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습지의 봄 ② 깊은 산속 옹달샘…문경 돌리네 습지

곳곳에 야생 곤충과 동식물 서식하는 '미소서식지' 조성
세계적으로 희귀 사례…최근 일반인 관람 허용

(문경=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경북 문경의 깊은 산속에는 옹달샘처럼 사철 마르지 않는 습지가 있다.

산꼭대기에 형성된 습지는 농부들에게는 귀중한 용수를, 산짐승들에게는 목을 축일 수 있는 생명수를 제공해 왔다.

이곳은 석회암이 녹아내리며 만들어진 돌리네(doline) 습지로 밝혀졌다.

돌리네 습지는 물이 고이기 힘든 곳에 있어 세계적으로도 매우 희귀한 사례로 손꼽힌다.

하늘에서 본 문경 돌리네 습지 [사진/성연재 기자]
하늘에서 본 문경 돌리네 습지 [사진/성연재 기자]

◇ 교과서에서 접했던 돌리네를 만나다

'돌리네?' 고등학교 지리 시간에 배웠던 용어다. 수십 년 만에 다시 접한 이 지리학 용어는 왠지 친근한 느낌을 줬다. 동시에 호기심을 자극했다.

때마침 문경시는 최근 산북면 우곡1리의 돌리네 습지 단장을 마치고 일반인의 관람을 허용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문경시는 사업비 19억4천만원을 들여 49만㎡에 달하는 돌리네 습지 훼손지 복원사업을 마쳤다.

돌리네 습지는 산북면 우곡1리 마을을 지나면 만날 수 있다. 마을 앞 수백년 된 고목을 지나면 가파른 언덕이 나타나는데 지그재그로 길이 나 있다.

돌리네 습지로 향하는 길은 끝없는 S자 코스의 연속이었다. 운전이 서투른 사람은 아찔하게 느껴질 정도다. S자 코스가 끝나자 산 중턱쯤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이곳이 습지의 시작이다.

문경 돌리네 습지 사무실에서 문경시 환경보호과 공무원 류현욱 씨와 박정숙 환경해설사 등 2명을 만났다.

이곳에서 돌리네 습지까지는 걸어가거나 전기자동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첫날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분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때마침 관람객이 있어 함께 전기자동차로 이동했다.

야트막한 고개를 지나니 사과밭이 나오고 저 멀리 습지가 보인다. 오른쪽으로 계속 내려가니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나타났다.

미소서식지와 함께 어우러진 돌리네 습지 [사진/성연재 기자]
미소서식지와 함께 어우러진 돌리네 습지 [사진/성연재 기자]

최근에 새로 지어진 곳이라 했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습지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분지 주위에 버드나무가 막 파란 싹을 틔우고 있었고 자세히 보니 버드나무 아래에 동그란 작은 연못이 여러 개 보였다. 이곳이 돌리네 습지다.

석회암 지대의 틈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면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녹아내리면서 오목하게 패인 웅덩이를 형성하는데, 이러한 지형을 돌리네라 한다.

원래 돌리네는 슬로베니아 등 옛 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 발견돼 그 지역의 용어가 그대로 쓰인 케이스다.

여기서 돌리네가 2개 이상 확장·연결된 것을 우발레(uvale)라고 한다. 국내에 물이 고이는 돌리네 지역은 강원도 정선의 밭구덕 등 모두 4곳이 있다.

보통 비가 많이 오더라도 1주일 정도면 물이 빠져나간다고 하는데 이곳만 유독 1년 내내 물이 고인다.

이곳에서는 빗물에 석회암이 용해되면서 점토질과 광물이 쌓여 물이 빠지지 않아 습지가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경시는 학술적인 뒷받침을 위해 한국습지학회에 연구용역을 의뢰한 상태다.

전기자동차를 타고 습지를 둘러보는 관람객들 [사진/성연재 기자]
전기자동차를 타고 습지를 둘러보는 관람객들 [사진/성연재 기자]

◇ 목마른 동물들의 마르지 않는 옹달샘

전망대에서 내려 돌리네로 다가섰다. 동그란 모습이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모습이 신기하게만 여겨졌다.

숲 주위에는 다양한 동물 발자국이 보였는데, 멧돼지와 고라니 등 동물들이 물을 마시러 내려온다고 한다.

이 습지에는 수달과 담비 등 731종의 야생 동식물이 서식한다.

이곳에는 특히 꼬리진달래, 낙지다리, 들통발, 쥐방울덩굴 등 4종류의 희귀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낙지다리는 줄기가 마치 낙지의 빨판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신기했다. 산뚝사초 군락도 아름다웠다.

