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대한민국 구석구석, 영화가 되다 ③ 태백

'인정사정 볼 것 많은' 동네…어려운 시기 힘이 됐던 옛 탄광촌

(태백=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강원도 태백은 이명세 감독의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많은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이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태백에서 영화와 드라마를 찍는 이유는 간단하다. 볼 것과 즐길 것들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태백 구문소의 석양 [사진/성연재 기자]
태백 구문소의 석양 [사진/성연재 기자]

◇ 알프스 떠올리는 몽토랑 목장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는 요즘, 탁 트인 바깥 공간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얼마 전 태백을 방문했을 때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인스타그램을 검색해봤다. 그러다 최근 새롭게 올라온 여행지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태백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작은 목장 하나가 최근 문을 열었다. 요즘 같은 시기 딱 맞아떨어지는 여행지가 아닌가. 무작정 차를 몰았다.

청량한 느낌을 주는 몽토랑 목장 [사진/성연재 기자]
청량한 느낌을 주는 몽토랑 목장 [사진/성연재 기자]

해발 800m의 가파른 산 중턱에 차를 세웠다.

첫눈에 스위스의 알프스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원하게 펼쳐진 공간에 파란 하늘과 푸른 잔디, 그리고 드문드문 관람객이 보인다.

알프스와 다른 게 있다면 양 떼가 아니라 산양 떼라는 것 정도다.

목장 이름은 '몽토랑'. '몽글몽글 구름 아래, 토실토실한 산양을 너랑 나랑 만나보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탁 트인 목장 이곳저곳으로 하얀색 염소들이 꼬물꼬물 몰려다니는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나무 그늘 밑에만 들어가도 서늘했고 공기는 상쾌했다.

티켓 판매소를 겸한 건물은 베이커리로 활용되고 있었다. 산양유로 만든 빵과 아이스크림을 먹어봤다.

아쉽게도 산양유는 맛보지 못했다. 하루에 산양유가 50∼60ℓ 정도만 생산되기 때문에 아침 일찍 매진된다고 한다.

목장의 먹거리들 [사진/성연재 기자]
목장의 먹거리들 [사진/성연재 기자]

오전 9시 30분부터 문을 여는데, 산양유를 사기 위해 9시부터 사람들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곳에 사는 산양은 야생산양과 달리 산양유를 생산하기 위해 개발된 품종이다. 뉴질랜드에서 50마리를 들여와 현재 100여 마리로 늘렸다.

이곳에선 47만여 평의 목초지에 100마리의 산양을 완전 방목으로 키운다.

몽토랑목장의 포부는 야심 차다. 한여름에 서늘하고 스위스를 닮아 목초지가 많다는 특성을 살려, 목장 산업을 크게 일으켜 보겠다고 한다.

탄광 산업 사양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태백시를 발전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가능성이 보였다.

구와우마을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여성들 [사진/성연재 기자]
구와우마을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여성들 [사진/성연재 기자]

◇ 구와우마을 해바라기밭에서는 누구나 '뮤즈'

올해도 태백시 구와우마을 해바라기는 여지없이 노란 꽃망울을 터뜨렸다.

구와우는 백두대간 고개인 해발 935m 삼수령 아래에 있는 구릉지다.

삼수령은 '삼수'(三水)라는 이름처럼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물길을 '삼해'(三海)로 가르는 지점이다.

이곳에 떨어진 빗방울이 북쪽으로 흐르면 서해, 동쪽으로 흐르면 동해, 남쪽으로 흐르면 남해로 각각 간다.

북쪽의 해발 1천303m 천의봉에 올라 구릉지를 바라보면 '소 아홉 마리가 배불리 먹고 평화롭게 누워 있는 모양'이라고 해서 '구와우'(九臥牛)라고 불린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구와우는 애초 고랭지 배추밭이었다.

그러나 황창렬 해바라기문화재단 대표가 '무채색의 고향 탄광촌을 노란 유채색으로 부활시키겠다'는 꿈을 실행에 옮기면서 해바라기 언덕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2005년부터 배추 대신 해바라기를 심기 시작했다. 해바라기밭은 축구장 9개 면적보다 넓은 6만6천여㎡에 이른다.

구와우마을 전경 [사진/성연재 기자]
구와우마을 전경 [사진/성연재 기자]

그때부터 태백해바라기축제를 개최해 왔다. 푸른 하늘과 노란 해바라기가 연출하는 이국적인 풍경 덕분에 입소문이 전국으로 빠르게 퍼졌다.

특별히 홍보도 하지 않았지만, 매년 여름 5만 명이 넘는 인파가 축제장을 찾았다.

코로나19로 올해는 축제를 열지 않았고, 밭 일부에 다시 배추를 심었다. 그래도 관광객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는 입장료를 받지 않았지만, 필자가 방문했을 때도 관광객들이 드문드문 찾아왔다.

어쩌면 팬데믹 시대에 가장 알맞은 거리두기 여행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권에서 온 여성 3명은 차에서 한참 동안 단장을 하더니 해바라기밭으로 향했다. 한 여성은 머리에 화관까지 준비했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뮤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양의 후예 세트장 [사진/성연재 기자]
태양의 후예 세트장 [사진/성연재 기자]

◇ 새내기 명소 통리탄탄파크·오로라 파크

서늘한 태백시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새내기 여행지가 최근 두 곳 문을 열었다. 통리에 세워진 통리탄탄파크와 오로라파크가 그곳이다.

탄탄파크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 세트장이 있는 옛 한보탄광 부지에 129억원을 들여 조성한 체험형 관광시설이다.

한보탄광이 1982년부터 석탄생산을 시작한 이곳은 석탄 사업 사양화로 2008년 문을 닫았다가 2016년 태양의 후예를 촬영하며 관광명소가 됐다.

