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습지의 봄 ① 원시 자연의 신비 간직한 우포늪

조용히 걷거나 쉬며, 자연과 만날 수 있는 곳

(창녕=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습지는 산업화 이후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논농사를 주로 짓던 우리 조상들의 삶에서 습지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였다. 농사를 위한 담수 공간이자,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다행히 근래에 습지가 생물종 다양성 유지에 꼭 필요한 자연 공간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습지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약 1억4천만 년 전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남 창녕군 우포늪에는 1천500종의 동식물이 서식한다.

이곳에는 특히 한반도에서 멸종됐다가 최근 복원된 따오기를 비롯해 오리, 왜가리, 백로, 고니 등 다양한 조류가 살고 있다.

봄을 맞은 우포늪은 연초록 잎들이 바다를 이뤄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다.

물안개 낀 우포늪의 아침 [사진/성연재 기자]
물안개 낀 우포늪의 아침 [사진/성연재 기자]

◇ 봄마다 조용히 찾는 숨은 보물 우포늪

해마다 봄이 되면 조용히 찾고 싶어지는 곳이 몇 군데 있다. 그중 한 곳이 봄 향기 물씬 풍기는 창녕의 우포늪이다.

늪이라고 하면 사람까지 집어삼키는 영화 속의 늪을 떠올리기 쉽지만, 한국에 그런 곳은 없다. 우포늪은 거대한 저수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오랜만에 찾은 우포늪을 먼저 탐색전을 치르듯 훑어봤다.

봄을 맞은 우포늪은 온통 연초록 물결이었다. 곳곳에 핀 진분홍 매화가 완연한 봄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대충 훑어본다고 생각했는데도 한나절이 흐를 정도로 규모가 컸다. 복잡한 지형 때문에 바로 맞은 편, 지척으로 보이는 곳도 가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대합면, 이방면, 유어면, 대지면 등 창녕군 4개 면에 걸쳐있는 우포늪은 우포, 목포, 사지포, 쪽지벌 등 4개의 늪으로 형성돼 있다.

담수 면적은 축구장 210개 넓이와 맞먹는 2.31㎢(약 70만평)에 달한다. 이런 방대한 수변공간이 다양한 동식물들이 살아가는 터전이 된다.

우포늪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8년 3월 람사르 습지로 지정됐다. 람사르협약은 습지의 보호와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한 국제 습지보호 조약으로, 1971년 2월 이란 람사르에서 채택됐다.

우포늪은 미국 뉴스 전문 채널 CNN이 선정한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50선 중 6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언택트 경남 힐링 관광 18선'에도 포함돼 국내 대표 생태관광지역으로 인정받고 있다.

우포늪과 어부 [사진/성연재 기자]
우포늪과 어부 [사진/성연재 기자]

◇ 우포의 본모습 보려면 새벽부터 움직여야

원시 자연 늪의 신비를 간직한 창녕 우포늪은 1억4천만 년 전 낙동강 지류가 흘러 형성된 늪으로, 희귀 야생동식물을 포함해 다양한 생물 보금자리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수년 전에는 대한민국에서 자취를 감췄다가 최근 복원된 천연기념물 198호 따오기가 사는 곳이기도 하다.

우포의 제모습을 보려면 반드시 새벽에 길을 나서야 한다. 햇살이 우포늪을 비추면 물안개가 늪지 위로 피어오르는 모습이 장관이기 때문이다.

다음날 새벽 본격적인 탐사에 나섰다. 첫 번째 목적지는 숙소에서 가까운 소목나루터였다.

매일 오전 6시가량이면 어로 활동을 마친 지역 어부들이 나루터에 도착한다.

때마침 만선을 한 어부가 해가 떠오르는 우포늪을 배경으로 노를 저어 들어왔다. 배는 수심이 낮은 늪지대를 쉽게 오갈 수 있도록 바닥이 납작했다.

물고기로 가득 찬 이마배 [사진/성연재 기자]
물고기로 가득 찬 이마배 [사진/성연재 기자]

앞부분이 뭉툭한 이 배를 이곳에선 사람 이마를 닮았다고 해서 이마배라고 부른다.

이마배는 자연스럽게 배 안으로 물이 스며 들어온다. 그래야 잡은 물고기를 싱싱한 상태로 보존할 수 있다.

배를 대고 들어온 것은 동네 주민인 김모 씨다. 배 물칸에는 물고기가 가득 실려있다. 그야말로 만선이다.

