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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제주문화](6) 세계가 인정한 제주의 '굿' 김윤수 심방

송고시간2021-03-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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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수(75) 심방('무당'을 뜻하는 제주어)은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이자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인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예능보유자다.

제주에선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는 전환기에 제주 섬 곳곳에 풍요와 생명의 '씨 뿌림'을 하는 영등신을 위해 굿을 벌이는데 이를 '영등굿'이라 한다.

지난 2월 26일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전수관에서 만난 김윤수 심방은 자신이 심방이 된 사연을 담담하게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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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타파' 새마을운동 난관에도 꿋꿋이 제주 전통 이어와

"4대째 이어왔지만 마지막…굿 종합적으로 전수돼 인정받길"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김윤수(75) 심방('무당'을 뜻하는 제주어)은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이자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인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예능보유자다.

세계무형유산 제주칠머리당 영등굿
세계무형유산 제주칠머리당 영등굿

(제주=연합뉴스)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이자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인 제주칠머리당 영등굿의 송별대제가 제주시 사라봉 전수회관에서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장인 김윤수 심방의 집전으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주에선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는 전환기에 제주 섬 곳곳에 풍요와 생명의 '씨 뿌림'을 하는 영등신을 위해 굿을 벌이는데 이를 '영등굿'이라 한다.

제주 영등굿을 대표하는 제주시 건입동의 본향당이 '칠머리당'으로, 김 심방은 바로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의 대표 심방이다.

◇ 심방이 된 사연

"심방업을 집안 대대로 이어오게 된 데는 6대조 할아버지의 묏자리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2월 26일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전수관에서 만난 김윤수 심방은 자신이 심방이 된 사연을 담담하게 읊었다.

김 심방의 6대조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당시 5대조 할아버지는 지관(地官, 풍수지리에 따라 집터나 묏자리를 고르는 사람)을 불러 무덤을 쓸만한 자리를 알아봤다.

지관이 묏자리 한 곳을 가리키며 '이곳에 묘를 쓰면 자손은 번성하지만, 심방 자손이 나온다'고 말했다.

5대조 할아버지는 지관의 말에도 개의치 않았다.

독자였던 5대조 할아버지는 심방이 나오더라도 자손이 번성하길 바랐던 것이다.

이후 실제로 증조할아버지(김정호), 작은할아버지(김신천), 큰아버지(김천년)에 이어 김 심방까지 4대째 심방일을 하게 됐다.

인터뷰하는 김윤수 심방
인터뷰하는 김윤수 심방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지난 2월 26일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전수관에서 김윤수 심방이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1.3.21

김윤수 심방이 처음부터 심방일을 배웠던 것은 아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고 큰아버지 집에서 살았던 김 심방은 어려서부터 머리가 자주 아팠다.

큰어머니가 "너 심방일을 배워 큰아버지 대를 이어라. 그래야 머리 아픈 것도 좋아지고 너에게도 좋을 것이야"라고 권했던 것.

이때가 큰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인 14∼15살 때였다.

신기하게도 굿을 따라다니며 배우기 시작하자 머리 아픈 것도 말끔히 사라졌다.

본격적으로 굿을 배웠지만, 쉽지는 않았다.

지금은 녹음해서 다시 듣고, 영상을 찍어 보며 배울 수 있지만, 당시엔 오직 굿을 하는 그 순간 귀로 듣고 눈으로 보며 바로 따라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김 심방은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데 계속하다 보니 귀에 들리기 시작하고 연물(演物, 제주에서 장구·징·북·설쇠 등 악기를 일컫는 용어)도 배우게 됐다. 연물을 잘 때려야 심방 스승들이 데리고 다니며 가르쳐줬다"고 말했다.

그는 "점차 실력이 좋아졌고, 도내에서 '김윤수'란 아이가 잘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이곳저곳에 불려 다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김 심방은 도내 실력 있는 여러 심방을 스승으로 따라다니며 굿을 배워나갔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제주=연합뉴스) 지난 1992년 3월 17일 제주시 수협 위판장에서 열린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제주칠머리 당굿 영등송별대제 발표회에서 당시 기능보유자 후보 김윤수 심방이 영등신에게 어부와 해녀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굿을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어려운 무속인의 길

심방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속신앙이 생활의 일부와 다름없던 시절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무속을 천시하는 주변의 시선 때문이다.

김 심방이 큰어머니를 따라다니며 굿을 배우던 19살이었다.

당시 제주시 한림읍의 한 가정집에서 굿을 하던 중 누군가 던진 돌에 머리를 맞아 피투성이가 됐다. 그는 돌을 던진 동네 청년들과 시비가 붙어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김 심방은 당시 '이렇게 천대받으면서 굿을 해야 하나. 그만두자!'고 마음먹었다.