태백시가 폐광지역 관광 자원화 2단계 사업으로 2015년부터 총사업비 223억여원을 투입해 조성한 관광객 참여형 관광지다.

내부 조명이 이채로운 탄탄파크 갱도 내부 [사진/성연재 기자]
내부 조명이 이채로운 탄탄파크 갱도 내부 [사진/성연재 기자]

길이 363m와 613m의 폐갱도 2개소에서는 디지털 아트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입장권을 받아드니 왼쪽 정면에 드라마에서 지진 장면을 촬영한 무너진 건물 더미가 보인다.

오른쪽은 촬영 당시에 활용됐던 탱크와 군용차량, 우르크 태백부대 막사, 군용트럭과 헬기 등도 보인다.

정면은 첫 번째 폐갱도다. 갱도 앞에서 입장권을 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바깥 기온은 30도를 넘었지만, 폐갱도 내부는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갱도 내부를 걸으면서 광부의 하루가 담긴 영상과 석탄을 주제로 한 다양한 디지털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첫 번째 갱도에서 나오면 야외 산책로가 있고, 그다음 두 번째 갱도를 만난다.

저 멀리 추추파크가 보이는 오로라파크 전망 타워 [사진/성연재 기자]
저 멀리 추추파크가 보이는 오로라파크 전망 타워 [사진/성연재 기자]

해발 680m 통리역 일대 철도 유휴지에 122억원을 들여 조성한 오로라파크는 탄탄파크에서 2km 거리에 있다.

호주 북부 케언스의 쿠란다역을 비롯해 중국 탕구라, 스위스 클라이네 샤이데크, 미국 파이크스피크, 일본 노베야마 등 세계 5개국의 고원 역사를 캐릭터 하우스로 재연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통리의 아름다운 산세와 사계를 조망할 수 있는 높이 49.2m의 전망 타워다.

'시골 한구석에 생뚱맞은 건물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일단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특히 타워가 서 있는 장소가 삼척의 추추파크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한여름에도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가운데 엘리베이터를 두고 나선형 보도가 바깥을 둘러싼 형태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사람이라도 걸어 내려올 수 있다.

이 보도 가운데 일부는 투명 아크릴판으로 돼 있어 아찔한 느낌도 든다. 더위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5개국의 고원 역사 가운데 케언스의 쿠란다역을 가본 필자로서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역사가 조금 생뚱맞게 느껴져 아쉬웠다.

◇ 어려운 시절 힘이 되어준 철암

철암역 맞은편 쉼터에 설치된 갱도 열차 [사진/성연재 기자]
철암역 맞은편 쉼터에 설치된 갱도 열차 [사진/성연재 기자]

20년 전 제작된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비지스의 음악 '홀리데이'가 흐르는 가운데 벌어진 박중훈과 안성기의 빗속 결투 장면 말이다.

이 장면이 촬영된 곳은 태백 철암역이다.

철암역두(鐵岩驛頭) 선탄장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말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석탄 산업의 상징으로도 의미가 깊다. 선탄장은 탄을 고르는 곳이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스틸컷 [(주)프로덕션에므 제공]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스틸컷 [(주)프로덕션에므 제공]

이곳에서 만난 문화해설사 최순덕 씨는 여성 광부로 14년을 근무했다. 철암에는 300명의 여성 광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최씨를 비롯한 여성 광부들은 선탄장에서 탄을 골라내는 작업을 했다.

당시에는 남해 다랭이마을처럼 계단식 구조에 수많은 공동주택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고 한다.

보통 9가구가 한 지붕을 공유하는 '한 지붕 아홉 가족'이었다고 했다.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철원 출신인 최씨는 시집왔던 첫날을 잊지 못한다. 철원에서 청량리로 온 최씨는 밤 기차를 갈아타고 새벽에 철암에 도착했다.

하천 쪽에 접한 까치발 건물들 [사진/성연재 기자]
하천 쪽에 접한 까치발 건물들 [사진/성연재 기자]

산꼭대기까지 불빛이 있는 모습을 보고 번화한 도시로 생각했다고 한다. 모두 산꼭대기까지 들어선 공동주택의 불빛이었다.

1960∼1970년대 12만 명까지 늘었던 태백 인구는 최근 5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마을 끝의 시장 자리는 몇 년 전 깔끔하게 개발돼 '쇠바우골탄광문화장터'로 거듭났다. 탄광지역의 특성을 살린 먹거리를 파는 음식점과 다방 등이 들어서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당시 가장 번화했던 상가 건물들을 그대로 보존한 철암탄광역사촌은 '까치발 건물'로 유명하다. '까치발'은 하천 쪽에 접한 건물 바닥을 목재 또는 철재로 만든 지지대를 뜻한다.

건물 내부에는 당시 광산촌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물품들이 전시돼 있다. 건물 한쪽은 파독광부기념관으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하는 데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역할이 컸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다.

연탄과 관련된 안도현의 시가 떠올랐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시다. 철암은 우리에게 참으로 뜨거운 곳이었다.

영화가 촬영된 철암역 철로 [사진/성연재 기자]
영화가 촬영된 철암역 철로 [사진/성연재 기자]

◇ Information

통리에는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도 있어 관광객이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철암역의 쇠바우골탄광문화장터에서는 다양한 먹거리를 접할 수 있다.

장터 안에는 연탄재 모양의 '탄광마을빵'을 맛볼 수 있는 역전다방, 태백의 명물 물닭갈비집, 철암천 옆에서 연탄에 직접 쇠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식육식당도 있다.

철암에서 맛볼 수 있는 탄광마을빵 [사진/성연재 기자]
철암에서 맛볼 수 있는 탄광마을빵 [사진/성연재 기자]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9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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