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 대청호 비경 속 고향을 추억하는 향수호수길

정지용 시인의 서정이 어린 생태문화 탐방로

(옥천=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말이 빚어낼 수 있는 서정을 실감하게 한 시인 정지용의 숨결을 느끼고자 한다면, 한국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인 대청호를 감상하고 싶다면 충청북도 옥천군에 있는 '향수호수길'을 걸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대청호와 향수호수길. 왼쪽 수변 숲을 따라 걷는 길이 조성돼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대청호와 향수호수길. 왼쪽 수변 숲을 따라 걷는 길이 조성돼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대청호의 잔잔한 수면과 푸른 산이 어우러진 풍광에 젖어 2∼3시간 걷다 보면 어느새 고향에 안긴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정지용의 고향인 옥천에는 그를 떠올리는 길들이 있다. 향수호수길, 향수바람길, 향수100리길 등이다. 이 길들의 이름은 옥천 출신인 정지용의 대표작인 '향수'에서 따왔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 시 '향수' 중에서)

시 '향수'처럼 고향을 추억하게 하는 정겹고 아늑한 길들이다.

이 중 향수호수길은 대청호반을 따라 걷는다. 옥천읍 수북리와 안내면 장계리를 연결한 생태문화 탐방로인 이 길은 여행자를 마음속 고향으로 데려간다.

도시 생활에 지치고 메마른 가슴을 어루만지는 듯하다. 그만큼 자연생태는 잘 보존돼 있고 경치는 평화롭다.

정지용은 1902년 옥천에서 태어났다. 한국 현대시의 선구자로, 한국어의 아름다움과 한국인의 정서를 잘 표현했다. 그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북한군에 의해 납북됐고, 그의 작품은 남한에서 판금 됐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그는 해금됐다. 해금 두어 달 만에 옥천군은 그의 문학을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축제 '지용제'를 열었다. '詩끌벅적' 축제는 지금까지 30여 회를 거듭하며 매년 5월 열린다.

금지의 사슬이 어쩌지 못한 문학 열정이 읽힌다. 향수호수길 중간중간에 정지용의 시를 적어놓은 시판들이 있다.

산너머 저쪽

정지용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뻐꾸기 영 우에서

한나절 울음 운다.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철나무 치는 소리만

서로 맞아 쩌 르 렁!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늘 오던 바늘장수도

이 봄 들며 아니 뵈네.

향수호수길은 마성산 자락에 조성돼 있다. 옥천읍 수북리 옥천 선사공원에서 출발해 날망마당∼물비늘전망대∼황새터∼용댕이를 거쳐 안내면 장계리 주막마을까지 5.6㎞ 거리로 이어진다.

이 길은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길이다. 2019년에야 인공으로 만들어졌다. 1980년 대청호가 건설된 뒤 37번 국도 수북리 구간은 수몰됐다. 도로가 끊기고 인적이 드물어지자 생태는 더 풍부해졌다.

날망마당에서 물비늘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흙길. 녹음이 짙어 뙤약볕을 피해 걷기 편하다. [사진/전수영 기자]
날망마당에서 물비늘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흙길. 녹음이 짙어 뙤약볕을 피해 걷기 편하다. [사진/전수영 기자]

옥천군은 잘 보존된 자연 속에서 사람들이 쉼과 여유를 찾을 수 있도록 수북리 호숫가 산허리에 장계리 방면으로 산책로를 개설했다.

흙길 2㎞, 나무 데크길 3.6㎞, 모두 5.6㎞이다. 이 길이 힐링 트래킹 코스인 향수호수길이다. 다만 지금 황새터∼용댕이∼주막마을 구간 2.3㎞는 낙석 위험 때문에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이 구간은 산 쪽 절벽이 매우 가파르다. 낙석 방지 조치 뒤 재개방될 예정이다.

용댕이는 용이 승천하다 계곡으로 다시 떨어지며 절벽 바위를 이리저리 긁어댔다는 전설이 얽힌 곳이다. 기암괴석의 비경이 상상되지만 황새터에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향수호수길은 주민들이 뽑은 '옥천 9경' 중 8경에 해당한다. 길에서 보는 풍경은 그만큼 호젓하고 멋스럽다.