주변의 물색은 토양에서 흘러나온 다양한 성분 때문에 회녹색에서 군청색까지 다양했다. 막 잠에서 깬 개구리들이 알을 낳았는지 물속에서는 개구리알들이 여럿 보였다.

농민 출신인 해설사 박씨는 농사를 지을 때는 이곳이 돌리네 습지라는 것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수년 전 이곳으로 답사를 왔던 대학생들로부터 이곳이 습지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 전부였다.

희귀 식물 낙지다리 [사진/성연재 기자]
희귀 식물 낙지다리 [사진/성연재 기자]

그의 안내를 들으며 함께 걷다 보니 그가 직접 농사를 지었던 밭도 나타났다.

돌리네 습지 주변에는 3.2km의 걷기 길도 마련돼 있다. 습지가 있는 곳은 해발 270∼290m로, 399.8m 높이의 굴봉산 자락이다.

조금 더 멀리 단산(959m)도 보였다. 단산에서 이곳까지도 5시간 걸리는 걷기 길이 잘 조성돼 있다고 한다.

돌리네 습지 주변에는 주민들이 25년 전 심어놓은 두충나무가 많다. 사과밭이나 오미자밭도 많이 눈에 띄었다.

두충나무가 심어진 땅은 이전에 주로 담배 농사를 짓던 곳이었다고 한다. 습지 덕분에 농업용수가 풍부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친환경 농업도 이뤄진다. 지난해에는 영농조합법인인 돌리네마을과 문경YMCA 등 지역주민들이 참여해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친환경농법으로 벼농사를 지어 200여㎏의 쌀을 생산해내기도 했다.

다음 날 오전 습지를 찾기로 하고 탐색전을 마쳤다.

습지의 아침 [사진/성연재 기자]
습지의 아침 [사진/성연재 기자]

◇ 아침이 더 아름다운 습지

혹시나 우포늪처럼 새벽에 습지를 찾으면 물안개가 핀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싶어 다음날 새벽 습지로 올라갔다.

종류를 알 수 없는 동물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없는 새벽의 습지는 다소 섬뜩한 느낌도 들었지만, 곧 해가 떠오르자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전망대 위에 매로 보이는 큰 새가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망원렌즈로 갈아끼고 사진을 찍었다. 몇 장을 찍었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는 모습이 이상해 전망대로 다가갔는데, 알고 보니 새가 아니라 새 모형이었다.

실망하고 습지로 내려서는 순간 눈앞에서 무언가 후다닥 튀어 나간다. 저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보니 고라니다.

나뭇가지가 어지럽게 들어선 숲속으로 달아나는 바람에 눈으로만 봤다. 물을 마시러 내려왔던 모양이다. 이렇게 습지는 여러 생물의 보금자리가 된다.

습지 사무실 앞에는 주민들이 오미자차를 판매한다. [사진/성연재 기자]
습지 사무실 앞에는 주민들이 오미자차를 판매한다. [사진/성연재 기자]

이곳에는 수달과 담비, 삵도 있다고 한다.

습지 곳곳에는 야생 곤충과 동식물들이 서식할 수 있는 '미소서식지'(微少棲息地)가 조성돼 있다.

주로 돌무더기와 베어낸 나무 기둥 등을 이용해 조성한 것으로, 각종 곤충과 뱀 등 다양한 동물들의 서식지가 된다.

아무도 없는 습지는 더욱더 매력적이었다. 잘 조성된 산책길을 걷노라니 아침 햇살에 비친 습지의 모습이 더욱 신비롭다.

아까 그 고라니가 다시 내려와 물을 마실까 싶어 주의를 기울였으나 저 멀리 산에서 들리는 딱따구리 소리만 요란했다.

딱따구리 소리에 홀려 산을 타기 시작했지만 딱따구리는 곁을 주지 않았다. 근처로 다가가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날아가 버린다. 덕분에 빈 둥지만 목격했다.

단산의 산악 모노레일 [사진/성연재 기자]
단산의 산악 모노레일 [사진/성연재 기자]

◇ 단산에서도 갈 수 있는 돌리네 습지

단산에서 돌리네 습지를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단산으로 향했다.

단산은 '안 와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로 산세가 아름답다.

단산에는 산 정상부까지 한 번에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단산관광모노레일이 있다. 이 모노레일은 정상까지 3.6㎞ 거리를 왕복하는 국내 최장 길이의 산악형 열차다.

실제로 보니 스위스에서 본 것처럼 톱니가 레일에 장착돼 있다.

출발 지점은 해발 260m, 최고 급경사는 42도에 이른다. 반드시 안전벨트를 착용해야 한다.