과거를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심방일을 그만두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간 김 심방은 한때 방탕한 생활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얼마 안 가 다시 또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결국, 1년도 안 돼 제주도로 내려와 다시 굿을 하러 다녔다.

세계무형유산 영등굿 "영등할망 잘 갑서"
세계무형유산 영등굿 "영등할망 잘 갑서"

(제주=연합뉴스) 지난 2016년 3월 22일 제주시 사라봉 칠머리당에서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의 영등송별대제가 봉행 되고 있다. 이 굿은 해마다 '영등달'인 음력 2월 초하룻날 제주에 찾아왔다가 열나흗날 떠나는 '영등할망'을 보내는 무속 제례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난관은 또 이어졌다.

'미신타파'가 횡행했던 새마을운동으로 인해 큰 수난을 겪었다.

김 심방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사라봉 굴속에서 굿을 하거나 소나무 숲속에 천막을 치고 굿을 해야 했다.

군대에 입대해 하사관으로 복무하며 잠시 무속인을 향한 사회의 멸시를 피하기도했다.

사회 분위기가 바뀐 건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이 1980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되면서부터다.

초대 칠머리당영등굿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은 고(故) 안사인 심방이 김윤수 심방에게 "윤수야! 우리 손잡앙 제주 무속굿을 살려보자!"며 손을 내밀었다.

김 심방도 흔쾌히 응했다.

이후 김 심방은 안사인 심방과 함께 칠머리당영등굿은 물론 다양한 제주의 굿 보전 활동을 벌였고, 안 심방이 타계한 뒤 1995년에는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인터뷰하는 김윤수 심방
인터뷰하는 김윤수 심방

(제주=연합뉴스) 김윤수 심방이 2월 26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문화체육부 장관으로부터 받은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서를 가리켜 보이고 있다. 2021.3.19

김 심방은 "집안에서 부인과 함께 4대째 업을 이어오고 있지만, 집안에 더는 심방을 할 사람이 없다. 나와 부인으로 끝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 5년을 살는지, 10년을 더 살는지 모르겠지만 죽기 전에 칠머리당영등굿과 제주큰굿, 신굿 등 제주에 남아 있는 다양한 굿이 함께 어우러져 종합적으로 전수돼 함께 인정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심방은 "칠머리당영등굿 보존회라고 하면 사람들은 우리가 '영등굿'만 할 줄 아는 것으로 오해하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제주에는 다양한 종류의 굿이 있고 심방들, 회원들이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칠머리당영등굿 보존회에는 총 20명의 회원이 활동하며 제주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에는 40여 명이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 활동할 수 없거나 은퇴하면서 이제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현재 가장 나이가 적은 회원은 47세다.

입춘굿놀이 펼치는 김윤수 심방
입춘굿놀이 펼치는 김윤수 심방

(제주=연합뉴스) 제주 탐라국 입춘굿놀이 행사가 열린 제주목(牧) 관아(官衙)의 관덕정(觀德亭) 앞에서 무속인(심방) 김윤수 씨가 입춘굿을 펼쳐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한을 풀게 하는 제주의 심방

제주의 심방은 예부터 민중의 한(恨)을 풀어주기 위해 굿을 하는 사람이다.

굿은 인간이 신과 만나기 위해 행하는 의례다.

심방은 굿에서 신들의 이야기인 본풀이(신화)를 읊어 신을 칭송하고 신을 기쁘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바를 신에게 대신 기원하고 신들이 도와주길 바란다.

심방에 대해 전문가들은 신과 인간을 잇는 사제(司祭)의 역할, 점을 쳐서 신의 뜻을 알아내는 역할, TV도 없고 연극 무대도 없던 시절 일종의 예능인 역할 등을 담당했다고 설명한다.

오늘날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예능인의 역할이다.

심방이 하는 굿은 노래와 춤, 신화, 연극 등 다양한 요소로 이뤄졌다.

심방이 사설 속에 제주의 다양한 신들의 이야기가 녹아들어 민중에게 전달되고, 춤과 연극적 요소가 가미돼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했다.

민속학자 문무병 박사는 저서 '제주도 무속신화'를 통해 "심방은 구성진 소리와 푸짐한 해학, 자연스러운 춤을 통해 민중의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문 박사는 "심방이 굿을 잘한다는 것은 집안이나 마을 사람들의 연유 즉, 굿을 할 수밖에 없는 사연을 잘 닦아주고 신을 잘 청하고, 무점을 잘 쳐서 신의 뜻을 제주(祭主)에게 잘 전달해 제주의 가슴을 찌르는 그럴듯한 사설로써 맺힌 한과 응어리를 풀어줄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송당 본향당굿 주관하는 김윤수 심방
송당 본향당굿 주관하는 김윤수 심방

(제주=연합뉴스)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본향당에서 김윤수 큰 심방(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이 연중 가장 큰 굿인 신과세제(新過歲祭)를 주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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