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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거만 줄여서는 비만 치료 못 한다

송고시간2021-09-14 18:05

빠르게 흡수되는 '가공 탄수화물'이 주범

'에너지 균형 모델' 대체할 '탄수화물-인슐린 모델' 제시

하버드대 등 연구진, '미국 임상 영양학 저널'에 논문

비만과 T세포
비만과 T세포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CD8+ T세포(적색)는, 비만한 생쥐(하단)보다 비만하지 않은 생쥐(상단)의 종양(청록색)에 훨씬 더 많다.
[하버드의대 Ringel 등 제공 /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비만은 심장질환, 뇌졸중, 2형 당뇨병, 일부 암 유형 등의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비만은 하나의 질병(obesity epidemic)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 CDC(질병예방통제센터) 통계를 보면 미국 성인의 40% 이상이 비만이다.

미국 농무부의 '2020~2025 음식 섭취 가이드라인'은, 성인의 체중 감량을 위해 음식물 칼로리를 줄이고 신체 활동을 통한 칼로리 소비를 늘리라고 권고했다.

이런 접근법은 100년 전에 나온 에너지 균형 모델에 기초한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은 이런 모델의 에너지 균형이 깨지기 쉬운 환경에서 살고 있다.

저렴하게 가공되고 입맛에도 맞는 먹거리가 넘쳐나는데 신체 활동이 적은 좌식(坐式) 라이프스타일이 만연해 있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에도 불구하고 비만 인구와 관련 질환이 꾸준히 증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하버드대 등의 과학자들이, 효과적으로 체중을 줄이려면 '에너지 균형 모델'(energy balance model) 대신 탄수화물의 흡수 속도를 늦추는 '탄수화물-인슐린 모델'(carbohydrate-insulin model)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비만의 주원인은 많이 먹는 게 아니라, 빨리 흡수되는 가공 탄수화물을 과도하게 섭취하는 데 있다는 게 요지다.

미국 보스턴 아동병원의 내분비학자인 데이비드 루트비히(David Ludwig) 박사(하버드의대 교수 겸직)가 주도한 이 연구 결과는 13일(현지 시각) 미국 영양 학회(ASN)가 발행하는 '미국 임상 영양학 저널'(The American Journal of Clinical Nutrition)에 논문으로 실렸다.

백색지방의 뉴런
백색지방의 뉴런

백색지방은 쓰고 남은 칼로리를 몸 안에 비축한다.
지방 분해에 관여하는 백색지방의 뉴런은, 렙틴 호르몬이 결핍되면 성장을 멈추지만, 호르몬이 공급되면 다시 성장한다.
[미 록펠러대 분자유전학 랩 제공 / 재판매 및 DB 금지]

사실 '탄수화물-인슐린 모델'이 새로운 이론은 아니며, 그 뿌리를 찾자면 190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루트비히 박사를 필두로 저명한 과학자, 임상 연구자, 공중 보건 전문가 등 17명이 참여한 이번 연구 결과는 이 모델을 가장 포괄적으로 정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구팀은 '탄수화물-인슐린 모델'을 지지하는 과학적 증거들을 정리하면서, 에너지 균형 모델과의 차이점을 부각한 일련의 검증 가능한 가설들을 확인해 미래 연구 방향도 제시했다.

이 논문의 핵심은, 기존의 에너지 균형 모델로는 체중 증가의 생물학적 원인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논문의 제1 저자를 맡은 루트비히 박사는 "신체가 빠르게 성장하는 청소년들은 하루 음식물 섭취 에너지를 1천 칼로리나 늘릴 수 있다"라면서 "하지만 그렇게 많이 먹어서 신체가 급성장하는 것인지, 아니면 급성장기에 식욕이 왕성해져 과식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먹는 양보다 먹는 패턴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연장선에서 한번 음식을 먹은 뒤 올라가는 혈당을 수치화한 '혈당 부하 지수(GL)'를 주목했다.

과학자들은 특히 소화·흡수가 빠른 고(高) GL 탄수화물을 주범으로 꼽는다.

이런 탄수화물은 몸 안의 물질대사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호르몬 반응을 유발, 지방의 축적이 체중 증가와 비만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부채질한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실제로 가공도가 높은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우리 몸은 인슐린 분비를 늘리고 글루카곤 분비를 줄인다.

그러면 지방세포에 더 많은 칼로리를 축적하라는 신호가 전달돼, 대사 작용이 활발한 근육 등의 조직에서 쓸 칼로리는 줄어든다.

더 심각한 건, 이런 상황에서도 뇌는 몸에 충분한 에너지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보고 공복감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몸이 에너지를 보존하려고 하면서 대사 속도가 느려지는 것도 문제다. 이렇게 되면 몸에 과도한 지방이 쌓이는 동안에도 계속 공복감이 남을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비만 질환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먹는 양과 함께 먹는 음식이 호르몬과 대사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하는데 '에너지 균형 모델'은 이 중요한 퍼즐 조각이 빠져 있다고 연구팀을 지적했다.

생쥐의 물질대사 분자 스위치
생쥐의 물질대사 분자 스위치

RagA 단백질이 비활성 상태인, 굶은 생쥐의 간(왼쪽).
이런 생쥐는 몸 안으로 들어오는 에너지가 준 것에 맞춰 '에너지 절약' 대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RagA가 켜진 생쥐의 간(오른쪽)은 영양분 부족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
[CNIO(스페인 국립 암 연구센터 / 재판매 및 DB 금지]

물론 두 모델을 확정적으로 검증하고, 새로운 증거에 더 잘 들어맞는 모델을 개발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걸 연구팀도 인정한다.

하지만 탄수화물-인슐린 모델을 채택한다면 체중 관리와 비만 치료에 일대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

장기적으로 효과가 떨어지는 '덜 먹기' 대신 '가공 탄수화물 줄이기'로 전략의 초점이 옮겨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루트비히 박사는 "특히 저지방 다이어트를 할 때 빨리 소화되는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할 수 있다"라면서 "이런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면 지방 축적 욕구가 억제돼 공복감과 힘든 걸 덜 느끼면서 체중을 줄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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