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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전조 스토킹]① 스토킹 사건 절반, 성폭력·폭행으로 이어진다

송고시간2021-05-2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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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로 불리는 스토킹 범죄는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미온적 대처로 인해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로 인해 많은 피해자들은 극심한 두려움과 불안에 떨며 정상적인 삶을 이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오는 10월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돼 스토킹 범죄를 징역형으로 처벌할 길이 열리지만, 이 법 또한 많은 문제점과 개선점을 지니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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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피해 후 성범죄 당할 확률, 비경험자의 13배…"살인사건 30%, 스토킹과 연관"

피해자들 대다수, 스토킹 당한 후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 시달리고 자살까지

전문가들 "스토킹, 가해자 아닌 피해자 관점에서 엄벌에 처해야"

[※편집자 주: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로 불리는 스토킹 범죄는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미온적 대처로 인해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로 인해 많은 피해자들은 극심한 두려움과 불안에 떨며 정상적인 삶을 이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오는 10월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돼 스토킹 범죄를 징역형으로 처벌할 길이 열리지만, 이 법 또한 많은 문제점과 개선점을 지니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연합뉴스는 스토킹 범죄의 심각한 실태를 보여주고, 이를 처벌할 스토킹처벌법의 내용과 미비점, 개선 방안, 외국의 스토킹 처벌 법규 등을 다루는 6편의 기획 기사를 차례로 송고합니다.]

살인의 전조 스토킹 / 연합뉴스 (Yonhapnews)

유튜브로 보기

https://youtu.be/AEVWm18DpHo

(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 "죽어라!"

지난해 5월 4일 오전 9시50분. 경남 창원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흉기를 든 남성이 여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온몸을 여러 차례 찔린 여성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피살 당시 59세였던 이 여성은 가해자(44)에게 10년 동안 끈질긴 스토킹에 시달려온 피해자였다.

피해자는 동네에서 작은 고깃집을 운영하던 사장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 아내였다. 그런 피해자를 고깃집 단골손님인 가해자는 10년간 스토킹하며 집착했다. 경찰에 신고해도 멈추지 않았다. 피해자가 숨지기 전 석 달 치 통화 목록에는 가해자에게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걸려온 100여 통의 전화 기록이 남아 있었다.

지난달 25일 대법원은 가해자에 대해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판결이) 남은 가족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분노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스토킹은 피해자의 일상, 나아가 생명까지 위협하고 파괴하는 심각한 범죄이다. 하지만 지금껏 우리 사회는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스토킹을 형사 처벌할 법마저 없었다. 오는 10월에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시행돼 스토킹 범죄를 징역형으로 처벌할 길이 열리게 된다.

전문가들은 스토킹처벌법 시행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근절할 수 있도록 법규와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드러나는 법규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한편, 타인에 대한 부지불식중의 행동이 스토킹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닫도록 계도하는 작업, 스토킹 근절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 노력 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취재진에 답하는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 범인 안인득
취재진에 답하는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 범인 안인득

(진주=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진주 방화·흉기 난동 피의자 안인득이 25일 오후 경남 진주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9.4.25 home1223@yna.co.kr

◇ 살인·성폭력·상해·주거침입…스토킹은 '범죄 종합세트'

열여덟 살 최모 양은 2019년 4월 17일 새벽 화재 연기로 가득 찬 아파트 비상계단에서 죽었다. 사인은 자상(刺傷). 날카로운 흉기에 찔려서였다. 범인은 안인득(44). 최 양을 반년 넘게 스토킹한 스토커였다. 안인득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아파트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으로 최 양을 포함해 5명이 죽고 17명이 다쳤다.

