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어때] 올여름 보내기 좋은 동해안 소도시 삼척

소도시 찾는 여행객 늘면서 매력 부각

(삼척=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동해안의 작은 도시 삼척은 손꼽히는 여행지는 아니었다. 떠들썩한 축제도, 관광지 인파도 없는 조용한 소도시였다.

그러나 팬데믹 상황에서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곳들이 주목을 받으면서 삼척을 찾는 여행자들의 발걸음도 잦아지고 있다.

거북이 모양을 한 덕봉산 [사진/성연재 기자]
거북이 모양을 한 덕봉산 [사진/성연재 기자]

◇ 나릿골 감성마을

넉넉하지 못했던 옛 시절의 추억은 아련하고 애틋하다.

동해안에도 어려웠던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마을이 있다. 강원도 삼척의 나릿골이다. 그래서 이름에 '감성마을'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나릿골 감성마을은 삼척항 인근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에 도착하면 나릿골 말랑이슈퍼가 사람들을 맞이한다.

슈퍼 바로 앞이 차량 30여 대를 댈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는 광장이다.

그 맞은편에는 나릿골 안내센터가 있다. 센터를 왼쪽에 두고 올라가면 잘 포장된 길이 나온다.

좁았던 길은 차량 교행도 가능할 만큼 넓어지고 포장도 잘 돼 있어 다니기에 불편함이 없다. 삼척시가 공들여 마을을 가꿔놓은 덕분이다.

지붕은 주황색 일색이고, 벽도 우중충한 시멘트색이 아니라 깔끔한 흰색으로 칠해졌다.

그러나 계단, 골목길, 담장 등은 여전히 1960∼1970년대의 정취를 안고 있다.

알록달록한 나릿골 감성마을 [사진/성연재 기자]
알록달록한 나릿골 감성마을 [사진/성연재 기자]

마을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할머니의 부엌' 식당에서 주민들로부터 동네 이름의 기원을 들을 수 있었다.

예전 오징어잡이가 한창일 때 이곳은 그야말로 난리가 난 것처럼 사람들과 생선으로 북적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난리골이라고 불렀는데, 이후 나리골로 부르다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한참을 올라가니 카페 건물이 보인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곳이다. 호기심에 들어갔더니 500원짜리 동전을 넣는 자판기 한 대가 설치된 무인카페였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전망이 있는 야외 테라스에 앉아 홀짝거렸다.

조금 더 올라가니 푸른 동해를 배경으로 핑크뮬리가 심긴 정원이 있다. 핑크뮬리가 핀 가을쯤 다시 와도 좋을 것 같았다.

마을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북카페에 잠시 들러 비를 피했다.

동네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는 사정상 일반인을 받고 있지 않다고 한다. 카페 점장은 대신 다른 정보를 하나 준다.

카페 바로 뒷집이 개축해서 월세를 받을 예정이라는 귀띔이다. 한 달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솔깃했다. 이런 조용한 소도시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 달쯤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 매력적인 삼척 구도심

정원이 아름다운 성내동 성당 [사진/성연재 기자]
정원이 아름다운 성내동 성당 [사진/성연재 기자]

삼척 구도심을 찾았다. 보물 제213호인 죽서루를 보기 위해서다.

관동팔경 중 하나인 죽서루는 삼척시 서쪽을 흐르는 오십천을 굽어보는 절벽 위에 지어진 누각이다.

죽서루에서는 비 오는 날씨 때문에 찾는 사람이 없어 한적한 분위기에서 산책을 즐겼다.

죽서루를 나와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 등록 문화재 제141호로 지정된 성내동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은 건물도 볼거리지만, 특히 주변 정원이 너무 아름답다. 온갖 야생화가 활짝 핀 정원이 성당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성내동 성당은 1949년 건축됐지만, 지금 건물은 1957년 삼척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동산 위에 다시 지어졌다.

마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처럼 두 팔을 벌린 예수상이 삼척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인 곳이다.

이 성당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순교자 진 야고보 신부다.