대부분이 잉어, 붕어, 가물치, 동자개 등이다. 가끔 외래어종인 배스도 한두 마리 잡힌다고 한다.

20년간 우포늪의 환경정화 활동을 벌여온 주영학 씨 [사진/성연재 기자]
20년간 우포늪의 환경정화 활동을 벌여온 주영학 씨 [사진/성연재 기자]

◇ 우포를 지키는 사람들

소목 나루터에서 환경감시원으로 활동하는 주영학 씨를 만났다.

오전 7시도 안 된 시간이지만 주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벌써 몇 차례 우포늪을 돌았다고 한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우포, 목포, 사지포, 쪽지벌 등 4개의 늪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환경정화 활동을 20년 넘게 해오고 있다.

대구에서 직장을 다니던 그는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고향인 창녕으로 내려왔다.

주씨는 쉬는 날 없이 매일 아침 늪으로 나와 저물녘까지 관람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와 생활 쓰레기 등을 치운다. 또 생태계를 교란하는 뉴트리아와 황소개구리 등 외래동물을 잡는다.

그는 "귀한 황새 4마리가 한꺼번에 대대제방에서 노닐고 있다"고 귀띔을 한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 제199호인 황새는 전 세계에 2천500마리만 남아 있을 정도로 귀한 존재다.

주씨는 "올해 황새가 3월 7일 오전 9시33분 처음 우포를 찾았다"며 황새가 온 시간까지 정확하게 말해줬다.

10년 동안 우포늪의 비경을 촬영해 온 사진작가 장기헌 씨 [사진/성연재 기자]
10년 동안 우포늪의 비경을 촬영해 온 사진작가 장기헌 씨 [사진/성연재 기자]

급히 동남쪽 대대제방으로 달려가 보니 과연 황새 4마리가 아침햇살을 받으며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주변에 청둥오리가 떴다가 내렸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황새들은 가끔 먹이다툼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곳에서 만난 사진작가 장기헌 씨로부터 망원렌즈를 빌려 황새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웬만하면 값비싼 렌즈를 빌려주지 않는데 흔쾌히 사진을 찍으라며 양보하는 것이 정말 고마웠다.

그는 "매일 아침 우포늪을 찾아 사진을 찍고 있으니 멀리서 온 손님에게 하루쯤 양보해도 괜찮다"면서 웃는다.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장씨는 10년 넘게 매일 오전 우포늪의 비경을 촬영해 오고 있다.

오후에는 20년간 우포늪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온 사진작가 정봉채 씨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작품 세계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그의 사진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한밤중 달빛이 교교한 저수지 한 가운데 있는 백로 떼를 찍은 사진이었다.

그는 "오후 7시부터 새벽 3시까지 아무도 없는 우포늪에서 3개월간 혼자 작업을 했다"면서 "야수들의 사냥 소리와 비명에 공포감이 엄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20년 동안 우포늪을 기록해 온 사진작가 정봉채 씨 [사진/성연재 기자]
20년 동안 우포늪을 기록해 온 사진작가 정봉채 씨 [사진/성연재 기자]

◇ "다시 와줘서 고맙다" 따오기의 재생

사실 야생동물을 접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동물원처럼 한곳에 붙잡아두고 오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빠른 정보력과 발품이 필수다.

방사된 따오기가 우포따오기복원센터 근처에 자주 출몰한다는 이야기를 사진작가 장씨로부터 들었다. 따오기복원센터는 부엉이가 서식하는 절벽인 '부엉덤'을 지나면 만날 수 있다. 장씨와 함께 그곳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절벽 위에서 꾸벅꾸벅 조는 부엉이를 망원렌즈로 잡을 수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미소가 절로 나왔다.

새끼 2마리가 태어났는데, 그 중 한 마리가 절벽 밑으로 떨어져 경남대로 급히 이송한 상태라고 한다.

잠을 깨울까 싶어 사진 몇 장만 찍고 바로 따오기복원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따오기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장씨는 "기다리면 만날 수 있다"고 했다. 1시간 넘게 무료한 기다림이 계속됐다.

마음속에서는 갈등이 생겼다. '차라리 군 소재지로 가서 다른 취재를 하는 것이 어떨까?' 그 순간 저 멀리 "따옥따옥" 소리가 들렸다.

