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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소년…그들의 삶을 바꾼 그 날의 이야기

송고시간2021-09-0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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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4일 월요일.

57번 버스를 타고 하교하던 백인 청소년 샤샤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무릎에는 '안나 카레니나' 문고본이 놓여 있고, 흰색 치맛자락이 좌석 가장자리에 늘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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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번 버스' 번역 출간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2013년 11월 4일 월요일. 57번 버스를 타고 하교하던 백인 청소년 샤샤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무릎에는 '안나 카레니나' 문고본이 놓여 있고, 흰색 치맛자락이 좌석 가장자리에 늘어져 있었다. 흑인 청소년 리처드는 라이터를 들고 샤샤에게 다가가 치맛자락에 대고 라이터를 켰다. 불은 삽시간에 샤샤의 몸으로 옮아붙었다.

'뉴스위크' 등에 기고한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대슈카 슬레이터가 쓴 '57번 버스'(돌베개)는 미국의 인종 문제, 성 소수자 문제 등을 조명한 책이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게재된 '오클랜드 57번 버스에서의 화재' 기사를 토대로 저자가 3년 동안 사건을 추적한 기록을 담았다.

저자는 이 기간 사건 관련자들을 만났고, 각종 인터뷰, 문서, 편지, 영상, 일기, 소셜미디어 게시물, 공적 기록물 등을 참조해 그날 발생한 일을 재구성했다.

저자는 우선, 사건 발생 전 피해자 샤샤와 가해자 리처드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통해 두 극단을 사는 인생을 조명한다.

샤샤는 사립 고등학교에 다니고,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는 점에서 미국 사회의 주류 계층에 속한다. 하지만 자신을 남성에도, 여성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에이젠더'(어느 성별에도 속하지 않음)라는 점에서 문화적 소수자다.

반면, 리처드는 흑인과 아시아인, 라틴계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공립 고등학교에 다니고,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했으며 현재는 새아버지와 이복동생, 사촌 동생들과 함께 가난한 가정에서 살고 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는 비주류 계층이지만 문화적으로는 이성에 끌리는 다수자에 속한다.

계층도, 관심사도, 다니는 학교도 다른 샤샤와 리처드는 접점이 없어 만날 일이 없었지만, '57번 버스'라는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고, 백인 중산층 동네와 흑인 주거지역을 가로지르는 이 버스 탓에 그들의 운명은 엇갈렸다.

샤샤는 사고로 다리에 3도 화상을 입은 채 구급차에 실려 가고, 이후 수차례에 걸쳐 이식 수술을 받았다. 리처드는 경찰조사를 받고, '혐오죄'를 포함한 중상해죄를 저지른 성인 범죄자로 기소될 처지에 놓였다. 이후 샤샤는 '치마를 입은 소년'으로, 리처드는 '혐오범죄를 저지른 괴물'로 항간의 주목을 받았다.

저자는 리처드가 분명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고,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리처드를 성인으로 기소하는 문제와 그 근거가 된 '혐오죄' 판단 기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한다. 경찰조사 과정이 석연치 않았고, 리처드가 동성애 혐오의 철자도 모를 정도로 그 방면에 대해 무지했으며 샤샤 부모가 가해자의 선처를 구한다는 점에서다.

또한 성인으로 기소되면 갱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 백인 청소년과 유색인 청소년이 같은 범죄를 저질렀을 때 성인으로 기소되는 비율이 유색인 청소년이 높다는 점도 판단의 준거가 됐다.

저자는 샤샤와 리처드의 주변을 통해 10대의 고민도 포착한다. 성전환 후에도 자신이 속한 성에 대해 지속해서 고민하는 앤드루, 흑인 우범지대에서 자라 자신과 친구들이 감옥에 가는 걸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세라,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범죄의 표적이 된 샤샤를 통해 두려움을 느끼는 샤샤의 친구들 등을 다층적인 앵글로 조명한다.

책은 스톤월 도서상과 보스턴 글로브혼북 아너상을 수상했다.

김충선 옮김. 364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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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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