보통 국내의 순교자들은 개화기 천주교가 들어오면서 목숨을 잃었으나, 미국에서 온 이 신부는 한국전쟁 때 순교했다.

1949년 이곳에 부임한 진 야고보 신부는 성당을 지키기 위해 피난을 거부하다 인민군에 체포됐다. 그는 종교를 버릴 것을 강요받았으나 이를 거부하다 결국 오십천변에서 순교했다.

성당으로 가기 위해 구도심을 걷다 보면 거리의 아름다움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곳곳에 갖가지 꽃이 활짝 핀 작은 소공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삼척시가 구도심 활성화를 위해 진행한 삼척시 도시재생 뉴딜사업 덕분이다.

라벤더와 데이지꽃이 활짝 핀 한적한 소공원에서 바쁜 일정 가운데 잠시나마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 '한국의 나폴리' 장호항과 덕봉산

국내에서 나폴리라고 불리는 곳은 두 군데다. 경남 통영의 통영항과 삼척시 근덕면의 장호항이다.

두 곳 모두 전형적인 바닷가 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중 삼척 장호항은 물 맑기로 소문난 곳이다.

오랜만에 장호항을 다시 찾았다. 십수 년 전 지인들과 바닷가에서 타프(그늘막) 하나를 쳐놓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추억이 떠올라 더욱 반가웠다.

그때는 장호항이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지금은 천지 차이다. 3시간 남짓 먼 거리의 서울에서도 일부러 찾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투명 카누를 타는 관광객들 [사진/성연재 기자]
투명 카누를 타는 관광객들 [사진/성연재 기자]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투명카누가 어느새 이곳의 명물이 됐다.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재질로 된 카누의 바닥을 통해 에메랄드빛 바다를 들여다볼 수 있는 초대박 아이템이다.

평일이었지만 투명카누를 타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 있고, 바다에는 카누 10여 대가 떠 있었다.

바다에 카누가 떠 있다면, 하늘에는 해상 케이블카가 떠다닌다. 동해안의 작은 어촌이 변화한 모습은 상전벽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해변에는 캠핑을 즐길 수 있도록 수도 시설과 수세식 화장실 등이 완비돼 있다.

떠들썩한 카누 탑승장을 뒤로 하고 오른쪽 해변으로 슬쩍 돌아가면 장호항 주민의 일상을 만나게 된다. 채취한 미역을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서 사람 말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맑고 투명한 바닷물 속에 해녀 몇 명이 자맥질을 하고 있다. 푸른 동해에서 해녀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장호항도 좋지만 최근에는 군 경계 시설로 반세기 동안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됐던 근덕면 맹방관광지 내 덕봉산 일대도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최근 해안 생태 탐방로를 갖추고 개방된 이곳은 53년 만에 출입 금지 구역에서 벗어나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1968년 11월 '울진·삼척지구 무장 공비 침투 사건'으로 군 경계 시설이 들어섰지만, 지난 4월 산 둘레에 데크가 설치된 해안 생태 탐방로로 재탄생했다.

나무로 된 외나무다리를 통해 산 위를 오르다 보면 동해안의 짙푸른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깔끔한 개량 한옥 게스트하우스 [사진/성연재 기자]
깔끔한 개량 한옥 게스트하우스 [사진/성연재 기자]

◇ 여행이 완성되는 공간, 게스트하우스

마음에 들었던 나릿골의 게스트하우스 숙박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이곳저곳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우연히 걸린 곳은 솔비치가 있는 삼척 후진해변에서 3분 거리에 있는 작은 게스트하우스 '이안애'였다.

낡은 한옥을 개축한 이곳은 전화번호도 찾을 수 없었고, 주소도 없었다. 오로지 인스타그램 계정 하나뿐이었다.

카카오톡 공개 채팅방을 통해 예약을 받는다고 돼 있지만, 채팅방은 연결이 되지 않았다.

무작정 찾아가기로 했다. 삼척 시내길을 한참 운전한 끝에 고즈넉한 작은 개량 기와 지붕을 한 한옥을 만날 수 있었다.

