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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이탈리아 성소수자 혐오 반대 법안에 외교 루트로 항의(종합)

송고시간2021-06-23 04:31

이탈리아 언론 보도…가톨릭 신앙·표현의 자유 침해 언급

바티칸시국의 성베드로대성당 전경. [ANSA 통신 자료사진]

바티칸시국의 성베드로대성당 전경. [ANSA 통신 자료사진]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교황청이 이탈리아 정치권에서 추진하는 '성소수자 혐오 반대 법안'에 외교 채널로 문제를 제기했다고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 등 이탈리아 현지 언론이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작년 11월 이탈리아 하원 표결을 통과한 뒤 현재 상원에 계류 중인 해당 법안은 게이나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등의 성소수자 및 장애인을 차별하거나 폭력을 선동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진보·보수 정당 간 첨예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법제화에 진통을 겪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교황청이 해당 법안에 이의를 제기하는 공식 외교 문서를 전달한 것으로 확인돼 주목된다.

보도에 따르면 교황청 외무장관인 폴 리차드 갤러거 대주교는 지난 17일 주교황청 이탈리아 대사관에 외교 공한의 하나인 구술서(Note Verbale)를 전달했다.

교황청은 구술서에서 해당 법안이 신앙 및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우려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새로 제정되는 성소수자를 위한 기념일에 가톨릭 학교도 의무적으로 동참하도록 한 것을 문제 삼았다.

가톨릭 신자들이 성소수자 권리에 반하는 의견을 내놓을 경우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교황청은 이것이 1929년 교황청-이탈리아 정부 간에 체결된 라테라노 조약(Lateran Pacts)에 위배된다는 점도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시즘 창시자인 베니토 무솔리니 체제 때 맺어진 라테라노 조약은 이탈리아 정부가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시국을 일정한 영토와 국민, 주권을 가진 독립 국가라는 것과 가톨릭 수장으로서 교황의 지상권을 인정한다는 내용을 담은 조약이다.

바티칸과 이탈리아 내 가톨릭 신자의 신앙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항도 있다.

이탈리아 언론 보도 내용을 두고 논란이 일자 교황청은 뒤늦게 이탈리아대사관에 해당 구술서를 전달한 사실을 확인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교황청이 이탈리아 국내 법안 이슈에 외교 채널로 항의를 표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관련 기사에서 "양국 관계 역사에서 전례 없는 조처이며, 최소한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한 번도 이런 예가 없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외교부는 교황청의 구술서를 마리오 드라기 총리에게 보냈으며, 현재 총리실에서 관련 내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동안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그들의 인간적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동성애 자체는 가톨릭 교리에 비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번 교황청의 항의 표시를 계기로 이탈리아에선 성소수자 혐오 반대 법안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도 다시 불붙을 조짐이다.

극우 정치인이자 우파연합의 좌장인 마테오 살비니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가족이 우리 사회의 핵심이라고 믿는 사람들에 대한 검열과 재판에 반대한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며 교황청과 보조를 맞췄다.

반대로 진보 성향의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법안의 세부 내용에 대해 대화할 준비가 돼 있지만 입법 추진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한다.

이탈리아 총리를 지낸 엔리코 레타 민주당 대표는 "조문의 법적 이슈를 검토해 수정할 만한 부분은 수정할 수 있으나 법안의 기본 골격은 유지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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