산 사람들이 등산 문화를 퍼뜨리면서 백두대간 개념은 다시금 널리 퍼졌다는 게 박 해설사의 해석이었다. 한반도의 영산과 젖줄이 분기하는 성소인 금대봉에서 피식민의 아픈 역사와 19세기 근대화 실패가 후대에 떠안긴 과제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했다.

두문동재에서 검룡소까지 들꽃이 지천으로 퍼진 데도 슬픈 역사와 아이러니가 없지 않다. 화전민이 낯설지 않았던 가난의 시대와 한국전쟁 직후 강원도 산간에 북한 무장 공비가 출몰하던 시절을 지나면서 태백산 일대에는 나무가 사라졌고, 나무 없는 양지에서 야생화가 번성했다.

금대봉 일대가 산상 화원으로 변모한 요즘, 다시 야생화는 감소하고 있다. 등산객, 탐방객들이 희귀 꽃들을 채취해 가기 때문이다. 보전지역으로 정해진 것도 그 때문이다. 반세기 전 야생화의 귀환을 마냥 기뻐할 수 없기에 들꽃이 사라져가는 현재를 개탄하기도 머쓱하다.

금대봉 정상[사진/전수영 기자]
금대봉 정상[사진/전수영 기자]

산과 강의 시원 앞에서 아픈 역사를 환기하는 건 미래를 다시금 바라보게 한다. 이분법으로는 사물과 역사의 본질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다. 삶과 역사는 야생화 정원처럼 슬픔과 기쁨, 옳고 그름, 성공과 실패가 얽히고설킨 것이다.

한국은 매우 짧은 기간에 산업화에 성공한 동시에 민주화를 이루었다. 그 결과로 국제사회로부터 선진국으로 인정도 받았다. 2021년 한국은 '블룸버그 혁신지수'(Bloomberg Innovation Index)에서 다른 선진국과 주요 신흥국들을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블룸버그 통신이 이 지수를 선보인 9년 동안 한국은 모두 7차례 1위를 했다. 미래는 그 정체를 알 수 없으나, 혁신이 있어야 보장되는 건 분명하다. 슬픈 역사와 이별하려면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 꽃보다 열매

길에 발을 맡기고 바람에 마음을 놓아주면 고정관념도 풀어지는가. 꽃보다 열매가 아름답다는 건 새삼스러운 발견이었다. 작은 불가사리 모양의 빨간 회나무와 개회나무 열매, 청포도보다 파릇한 산외 열매, 보라색 가시오갈피 열매, 마가목과 백당나무와 화살나무의 새빨간 열매 ….

회나무 열매[사진/전수영 기자]
회나무 열매[사진/전수영 기자]

작지만 싱싱하고 튼실한 열매는 꽃보다 탐스러웠다. 빗물을 머금은 회나무 열매는 꽃보다 영롱했다. 사실 화려한 젊음보다 부러운 것이 결실이 알찬 노년이다. 들꽃도 열매도 자세히, 오래 들여다볼수록 사랑스러웠다.

탐방 코스에는 태백산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두어 군데 있었다. 금대봉을 내려와 고목나무샘으로 향하던 어느 지점에서 금대봉, 은대봉, 운탄고도, 하이원리조트 스키 슬로프, 가리왕산, 대덕산, 두타산이 멀리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한국에 사는 맛은 이런 맛이야"라고 속말을 했다면 너무 가벼운가.

대덕산 정상에서는 왼쪽으로 태백산, 함백산, 금대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 잠자는 종주 본능을 자극했고 오른쪽으로 백운봉, 하이원리조트가 손짓했다.

◇ 같고, 또 다른 검룡소

검룡소는 한강 발원지다. 금대봉 기슭에 있다. 한강의 시원이라는 것만으로도 경외와 신비,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설명이 필요할까 싶다. 그러나 용틀임하듯 계곡 아래로 흘러내리는 힘찬 물줄기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장관이다.

지난해 초겨울에 검룡소를 탐방한 적 있다. 그때나 이번이나 검룡소에서 용솟음치는 샘물은 변함이 없었다. 검룡소에서는 하루 2천t에 이르는 엄청난 양의 지하수가 사시사철 한결같이 솟아 나온다. 물의 온도도 사계절 내내 9℃로 일정하다.

검룡소 물이 폭포를 이루며 흘러내리고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검룡소 물이 폭포를 이루며 흘러내리고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그러나 경관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지난해 검룡소 길은 낙엽 지는 일본잎갈나무의 황금빛으로 덮여 있었지만, 이번에는 푸르름이 지배하고 있었다.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하다. 일 년 내내 변화의 길을 달려가는 자연은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전국의 문화관광해설사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은 "한국의 자연은 최소한 계절 따라 네 번은 봐야 제모습을 알 수 있다"이다. 한국에서 명승지의 수는 원래의 수에 '4'를 곱해야 맞는다고 한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가령 명승이 100곳 있다면 그 아름다움의 종류는 400개에 이른다. 우리는 얼마나 부자인가.

산은 외경을 불러일으킨다. 소비 문화는 신성한 대지를 눈요기와 오락의 땅으로 전락시켰다는 한탄을 낳기도 한다. 자신을 객관화하고 낯섦을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마음을 열어놓는 게 여행이기도 하다.

그 여정의 어딘가에서 자기 혁신이 폭발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 박 해설사는 "걷고 싶은 길 중 3분의 1은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두 번째 3분의 1은 자연과 대화를 나누고, 나머지는 동행자와 대화를 나누어 보라"고 말했다.

아낌없는 여행은 새 출발의 다른 말이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1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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