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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예의바른 트럼프'가 예고한 진실의 순간

송고시간2021-05-02 07:07

의회에서 연설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의회에서 연설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뉴욕=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첫 의회 연설에 대한 미국 내 다양한 평가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예의바른 트럼프 같았다"는 한마디였다.

사업가 출신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화법은 적지 않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기존 정치 문법을 따르지 않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직설적인 메시지에 지지층은 박수를 보냈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컸다.

미국 대통령이 동맹이나 인권, 민주주의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것이 올바르냐는 지적이었다.

이에 비해 정계에서 40년 넘는 세월을 보낸 바이든 대통령은 겸손해 보인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세련된 화법을 구사했다.

그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이상'이라고 규정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신념과 민주주의가 미국의 가치라고 설명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이 보인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는 트럼프 전 대통령 못지 않았다. 오히려 더 정교하고 치밀했다.

그는 연설에서 '21세기'라는 말을 7번 사용했다.

21세기가 '중국의 시대'가 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고 미국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세계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의 위치를 21세기에도 지켜나가겠다는 다짐이었다.

연설에서 드러난 바이든 대통령의 세계관은 명확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진영과 중국이나 러시아로 대표되는 비민주진영이라는 양분법적 세계다.

민주주의나 인권과 같은 가치보다는 돈으로 환산되는 미국의 이익을 중시한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뿌리가 다른 세계관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을 독재자로 지칭했다. 그러면서 "독재자들은 미국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단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외국 정상에게 일종의 충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절대 미국이 지는 쪽에 걸지 말아라. 미국이 할 수 없는 것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의회에서 연설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
의회에서 연설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

[EPA=연합뉴스]

이 대목에서 대한민국의 국익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정부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속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도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의 4개국 협의체)에도 중국의 반발을 고려하는 모습이다.

최근 정의용 외교통상부 장관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쿼드 참여를 요구할 가능성에 대해 "그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도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가속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는 전략적 모호성이 통하지 않는 '진실의 순간'이 닥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예로 들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에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시 주석에게 통보했다는 대화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중국의 위협에 맞서 자유롭게 열린 인도·태평양을 만들겠다는 쿼드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30여년 외교관 경력에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까지 지낸 정 장관이 바이든 대통령 연설의 의미를 모를리 없다.

국제 관계에선 어느 한쪽의 희망과는 반대 방향으로 일이 전개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만약 정 장관의 희망과 달리 한미 정상회담에서 쿼드 문제가 의제로 오른다면 국익에 따라 대응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일 것이다.

kom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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