22명의 주민이 죽거나 다친 끔찍한 사건은 예고 없이 일어나지 않았다. 사건 발생 전 안인득의 최 양을 대상으로 한 스토킹이라는 '경고 신호'가 있었다. 최 양 가족은 사건 이전 경찰에 수차례나 신고했지만, 경찰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안인득의 스토킹이 심각한 범죄로 받아들여져 형사 처벌을 받았다면 이러한 참혹한 사건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스토킹 범죄에 대해 우리 사회가 경계의 수위를 높여야 하는 것은 스토킹이 피해자에 대한 단순한 집착과 접근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스토킹은 신체적 폭력과 성폭력 심지어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흉악하고 위험한 범죄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2∼2018년 전국범죄피해조사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스토킹 피해자가 성범죄를 당할 가능성은 스토킹 피해 경험이 없는 사람에 비해 13.3배에 달했다.

또한, 한민경 경찰대 교수가 2013년부터 2020년까지 8년간 선고된 법원의 1심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스토킹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사건 148건 가운데 절반 이상이 강간이나 상해, 폭행, 협박, 주거침입, 업무방해 등 다양한 신체적 폭력이나 성폭력 범죄를 동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토킹과 신체적 폭력·성폭력 중첩 정도
스토킹과 신체적 폭력·성폭력 중첩 정도

[제작 정유민 인턴기자]

스토킹이 상해·폭행 등 신체적 폭력으로 이어진 경우는 148건 중 53건(35.8%), 성폭력으로 이어진 경우는 42건(28.4%)에 달했다. 신체적 폭력과 성폭력이 모두 있었던 경우도 18건(12.2%)이나 됐다.

이들 스토킹 사건은 1건당 평균 4.6개의 처벌 규정이 함께 적용됐다. 스토킹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여러 유형의 범죄를 복합적으로 저질렀다는 뜻이다.

스토킹이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한 교수는 "스토킹은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 극히 심각한 범죄"라며 "해외 연구 등을 보면 통상 살인사건 중 30% 비율로 범행 이전 스토킹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가해자들은) 강한 집착과 소유욕을 스토킹이라는 형태로 상대방에게 드러낸다"며 "자신이 도저히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살인 등 강력범죄를 저지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알게 된 피해자를 스토킹하다가 결국 피해자와 그 여동생, 어머니까지 살해한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의 범인 김태현(24)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김태현은 두 달에 걸쳐 스토킹을 벌였고, 피해자가 연락을 차단하고 만나주지 않자 살인이라는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스토킹이 실제 범죄로 이어지더라도 많은 가해자가 중형을 피할 수 있었다. 스토킹 그 자체를 심각한 범죄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가해자의 범죄를 잘게 쪼갠 후 처벌 법규를 적용할 수 있는 부분만 처벌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스토킹, 폭행 등을 저지른 가해자 가운데 48.6%가 집행유예, 벌금형 등을 통해 실형을 피할 수 있었다.

곽 교수는 "스토킹은 더 큰 범죄가 발생하기 전에 이를 알려주는 '전조(前兆)'와 같은 범죄"라며 "스토킹을 개인 간 문제로 치부하는 등 가해자 중심으로 스토킹 범죄를 바라본 우리 사회의 인식을 이제는 바꿔야 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김예진(가명·21) 씨가 스토커로부터 받은 메시지
김예진(가명·21) 씨가 스토커로부터 받은 메시지

[김예진 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끝없는 불안과 두려움'…피해자의 영혼까지 파괴하는 스토킹