이곳 주인아주머니와 남편은 수년 전 나릿골에 정착하려 했으나 결국에는 다 쓰러져가는 이 한옥이 마음에 들어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정성 들여 집을 고친 덕분에 오래된 집은 여행객들을 위한 멋진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집 가운데 부엌을 중심으로 방이 모두 4개가 있었다. 널따란 공간 덕분에 인기가 좋아 연중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주인댁이 있는 2층 건물 1층은 카페 겸 골동품 전문점으로 운영된다.

숱하게 많은 숙소 가운데서도 게스트하우스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게스트하우스 건물 1층 카페에 전시된 세계 각국의 인테리어 소품들 [사진/성연재 기자]
게스트하우스 건물 1층 카페에 전시된 세계 각국의 인테리어 소품들 [사진/성연재 기자]

천편일률적이고 인간미가 배제된 채 기능적인 부분에 중점을 둔 호텔과 모텔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인간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여장을 푸니 창밖으로 때마침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최치원의 시 '추야우중'(秋夜雨中)이 떠오르는 밤이다.

조용한 게스트하우스 책상에는 여행에 대한 수필들이 한두 권 꽂혀있다. 그중 손이 가는 책 하나를 집어 들었다.

건축가 우라 가즈야의 '여행의 공간'이라는 책이다. 그가 세계 유수의 호텔과 게스트하우스들을 다니며 측량하고 느낀 점을 소탈한 문체로 적었다.

여행자들이 짧게 머무르는 숙소에 대한 작가의 건축학적인 식견은 종종 무릎을 '탁' 치게 했다.

빗소리에 취했고, 동시에 독서의 매력에도 흠뻑 빠졌다. 순간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이 중년 부부에게 고마움이 느껴졌다.

큰 수익도 아닐 텐데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여행자들에게 하룻밤 묵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이 절로 들었다.

나릿골 '할머니의 부엌' 대표 메뉴인 문어 칼국수와 가자미 무침 [사진/성연재 기자]
나릿골 '할머니의 부엌' 대표 메뉴인 문어 칼국수와 가자미 무침 [사진/성연재 기자]

◇ 입맛 만족시킨 세 군데 먹거리 '엄지척'

이번 삼척 일정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어촌 특유의 소박하면서도 깔끔한 맛을 내는 먹거리들이었다.

특히 나릿골 마을에서 운영하는 '할머니의 부엌'에서는 문어 칼국수를 처음 맛볼 수 있었다. 문어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이곳에서는 칼국수 단품을 시켜도 큼지막한 문어가 들어간다.

칼국수를 그리 즐기지 않지만 대표적인 메뉴라길래 한번 시도해봤는데 대성공이었다.

점심은 누구나 먹을 수 있지만, 저녁의 경우 단 한 팀만 받기 때문에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솔비치 인근의 후진해변에는 '후지지 않은' 맛집이 여러 곳 있다. '오복미가'는 그 가운데 하나다.

돌솥 밥을 시키면 맛깔스러운 간장게장과 가자미구이, 제육볶음 등 산해진미가 반찬으로 나온다.

삼척에 가면 꼭 맛봐야 할 디저트가 있다.

돗자리를 빌려 곰치 빙수와 함께 해변에서 즐기는 피크닉 [사진/성연재 기자]
돗자리를 빌려 곰치 빙수와 함께 해변에서 즐기는 피크닉 [사진/성연재 기자]

후진해변에 문을 연 카페 '피크닉키키'에서 내놓는 곰치빙수다. 삼척 등 동해안에서 나는 생선인 곰치 모양을 본떠 만든 빙수다.

곰치처럼 검은색을 내기 위해 검은색 깻가루를 뿌렸다. 앞부분이 물고기 모양을 하고 있다.

특이한 건 이곳에서 피크닉세트까지 빌려준다는 거다. 백사장에 돗자리를 깔고 빙수를 맛봤다.

날은 더웠지만 시원하고 달콤한 빙수를 입속에 넣으니 하와이 와이키키가 부럽지 않았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7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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