이 길이 포함된 옥천군 대청호 일대 안터지구는 올해 5월 국가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됐다. 충북에서는 괴산 산막이옛길에 이어 두 번째 지정이다.

천연기념물인 반딧불이 등 멸종위기의 야생동물들이 서식하고 식생이 다양하다. 이는 대청호 준공 후에도 40여 년간 이곳 자연생태가 잘 보존된 결과다.

호수길에서 내려다본 물비늘 전망대. 전망대는 예전에 상수도 취수탑으로 사용했던 구조물을 이용해 만들었다. [사진/전수영 기자]
호수길에서 내려다본 물비늘 전망대. 전망대는 예전에 상수도 취수탑으로 사용했던 구조물을 이용해 만들었다. [사진/전수영 기자]

황새터∼주막마을 구간 통제 때문에 황새터까지 걸은 뒤 출발지로 되돌아와야 한다. 선사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황새터까지 왕복하면 7㎞ 남짓 걷게 된다. 걸리는 시간은 3시간 정도다.

수변 길은 나무가 우거져 마치 숲속을 걷는 것 같다. 여름에도 그늘이 많아 걷기에 힘들지 않을 것 같았다.

선사공원은 규모가 꽤 컸다. 대청댐 건설 후 방치되고 산재한 선사 유물을 한자리에 모아 보존 관리하는 곳이다. 멀지 않은 곳에 안터선사공원이 또 있다.

금강을 끼고 있는 옥천이 오래전부터 인간 삶의 터전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옥천의 한자 표기는 '沃川'이다. 비옥한 땅이란 뜻이다.

물비늘 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 [사진/전수영 기자]
물비늘 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 [사진/전수영 기자]

향수호수길에서 처음 만나는 쉼터는 물비늘 전망대다. 호수에 떠 있는 듯한 이 전망대에 서면 사방은 햇살에 반짝거리는 물비늘 떼로 가득 찬 것 같다. 전망대는 예전에 상수도 취수탑으로 사용했던 구조물을 이용해 만들었다.

조금 더 걷다 보면 대청호로 흘러드는 금강 저편으로 작은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육지 속 섬 같은 오대리 마을이다.

이 마을의 앞쪽은 대청호이고, 뒤쪽은 산이다. 산 쪽으로는 도로가 없다. 배 말고는 마을에 닿을 방법이 없다. 섬 아닌 섬인 셈이다.

원래 5개 마을이 있었고, 마을들은 여울을 건너 쉽게 접근할 수 있었으나 대청호 건설로 수몰되고 한 개 마을만 남았다. 지금은 10가구 정도, 2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찢어지는 가난에도 시부모와 병든 남편을 정성껏 보살핀 나이 어린 신부를 기리기 위해 세운 효열문이 강 건너편에서도 뚜렷이 보였다.

오대리 마을 [사진/전수영 기자]
오대리 마을 [사진/전수영 기자]

향수호수길에서 가장 높은 다리는 길이 61m, 높이 9m의 우듬지 데크다. 마치 나무 위를 걷는 듯한 경험을 통해 자연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곳이다.

우듬지란 나무 꼭대기를 일컫는다. 솔향 쉼터라고 이름 붙여진 전망대도 있다. 호수 조망이 탁월했다. 소나무 향기엔 옛 고향의 정취가 담긴 듯 싶다.

황새터는 과거에 넓은 농토와 물이 있어 황새들이 많이 날아들었던 지역이다. 예부터 황새는 마을의 큰 나무에 둥지를 틀고 논에서 먹이를 잡아먹는 등 사람과 가깝게 어울려 살았다고 한다.

황새가 많았다는 것은 먹잇감인 물고기가 풍부했다는 뜻일 것이다. 대청호와 금강이 품은 넉넉함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호 수

정지용

얼골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황새터에서 출발지로 돌아 나오는 길은 나그네의 가슴을 어느새 호수만 한 그리움으로 가득 채운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8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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