스토킹 가해자가 살인, 폭행 등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이는 엄하게 다스려야 할 심각한 범죄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스토킹은 피해자의 '영혼'마저 파괴하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김예진(가명·21) 씨는 요즘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의 피해자처럼 게임을 통해 스토커를 만나서일까. 그는 '다음은 내가 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김 씨가 스토커 A를 만난 것은 2019년 한 온라인 게임 소모임에서였다. 처음에는 친구 같은 사이였지만, A가 점점 김 씨에게 집착을 보이며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A는 김 씨가 공유한 적이 없는 소셜미디어(SNS) 계정의 내용을 언급하며 말을 걸어오거나, 김씨의 작업실 주소를 알아내 선물과 편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지난 2월 김 씨는 A가 자신의 얼굴을 합성한 음란물을 메신저 단톡방에서 유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분노한 김 씨가 법적 대응 의사를 밝히자 A는 "자살하겠다"며 되레 협박했다. 김 씨가 혼자 일하는 작업실로 찾아와 문을 술병으로 내리치고, 오물이 든 페트병을 투척했다. 발신자 표시 제한번호로 김씨에게 영상전화를 걸어 음란행위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 씨가 경찰에 몇 번이나 찾아갔지만, 경찰은 "신체적 피해가 없어 조치하기 어렵다", "증거가 없어 잡기 어렵다" 등 방관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A는 '마주치면 죽여버리겠다'는 등의 메시지를 지금도 여러 방법으로 김 씨에게 보내고 있다. 밝고 활달한 성격이었던 김 씨는 이제 우울증과 불면증, 편집증 진단을 받고 정신과 통원 치료를 하고 있다.

김 씨의 사례처럼 스토킹을 겪은 피해자의 대다수는 신체적 상해를 입지 않더라도, 정신적 트라우마로 인해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누군가 자신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언제 나를 해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극도의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스토킹 피해자들이 겪는 후유증
스토킹 피해자들이 겪는 후유증

[제작 정유민 인턴기자]

경기대 이수정 교수 연구팀이 국회에 제출한 '스토킹 방지 입법정책 연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이 조사한 스토킹 피해자 256명 중 226명(88.4%)이 일상생활에서 심각한 수준의 '신변의 안전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206명(80.4%)은 '타인에 대한 혐오·불신감'을 호소했다. 심각한 자살 충동을 느낀 피해자도 80%에 달했다.

이러한 두려움과 불안은 실질적인 사회·경제적 피해로 이어진다. 많은 피해자가 다니던 직장이나 학교를 그만두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한다. 스토킹 피해자의 절반 이상은 혼자 외출을 못 하고 공공장소 이용에 공포를 느끼거나, 대인기피 증상을 겪는다. 전쟁이나 대형 재해 경험 후 나타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것이다.

유민희(가명·23) 씨는 스토킹 피해 이후 대인 기피증에 걸렸다. 그는 "같이 술을 마시자"며 접근해온 남성으로부터 2년간 전화, 메시지 등으로 스토킹을 당했다. 이후 휴대전화에 모르는 전화번호가 뜨면 '혹시 그 사람인가'하는 공포심을 느낀다. 이 남성은 수차례 번호를 바꿔가며 유 씨에게 연락했다고 한다.

유 씨는 원래 술자리를 즐기고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했지만, 스토킹 피해 이후로는 술도 전혀 마시지 않고 사람과의 만남 자체를 피하고 있다. 호감이 생긴 이성이 생겨도 그가 자신의 사생활 등에 관해 물으면 공포심이 앞서 제대로 관계를 이어나가지 못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촬영 정유민 인턴기자]

이수정 교수는 "스토킹 범죄는 극단적인 경우엔 한 대 맞지도 않았는데 피해자가 자살하기도 한다"며 "정신적 상해가 계속 발생하기 때문에 피해자는 일상생활을 못 하게 되고, 그로 인해 경제적 손실이나 인간관계 상실은 물론 생존이 힘든 상황마저 겪게 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스토킹 근절을 위해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더불어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 등 좋아하는 사람에게 상대방 의사와 관계없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용납하는 사회적 통념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스토킹이 얼마나 잔혹한 범죄가 될 수 있는지 생각하고, 이를 근절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곽대경 교수는 "스토킹은 남녀 사이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닌, '심각한 중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며 "스토킹처벌법 시행을 계기로 스토킹 행위가 무겁고 심각한 범죄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갖고 가해자를 엄하게 처벌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653@yna.co.kr

[탐사보도팀: 권선미·윤우성 기자, 정유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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