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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미국서 돌아온 구한말 고종 국새 4점, 보물 된다

송고시간2021-06-2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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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미국으로 유출됐다가 돌아온 구한말 고종(재위 1863∼1907)의 공식 도장인 국새(國璽) 4점이 일제히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광복 직후 일본에서 환수한 '국새 제고지보(制誥之寶)', '국새 칙명지보(勅命之寶)', '국새 대원수보(大元帥寶)'와 2019년 미국에 거주하는 교포가 기증한 '국새 대군주보(大君主寶)'를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28일 밝혔다.

기존에 보물로 지정된 국새로는 '국새 황제지보(皇帝之寶)' 등 4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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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점은 광복 직후 日서 환수, 1점은 2년전 재미교포에게 기증받아

국새 대군주보
국새 대군주보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일본과 미국으로 유출됐다가 돌아온 구한말 고종(재위 1863∼1907)의 공식 도장인 국새(國璽) 4점이 일제히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광복 직후 일본에서 환수한 '국새 제고지보(制誥之寶)', '국새 칙명지보(勅命之寶)', '국새 대원수보(大元帥寶)'와 2019년 미국에 거주하는 교포가 기증한 '국새 대군주보(大君主寶)'를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28일 밝혔다.

국새는 국권을 나타내는 실무용 도장으로, 외교문서와 행정문서 등 공문서에 사용했다. 왕실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인 어보(御寶)와는 다르다. 기존에 보물로 지정된 국새로는 '국새 황제지보(皇帝之寶)' 등 4점이 있다.

국새 제고지보
국새 제고지보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국새 제고지보, 국새 칙명지보, 국새 대원수보는 모두 대한제국 시기에 왕실 인장(印章, 도장)을 전문적으로 담당한 보장(寶匠) 전흥길 등이 주도해 만들었다. 황제 명령을 알리고 관리를 임명할 때 쓰려고 제작한 도장이다.

하지만 일제는 한국 국권을 침탈하고 6개월 남짓 지난 1911년 3월 일본 왕실을 관리하는 궁내청에 국새 3점을 넘겼다. 이후 미군정이 1946년 8월 15일 궁내청에서 환수했고, 총무처를 거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됐다.

제고지보는 1897년 9월 19일 완성됐다. '제고'(制誥)는 제왕이 내리는 명령으로, 이 국새는 대한제국 시기에만 사용했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제고지보는 조선왕실 어보와 여러 면에서 구별된다. 조선왕실 어보는 손잡이 동물이 거북이지만, 제고지보는 용이다. 또 용 모양 손잡이에 받침대를 마련했고, 인장을 찍는 면인 보면(寶面) 크기가 조선시대 왕과 왕비 인장보다 사방 2㎝ 정도 크다.

서체도 구첩전(九疊篆·글자 획을 여러 번 구부려서 쓴 서체)에서 소전(小篆, 중국 진시황이 제정한 전서체 중 획이 가늘고 서풍이 단정한 서체)으로 변했다.

제고지보의 외형상 특징인 용은 정수리에 점무늬가 있고, 머리에는 뿔이 솟았다. 코에는 구름 모양 형상을 새겼고, 입은 이빨 두 개가 돌출됐으며 여의주를 물었다. 등은 동그랗게 말아 위로 올렸다. 도금이 벗겨지지 않아 황금빛이 잘 남았다.

국새 칙명지보
국새 칙명지보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칙명지보는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고 문서에 사용하려고 1897년에 만든 국새 10점 중 하나인 동명 국새 '칙명지보'보다 작은 도장이다. 제작 시기는 1898년 윤3월 19일이다. '칙명'(勅命)은 황제가 관료에게 내린 명령으로, 왕은 '왕지'(王旨)나 '교지'(敎旨)라고 했다.

제고지보처럼 손잡이 동물은 웅크린 용이다. 몸통을 덮은 비늘 문양, 머리에 솟은 뿔, 얼굴에서 느껴지는 상서로운 기운이 특색으로 꼽힌다.

대원수보는 대한제국이 1899년 6월 22일 육군과 해군을 통솔하는 원수부(元帥府)를 설치하고 제작한 도장 3점 중 하나다. 대원수는 원수부의 우두머리이자 군을 이끄는 최고 지휘자이다.

손잡이는 용 모양이며, 서체는 소전이다. 일부 색이 변한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원형이 비교적 잘 남은 편이다.

국새 대원수보
국새 대원수보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문화재청 관계자는 "제고지보, 칙명지보, 대원수보에 관한 정보가 '대례의궤'(大禮儀軌) 등 문헌에 있고, 당시 발행한 문서에 실제 사용된 사례가 있다"며 "국가의 혼란스러웠던 운명과 수난을 알려주는 역사적 상징물로, 희소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1882년 7월 1일 제작된 국새 대군주보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이다. 손잡이는 은색 거북이고, 도장 서체는 구첩전이다. 고위 관원 위임장과 사령장, 대군주 명으로 반포한 법령 문서 등에 썼다.

조선은 그해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는데, 고종은 이 무렵 국서(國書)에 찍을 대군주보 제작을 명령했다. 당시 국새 6점이 만들어졌는데, 다른 유물은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다.

대군주보는 대한제국 이전에 제작된 국새의 형태, 재질, 서체, 제작 방식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문화재청은 역사적 상징성과 조형성을 인정받아 지정 예고한 구한말 국새 4점에 대해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 여부를 확정한다.

국새 대군주보 보면
국새 대군주보 보면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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