미꾸라지를 잡는 따오기 [사진/성연재 기자]
미꾸라지를 잡는 따오기 [사진/성연재 기자]

방사됐던 따오기가 따오기복원센터 인근 논으로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20㎝는 족히 될듯한 길고 아래로 굽어진 검은색 부리가 인상적이다.

따오기의 부리 앞 끝은 앙증스럽게도 빨간색이다. 몸은 흰색, 등 쪽은 엷은 붉은색이다. 뒷머리에는 긴 관우(冠羽)가 있어 기품이 느껴진다.

다 자란 녀석은 몸길이 75㎝, 날개길이 40㎝, 날개를 폈을 때 길이는 약 140㎝, 몸무게는 1.6∼2㎏이다.

황새보다는 몸집이 작아 곁에서 보면 귀여운 모습이다.

1980년 이후 국내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던 따오기는 국제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 제198호이다.

2008년 중국으로부터 따오기 한 쌍을 어렵게 기증받은 뒤 경남도와 창녕군, 환경부의 노력으로 증식된 따오기 숫자는 432마리까지 늘어났다.

최근에는 2019년 방사한 따오기가 새끼 2마리를 부화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따오기가 우리나라에서 멸종한 지 42년 만에 자연에서 태어난 것이다.

따오기센터 직원들은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에 가장 민감하다.

AI가 발생하면 설 연휴를 반납할 정도로 지극정성을 쏟는다.

그 덕분에 따오기가 번식할 수 있었다.

2019년부터 2년 동안 방사한 따오기의 숫자는 모두 78마리다.

천신만고 끝에 따오기 증식과 야생 방사에 성공했지만, 걱정도 많다.

우포늪은 따오기 야생복귀를 위한 최적의 서식지지만 이곳을 벗어나면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창녕지역 주요 작물인 마늘과 양파는 특성상 농약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주로 논 속의 미꾸라지 등을 먹이로 하는 따오기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창녕 읍내의 만연교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여행자 [사진/성연재 기자]
창녕 읍내의 만연교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여행자 [사진/성연재 기자]

◇ 그밖에 가볼 만한 곳들

창녕군에는 의외로 가볼 만한 곳이 많다.

그중 몇 개월 전부터 SNS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곳이 읍내에 있는 만년교(萬年橋)라는 작은 돌다리다. 보물 제564호인 아치 모양의 만년교가 물에 반영된 모습이 매력적이다.

가보니 젊은 연인들이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만년교 옆에는 가지가 늘어진 수양벚꽃이 지고 있어 아름다움을 더했다. 만년교 옆에 있는 연지못도 인상적이다.

오후 느지막이 연지못을 찾아가 보면 산책하는 주민들뿐만 아니라, 멀리 부산과 대구에서 온 여행객들도 볼 수 있다.

창녕군에서 우포늪을 오가다 보면 대지면 석리의 창녕 성씨 거주지를 만날 수 있다. 국내에 수많은 한옥마을이 있지만, 이곳의 한옥들은 왠지 더 단아하고 세련된 느낌이 든다.

석리 성씨 가옥의 단아한 모습 [사진/성연재 기자]
석리 성씨 가옥의 단아한 모습 [사진/성연재 기자]

한옥마을의 면적은 약 1천931㎡에 이르며, 고가들은 ㅁ자 형태로 안채, 사랑채, 곳간, 대문채, 화장실 등을 갖추고 있다.

때마침 핀 벚꽃이 기와지붕 위에 흐드러진 한 고가의 모습은 탄성을 부를 만큼 아름다웠다.

읍내에는 석빙고도 있다. 빙실(氷室)은 길이 11m, 폭 3.6m, 높이 3.7m로, 영조 18년인 1742년 세워졌다.

석빙고는 내·외 구조가 경주나 안동의 석빙고와 같지만, 규모는 약간 작은 편이다.

석빙고 옆에서는 운이 좋으면 창녕 오일장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선 우포늪에서 잡혀 온 싱싱한 민물고기, 봄을 맞아 심을 수 있는 다양한 묘목들, 병아리 등이 주로 팔린다.

이 밖에 외빈들을 모셨던 창녕 객사와 진흥왕 척경비 등 문화재가 산재한 창녕읍의 만옥정 공원도 가볼 만하다. 이곳에서는 50∼100년 수령의 벚나무가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만옥정 공원의 창녕 객사 [사진/성연재 기자]
만옥정 공원의 창녕 객사 [사진/성연재 기자]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5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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