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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50년 이강백 극작가 "갈증 풀어줄 대표작 아직 안나와"

송고시간2021-08-3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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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등단 50주년을 맞은 극작가 이강백(74)은 30일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대표작을 꼽아달라는 요청에 이같이 말했다.

"자꾸만 목이 타는데 소금물을 마셔서 갈증이 더욱 심해지듯이, 자꾸만 희곡을 써도 가슴이 더 탈 뿐 말끔히 갈증을 풀어줄 대표작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선지 등단 50주년을 맞은 소회도 "그것은 세월이 지난 것뿐, 특별히 기념할 의미는 없는 것 같다"고 짤막하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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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신데렐라' 내달 2일 선보여

이강백 극작가
이강백 극작가

[강일중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어떤 분은 '파수꾼'을 저의 대표작으로 꼽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봄날'이나 '북어대가리'가, 또 어떤 분은 '영월행 일기'가 대표작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대표작을 쓰지 못했습니다."

올해 등단 50주년을 맞은 극작가 이강백(74)은 30일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대표작을 꼽아달라는 요청에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자꾸만 목이 타는데 소금물을 마셔서 갈증이 더욱 심해지듯이, 자꾸만 희곡을 써도 가슴이 더 탈 뿐 말끔히 갈증을 풀어줄 대표작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선지 등단 50주년을 맞은 소회도 "그것은 세월이 지난 것뿐, 특별히 기념할 의미는 없는 것 같다"고 짤막하게 밝혔다.

이 작가는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다섯'으로 당선된 이래 '파수꾼', '봄날', '북어대가리', '여우인간', '황색인간' 등을 통해 우리나라의 현실을 이야기해왔다.

그의 작품은 주제 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우화적 요소를 균형 있게 배치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에게 '알레고리의 작가'란 별칭이 붙은 이유다. '알레고리'(allegory)는 이솝우화처럼 다른 사물이나 동물에 빗대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이 작가는 '여우인간'에서 인간 세상에 들어온 여우의 눈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다뤘다. 또 '북어대가리'에선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을, '황색인간'에선 탐욕에 찌든 인간의 모습을 우화적 수법으로 이야기했다.

연극 '신데렐라' 출연 배우들
연극 '신데렐라' 출연 배우들

[공연배달 탄탄·아트리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내달 2일 개막하는 신작 '신데렐라'도 은유와 상징이라는 그의 창작 특징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신작은 동화 속 신데렐라가 신은 구두가 사실은 유리구두가 아닌 빨간색 가죽구두였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유리구두를 신고는 춤을 출 수 없습니다. 아니, 춤은커녕 단 한 걸음도 걷지 못합니다. 신데렐라가 왕자와 춤출 때 신은 건 빨간색 예쁜 가죽구두였지요."

하지만 그의 상상력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그 빨간색 가죽구두마저 신데렐라의 발에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데렐라가 서둘러 궁전을 떠난 것은 마법이 풀려서가 아니라 맞지 않는 구두 때문이라고 한다.

이 작가는 신데렐라의 구두를 욕망을 부추기는 도구로 설정했다. 구두가 발에 맞으면 왕자와 결혼해 일약 신분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극 중 빨간 구두는 대량으로 복제돼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게 된다.

작품에서는 여배우 세 명이 빨간 구두에 얽힌 여성 21명의 이야기를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보여준다. 빨간 구두는 배우, 임산부, 시인, 노파, 학생 등에게 나타나고, 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준다.

'신데렐라'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그는 "작품 속 한 여성은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신으려고 하지 마라. 발도 아프고 인생도 괴롭다'고 말합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안 맞는 것은 신지 않는 것이 발도 편하고 마음도 편하다"고 했다.

이렇듯 작품에는 여성 캐릭터만 나온다. 그는 '신데렐라'를 구상한 것 자체가 여성만 등장하는 희곡을 쓰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그는 "제 희곡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이 남성이어서 여성을 알지 못하는 극작가라고 지적을 받았다"면서 "여성을 잘 안다고 쓴 작품이 오히려 모르는 것을 증명하는 건 아닌지 두렵다. 알려고 노력했다는 것만 인정받아도 좋겠다"고 말했다.

[공연배달 탄탄·아트리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공연배달 탄탄·아트리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작가는 무대에 오르는 배우 김화영·강애심·박소영에 대해 "한 배우가 여러 인물로 변신하는 연기는 절대 쉽지 않다. 그러나 충분히 해낼 것이다. 공연을 보시면서 여배우의 다양한 연기가 주는 매력을 만끽하시길 바란다"고 했다.

연출은 이 작가가 서울예술대학 극작과 재직 시 학생이었던 정범철이 맡았다. 정 연출과의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정범철)는 이미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신입생으로 들어왔는데, 연극에 매혹됐다고 할까, 남다른 열정과 각오가 느껴졌습니다. 재학시절에 오태석, 윤대성, 그리고 저에게 극작과 연출을 익혔어요. 지금은 연극계에서 자신의 색깔로 뚜렷하게 자리매김했습니다. 언젠가는 연극 현장에서 만나게 되리라고 예감했죠."

이 작가는 일단 희곡을 넘기면 공연 작업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작품에 대해 질문할 때,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다면 관여하겠지만 극작가는 자기가 쓴 작품을 명확하게 아는 사람이 아니다. 모든 질문과 대답을 연출가와 배우에게 맡겨 두고 극작가는 공연 날 슬그머니 나타나는 것이 상책이다"라고 했다.

이 작가는 한국연극협회 이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객원교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연극위원장, 서울예술대학 극작과 교수, 동아연극상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옥관문화훈장(2009), 한국극작가협회 대한민국극작가상(2020), 보관문화훈장(2020) 등을 받았다.

"'신데렐라'는 극 구조가 파격적입니다. 기승전결의 구조가 아니어서 당황하실 관객들도 계실 테고, 제 작품의 특징이 치밀하게 구성한 극 구조라고 여기는 분들은 실망하시겠지요. 50년간 격식에 맞춰 춤추던 춤꾼이 마구잡이 허튼춤을 춘다고 할까요, 오죽 답답하면 그럴까 부디 파격을 너그럽게 받아주십시오. 툭 터놓고 마음껏 즐겨주시기를 바랍니다."

'신데렐라'는 9월 12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공연한다.

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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