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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1988년 서울올림픽 엠블럼이 이탈리아 주유소에?

송고시간2021-03-26 07:07

색상과 모양까지 흡사 '도용' 의심…대한체육회 "IOC에 조사 요청"

이탈리아 석유제품 유통사 '에네르페트롤리' 회사 로고(왼쪽·업체 페이스북 갈무리)와 서울올림픽 엠블럼(연합뉴스 자료사진).

이탈리아 석유제품 유통사 '에네르페트롤리' 회사 로고(왼쪽·업체 페이스북 갈무리)와 서울올림픽 엠블럼(연합뉴스 자료사진).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한국에선 진작에 자취를 감춘 1988년 서울올림픽 엠블럼이 이탈리아에서는 살아있다?'

33년 전 한국민에 큰 자부심을 줬던 올림픽 엠블럼을 난데없이 소환한 이유는 이탈리아에서 이와 거의 유사한 업체 로고가 기자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해당 업체는 '에네르페트롤리'(Enerpetroli)라는 이름의 석유제품 유통사로, 로마를 포함한 라치오주와 피렌체가 있는 토스카나주 등 이탈리아 중부지역을 중심으로 다수의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주유소 간판에는 하나 같이 서울올림픽 엠블럼으로 착각할 정도의 회사 로고가 선명하다.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로마 시내 바티칸시국 인근의 에네르페트롤리 주유소. 2021.3.24. lucho@yna.co.kr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로마 시내 바티칸시국 인근의 에네르페트롤리 주유소. 2021.3.24. lucho@yna.co.kr

공교롭게도 에네르페트롤리는 1988년 법인이 설립된 것으로 웹사이트에 나와 있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시점과 같다. 우연의 일치일까.

일단 도용을 의심할 만한 여지는 충분하다.

2017년 작고한 원로 그래픽 디자이너 양승춘 씨가 제작한 서울올림픽 엠블럼은 우리나라 고유의 삼색 태극 문양을 역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삼색 태극은 파랑과 빨강의 태극 문양에 노랑이 추가된 것으로 가장 흔히 사용되는 태극 변형이다. 우리 전통 부채에 새겨진 무늬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그런데 이 업체의 로고를 보면 색상 배치는 물론 모양까지 매우 흡사하다.

우연이라고 치부하긴 어려운 대목이다.

서울올림픽 엠블럼은 대회 개최 5년 전인 1983년 공식 발표됐다. 이 회사의 법인 설립 준비 기간을 고려해도 선후 관계는 분명해 보인다.

표면적으로 지식재산권 침해로 의심되지만 법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다소 복잡해진다.

모든 올림픽 대회의 엠블럼과 마스코트의 상표권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 귀속된다.

IOC는 엠블럼과 마스코트를 포함한 올림픽 관련 상표·디자인을 국제출원하고 각 나라의 특허권을 취득하는 절차를 밟는다.

문제는 그 시점이다.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로마 인근 항구도시 치비타베키아 도로변의 에네르페트롤리 주유소. 2019.10.13. lucho@yna.co.kr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로마 인근 항구도시 치비타베키아 도로변의 에네르페트롤리 주유소. 2019.10.13. lucho@yna.co.kr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개최된 대회의 경우 통상 개최 시점 전후로 이러한 절차가 이뤄졌으나 그 이전에는 무시됐거나 상당 기간 지연됐다.

지식재산권에 대한 인식 자체가 지금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빈약했다는 게 하나의 이유로 꼽힌다.

서울올림픽의 엠블럼의 경우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2012년에 와서야 특허 출원이 이뤄졌을 정도다.

이탈리아도 비슷한 시점에 출원이 됐거나 혹은 아예 안 됐을 가능성도 있다.

만에 하나 에네르페트롤리가 먼저 서울올림픽 엠블럼과 유사한 디자인을 회사 로고로 상표 등록했다면 전후 관계상 도용이 의심된다고 하더라도 소송에서 이기기 쉽지 않다는 게 대한체육회 측 설명이다.

다만, 대한체육회는 누가 봐도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의 명백한 도용 행위로 판단되는 만큼 일단 IOC에 이를 전달한다는 방침이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25일 "매우 이례적인 올림픽 상표권 침해 사례라 보인다"며 "엠블럼 소유권을 가진 IOC 측에 조사해보라고 요청하고 진행 경과를 확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로마 주재 우리 공관도 회사 측에 로고 사용 경위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이메일을 보냈으나, 회사 측은 아직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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