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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램지어의 도발…더 중요해진 첫 日위안소 보전

송고시간2021-03-28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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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일본군이 최초로 세운 위안소인 중국 상하이 '다이살롱'(大一沙龍)이 있던 건물 일대가 재개발되지만 중국 안팎의 관심이 커지면서 일단 이 건물이 원형대로 보전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훗날 일본군이 가는 곳마다 설치된 수많은 위안소의 원형이 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역사학자들은 위안부 역사에서 다이살롱이 갖는 상징성이 매우 크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각종 관련 문헌 수집, 피해자들 구술 정리, 위안소로 쓰인 공간 찾기와 보전 등 일련의 고단한 과정을 '증거의 산'을 쌓는 일로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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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부정 세력 있는 한 '증거의 산' 더 높고 단단히 쌓아야

국제사회 관심 커질수록 '다이살롱' 위안부 역사관 가능성 커져

세계 최초의 일본군 위안소 '다이살롱' 건물
세계 최초의 일본군 위안소 '다이살롱' 건물

[촬영 차대운]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옛 일본군이 최초로 세운 위안소인 중국 상하이 '다이살롱'(大一沙龍)이 있던 건물 일대가 재개발되지만 중국 안팎의 관심이 커지면서 일단 이 건물이 원형대로 보전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일본군은 1932년 1월부터 1945년 8월 2차 세계대전 패전 때까지 이곳에서 일본군 장교를 위한 위안소인 다이살롱을 운영했다.

한반도에서 끌려온 여성들도 있던 이곳은 세계 최초로 들어선 일본군 위안소이자 가장 오래 운영된 일본군 위안소다.

훗날 일본군이 가는 곳마다 설치된 수많은 위안소의 원형이 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역사학자들은 위안부 역사에서 다이살롱이 갖는 상징성이 매우 크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각종 관련 문헌 수집, 피해자들 구술 정리, 위안소로 쓰인 공간 찾기와 보전 등 일련의 고단한 과정을 '증거의 산'을 쌓는 일로 비유한다.

역사적 상징성이 큰 일본군의 첫 위안소 다이살롱은 이 '증거의 산' 한복판에 자리 잡은 '제1호 증거물'인 셈이다.

마침 다이살롱 보전 문제는 위안부를 일본군에 의한 피해자가 아닌 '자유 계약'에 따른 매춘부로 규정한 마크 램지어 교수의 '도발'이 이뤄진 직후에 불거졌다.

램지어 교수의 뒤에는 국제사회의 공동 인식으로 굳어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든 흔들고 부정해보려는 일본의 일부 우익 세력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많다.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Harvard Law School 유튜브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이런 세력이 존재하는 한 일본군 위안부의 성격을 더욱 구체적으로 규명하는 학술적 노력의 중요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사실 일본 정부도 과거 '고노 담화'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성격을 인정한 바 있고 이는 지금도 일본 정부의 기본 입장으로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려는 일부 세력의 '게릴라식' 도발에 일일이 흥분해 대응하는 대신 묵묵히 '증거의 산'을 더욱 높고 단단하게 쌓는 것이 제2의, 제3의 램지어에게 맞서는 최선의 길일 듯 싶다.

이런 점에서 첫 일본군 위안소인 다이살롱이 있던 건물을 온전하게 보전하는 일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볼 수 있다.

다이살롱이 일단 철거 위기를 모면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재개발이 마무리될 때까지 이 건물이 정말 온전히 보전될 수 있을지, 향후 이 건물이 의미 있게 활용될 수 있을지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일도 중요하다.

현지 문화재 당국은 재개발이 진행돼도 다이살롱 건물은 따로 남겨 온전히 보전해야 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하지만 정해진 심의 절차를 거쳐 철거가 허용되는 것도 완전히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어서 중국 안팎 여론의 지속적인 관심이 여전히 필요한 상황이다.

개발 주체는 자연스럽게 이익 극대화를 위해 모든 건물을 허물고 고밀도 개발을 하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한중 역사학자들은 다이살롱 건물을 위안부 문제를 조명하는 역사관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한 상황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세계 여러 지역에 걸쳐 있다.

따라서 이 건물의 보전과 유의미한 활용을 위해 피해국 시민사회와 학계의 연대의 목소리가 나온다면 최종적 결정권을 가진 중국 당국의 선택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해외 사적지 전문가인 김주용 원광대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는 어느 한 국가나 민족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관련된 공간과 기록을 보전할 국제적 연대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최근 동북아를 둘러싼 외교 지형의 변화도 주목해볼 만하다.

사실 최근 수년간 중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민간단체의 운신 폭이 그리 넓지 못했다.

2012년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 영유권 분쟁 이후 장기간 냉각된 중일 관계가 2018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의 방중을 계기로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들어가면서 중국이 중일 간에 민감한 역사적 문제인 위안부 문제가 두드러지지 않게 '관리'를 했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는 예정된 대형 위안부 국제 학술회의를 취소시키는가 하면 상하이사범대 교정 뜰에 있는 '한중 평화의 소녀상'을 눈에 잘 띄지 않는 건물 내부로 옮길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다행히 대학 측의 반대로 중국에 있는 유일한 '평화의 소녀상'은 지금도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상하이 위안부 역사 박물관 앞의 '한·중 평화의 소녀상'
상하이 위안부 역사 박물관 앞의 '한·중 평화의 소녀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중일 관계는 최근 파열음을 내고 있다. 미중 신냉전 속에서 일본은 '반중 연대' 성격이 강한 쿼드(Quad·4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미국과 긴밀히 보조를 맞추고 있고 중국은 이런 일본에 불만이 크다.

반대로 중국은 최근 수년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문제로 한국과 불편했지만 이제는 미중 신냉전 속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인 한국이 최소 한 중립을 유지해주기를 바라면서 적극적으로 다가서려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런 측면에서 중일 간 벌어진 틈새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중국에서 학계나 민간 중심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조명하는 데 있어 최근 수년과 같은 외부 환경의 제약은 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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