올라갈 때는 잘 몰랐지만, 내려올 때는 안전벨트를 꽉 매지 않으면 중심 잡기가 힘들 정도였다.

열차표는 연일 매진 행진이다.

정상에 올라서니 저 멀리 돌리네 습지 쪽이 내려다보였다. 그리고 습지로 향하는 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다. 여유가 있을 때 다시 한번 꼭 걸어보고 싶은 길이다.

보고 듣고 체험할 것이 많은 오미자 터널 [사진/성연재 기자]
보고 듣고 체험할 것이 많은 오미자 터널 [사진/성연재 기자]

◇ 문화의 향기 그윽한 문경

스타벅스에서 문경 오미자를 재료로 한 메뉴가 팔리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오미자는 그만큼 문경을 대표하는 작물로 자리 잡았다.

문경의 대표적인 관광지 가운데 하나가 문경오미자터널이다.

농업회사법인 오미원이 마성면에 있던 폐철로(석현터널)를 철도시설공단으로부터 임대해 조성한 길이 540m, 폭 4.5m의 터널형 관광지다.

연중 섭씨 14∼15도의 온도를 유지하는 이 터널은 오미자 와인 숙성에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입구 안으로 들어서니 오미자 전시 코너, 조형물, 와인바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있었다.

문경에는 다양한 문화공간이 있다. 그중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갤러리가 결합한 카페 피코를 빼놓을 수 없다.

문경새재에서 나와 하푸실마을을 향해 차로 1분만 달리면 카페 피코를 만날 수 있다. 문경을 방문하면 결코 놓칠 수 없는 곳이라는 추천을 받고 가봤는데 왠지 눈에 익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2년 전 우연히 방문하고 무척이나 만족했던 파스타 레스토랑 파밀리아 바로 옆 건물이었다. 카페와 레스토랑은 한 사람이 운영하고 있었다.

갤러리 카페 피코 [사진/성연재 기자]
갤러리 카페 피코 [사진/성연재 기자]

카페 피코는 지역과 상생을 모토로 운영된다. 이 지역 바리스타가 볶은 커피를 가져다 쓰고, 지역 예술가 작품도 전시한다. 문경 정착을 원하는 청년을 돕는 프로젝트 '달빛탐사대'도 운영하고 있다.

피코(Pico)라는 단어는 스페인어로 봉우리란 뜻이다. 갤러리 카페 뒤로 문경새재의 주흘산이 올려다보이는 모습이 마치 스위스의 어느 작은 건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 2층은 전시와 강연 등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때마침 이곳에서는 7명의 유명 사진작가가 주최하는 '찾아가는 갤러리'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탁 트인 주흘산의 전경과 함께 강재구, 구본창, 라인석, 양재문, 임안나, 정봉채, 주기중 등 국내의 대표적인 사진작가의 아름다운 사진들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갤러리 피코에서 열린 사진전 [사진/성연재 기자]
갤러리 피코에서 열린 사진전 [사진/성연재 기자]

◇ 빠질 수 없는 문경 여행지들

사실 돌리네 습지는 문경이 자랑하는 관광 포인트 중 하나일 뿐이다. 문경에는 유명한 관광지들이 널려 있다.

문경을 대표하는 곳은 문경새재다. 명승 제32호인 문경새재는 조선 태종 14년(1414년) 개통된 길이다.

조선 시대 저 멀리 부산부터 모든 영남의 물자와 사람들은 이곳 문경새재를 거쳐 한양으로 향했다. 장원급제를 꿈꾸던 선비들이나 거부를 꿈꾸던 보부상들도 이곳을 통해 한양으로 향했다.

이곳은 또한 군사상의 요충지로, 모두 3개의 관문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넷플릭스를 뜨겁게 달군 국산 드라마 '킹덤'에서 문경새재를 봤던 기억이 났다.

주인공 일행이 영남지방을 휩쓴 뒤 서울로 향하는 괴물들을 막아낸 장면이 촬영된 곳이 바로 이 문경새재 제1 관문이다.

이 관문을 지나면 사극 촬영이 이뤄지는 한옥 마을 세트장이 보이는데, 실제 집과 똑같이 지어져 세트장이라고 불리면 섭섭한 곳이다.

국내에서 제작하는 사극 드라마 상당수가 이곳에서 촬영된다고 보면 된다. 이곳을 거닐다 보면 마치 조선 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이 든다.

그 뒤로 험준한 조령산이 있는 모습이 그야말로 극적이다.

새재 초입에 조성된 미로공원도 매력적이다. 아이들이 있는 가족이나 연인들이라면 한 번쯤 찾아볼 만하다.

한옥마을 세트장 [사진/성연재 기자]
한옥마을 세트장 [사진/성연재 기자]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5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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