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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78년만의 봉환' 앞둔 크즐오르다 곳곳에 새겨진 '홍범도'

송고시간2021-08-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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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정부와 현지의 고려인 동포들은 76돌 광복절을 맞아 이루어질 홍 장군 유해 봉환을 위한 준비를 마무리 지었다.

1907년 함경·평안도 일대에서 의병을 조직해 일본군과 대항하던 홍범도는 1920년 6월 간도 국민회 독립군부대와 연합해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 정규군을 대규모로 사살하는 승전보를 올린다.

만주 벌판 항일 독립전쟁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면서 '백두산 호랑이'로 불리던 홍 장군이 겪게 된 또 한번의 인생역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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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강제이주 정책으로 터전 옮긴 뒤 동포사회 궂은일 도맡아

1996년 묘역 성역화로 흉상 주변에 3개의 기념비…'홍범도 거리'

고려인 동포 "유해 봉환으로 한국에 대한 현지인 관심도 높아져"

홍범도 장군 묘역 동상. 유해 봉환 이후에도 묘역에 보존된다.
홍범도 장군 묘역 동상. 유해 봉환 이후에도 묘역에 보존된다.

2021.8.13. 김상욱 통신원

(크즐오르다[카자흐스탄]=연합뉴스) 김상욱 통신원 = 대한독립군 총사령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을 하루 앞둔 14일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시.

카자흐스탄 정부와 현지의 고려인 동포들은 76돌 광복절을 맞아 이루어질 홍 장군 유해 봉환을 위한 준비를 마무리 지었다.

1907년 함경·평안도 일대에서 의병을 조직해 일본군과 대항하던 홍범도는 1920년 6월 간도 국민회 독립군부대와 연합해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 정규군을 대규모로 사살하는 승전보를 올린다. 청산리 전투에서도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군과 함께 일본군을 대파했다.

이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러시아령 연해주로 이동해 전력을 키우던 홍범도 장군은 일제와의 전쟁을 우려한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1937년 고려인 동포들과 함께 중앙아시아로 터전을 옮겼다.

만주 벌판 항일 독립전쟁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면서 '백두산 호랑이'로 불리던 홍 장군이 겪게 된 또 한번의 인생역정이었다.

홍 장군이 정착한 크즐오르다는 톈산(天山)산맥의 만년설이 녹아내려 만들어진 시르다리야 강변에 위치한 반(半)사막지역이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크즐오르다로 가는 항공기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마치 화성의 표면과 같아 왜 이 도시가 현지어로 '붉은 도시'라는 의미의 크즐오르다로 불리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척박하기만 했던 이 땅에 고려인들은 강물을 끌어들여 벼농사를 성공시킴으로써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로 변모시켰다.

상공에서는 시르다리야강 줄기를 돌려놓는 댐도 조그맣게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고려인의 희생으로 건설된 이 댐으로 인해 시르다리야강변의 불모지가 가을이면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옥토가 된 것이다.

크즐오르다 시내에는 이런 역사를 간직한 도시 상징탑이 있다. 꼭대기에는 벼 이삭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올려져 있다.

크즐오르다시 상징탑. 꼭대기 부분은 벼이삭을 형상화한 것이다.
크즐오르다시 상징탑. 꼭대기 부분은 벼이삭을 형상화한 것이다.

2021.8.13. 김상욱 통신원

또한 고려극장, 선봉신문(현 고려일보), 원동사범대학 등 동포사회의 문화 교육기관이 이곳으로 옮겨옴으로써 고려인의 정신적 중심지 역할을 했다.

크즐오르다에서 홍 장군은 고려극장의 경비 책임자 격인 수위장으로 노년을 보내면서 동포사회의 온갖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아 동포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그가 광복을 앞둔 1943년 크즐오르다에서 생을 마감하고 묻힌 뒤 고려인들과 옛 전우들이 성금을 모아 분묘를 손보고 철로 된 비를 세운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시 '홍범도 거리'에 붙어 있는 부조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시 '홍범도 거리'에 붙어 있는 부조

[연합뉴스 자료사진]

또 홍범도 장군의 생가를 지나는 길을 '홍범도 거리'로 명명한 현지 당국의 관심에서도 나타난다.

당시 묘비에는 '조선의 자유독립을 위하여 제국주의 일본을 반대한 투쟁에 헌신한 조선의 빨치산 대장 홍범도의 이름은 천추만대에 길이길이 전하여지리라. 1951년 10월 25일 레닌기치 신문사 동인, 고인의 전우 및 시내 유지한 조선인 일동 건립'이라고 적혀있다.

홍 장군 서거 40주년이었던 1983년 조각가 최니꼴라이와 미술가 허블라지미르가 제작한 반신 청동상과 추모비가 세워졌다.

한국과 옛 소련이 수교한 이후 수년이 지난 1996년 홍 장군 동상 주변에 3개의 기념비를 건립하는 등 홍범도 묘역 성역화도 추진됐다.

강제이주 60주년에 맞춰 고려인의 희망을 담아 세운 기념비
강제이주 60주년에 맞춰 고려인의 희망을 담아 세운 기념비

2021.8.13. 김상욱 통신원

'국제평화와 화합을 위하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강제이주 60주년 기념비
'국제평화와 화합을 위하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강제이주 60주년 기념비

2021.8.13.김상욱 통신원

3개의 기념비는 각각 1937년 강제이주, 1995년 광복 50주년, 1997년 강제이주 60주년에 맞춰 고려인들의 희망을 담고 있다.

유해 봉환 소식을 접한 크즐오르다 고려인들은 홍 장군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가는데 대한 소회를 피력했다.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들은 당당한 위상을 갖고 있지만 세대가 바뀔 수록 민족 정체성이 약해지고 있는 현실적 고민도 엿보였다.

오 세르게이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장은 "홍범도 유해 봉환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카자흐스탄 정부에서 고려인 동포사회의 의견을 먼저 물었다"면서 "처음에는 솔직히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지만 향후 10년이나 20년 뒤 상황을 장담할 수 없는 만큼 조국의 국립묘지에 모시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옐레나 고려인협회 크즐오르다지회장은 "코로나19가 물러나면 홍 장군의 새로운 묘역이 어떻게 단장돼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한국을 꼭 방문하고 싶어하는 동포들이 주변에 많다"면서 "유해 봉환을 계기로 현지인들 사이에 한국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날 크즐오르다 묘역에서 추모식을 마친 뒤 홍범도 장군 유해는 광복절인 15일 저녁 한국에 도착, 16일과 17일 이틀간의 국민 추모 기간을 거쳐 18일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almatykim6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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