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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어때] 三大三美 그리고 三色…구례의 봄

화려한 봄꽃의 향연 이어지는 상춘 일번지

(구례=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전남 구례는 흔히 '삼대삼미(三大三美)의 고장'이라고 한다. 지리산·섬진강·구례평야를 '삼대'라 하고 아름다운 경관·넘치는 곡식·넉넉한 인심을 '삼미'로 칭했다.

구례의 봄에는 세 가지 색(三色)도 있다. 고을마다 활짝 핀 산수유꽃의 노랑, 운조루에 핀 목련의 하양, 그리고 천년고찰 화엄사에 핀 홍매화의 빨강이다.

반곡마을의 산수유와 이끼 낀 돌담길 [사진/성연재 기자]
반곡마을의 산수유와 이끼 낀 돌담길 [사진/성연재 기자]

◇ 파스텔톤 산수유마을

우중충한 도시를 벗어나 남쪽으로 내달렸다. 차창 밖으로 전해지는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목적지인 전남 구례 땅으로 접어드니 경치가 확 바뀐다. 사방이 온통 노란색 산수유로 뒤덮였다.

전국 산수유의 60%가 이곳 구례 땅에서 생산된다고 하니 명실상부한 산수유의 고장이다. 산수유는 예로부터 약용으로 널리 사용됐으며 콩팥의 생리기능 강화로 장기간 복용하면 정력 부족, 이명 현상 등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례에서도 산동면이 산수유로 가장 유명하다.

옛날 산동면의 젊은 여성들은 입에 산수유 열매를 넣고 앞니로 씨와 과육을 분리했는데, 어릴 때부터 나이 들어서까지 이 작업을 반복해서인지 앞니가 많이 닳아있어 다른 지역에서도 산동 여성은 쉽게 알아보았다고 한다.

몸에 좋은 산수유를 평생 접해온 산동 사람들은 건강하다는 믿음 덕분에 신랑신붓감으로도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산동면을 가로지르는 서시천 주변으로 산수유마을이 산재해 있지만 가장 위쪽인 월계마을과 상위마을, 그 아래 반곡마을, 현천마을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특히 상위마을은 개울과 돌담의 풍경이 아름답고, 반곡마을은 계곡 뒤쪽으로 지리산이 보여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이번에는 상위마을과 하위마을, 대음마을과 반곡마을을 주로 돌아봤다. 일반인들이 가장 쉽게 다녀올 수 있는 대표적인 코스다.

차를 타고 돌면 아래쪽에 있는 산수유축제장에서 반곡마을, 대음마을, 하위마을, 상위마을 순으로 올라간 뒤 가장 위쪽의 월계마을에서 돌아 나올 수 있다.

운무 낀 지리산과 반곡마을 계곡 [사진/성연재 기자]
운무 낀 지리산과 반곡마을 계곡 [사진/성연재 기자]

얕은 돌담길 위에 핀 파스텔 색조의 산수유나무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포근하고도 따스하다.

산수유축제가 취소됐기 때문인지 예전만큼 관광객으로 붐비지는 않았다.

1년 농사를 힘들게 지은 농민들은 축제 때 수익을 올릴 수 있었지만, 지난해와 올해는 팬데믹 탓에 축제가 열리지 않아 시름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안타까운 일이다.

산수유 마을 아래쪽 주차장에는 그나마 캠핑카와 카라반이 몇 대 눈에 띈다. 비대면 바람으로 차박이 유행이라는데, 그나마 이런 방문객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서예 교실이 열리고 있는 운조루 [사진/성연재 기자]
서예 교실이 열리고 있는 운조루 [사진/성연재 기자]

◇ 운조루의 목련

구례군 토지면의 운조루는 조선 영조 때 삼수 부사를 지냈던 안동 출신의 류이주가 1776년 지은 99칸 집으로, 중요민속문화재 8호로 지정된 곳이다. 지금은 65칸만 남았다.

운조루가 있는 자리는 풍수지리상으로 볼 때 노고단의 옥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금환락지(金環落地)의 형상이라 해서 타고난 명당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오랜만에 다시 구례를 찾았기에 이 집 며느리 곽영숙 씨에게 연락했다.

운조루의 작은 사랑채가 이번 출장의 숙소가 됐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저녁 무렵 운조루에 도착해보니 손님들이 여럿 있다.

서예 교실에 참가한 운조루 종부 곽영숙 씨 [사진/성연재 기자]
서예 교실에 참가한 운조루 종부 곽영숙 씨 [사진/성연재 기자]

때마침 이날은 겨우내 문을 닫았던 서예 교실이 열리는 날이다.

널따란 사랑채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문이 열린 것을 핑계 삼아 들어갔더니 논어 강좌가 한창이다.

몇 명이 앉아 열심히 묵을 갈거나 붓글씨를 쓰고 있다. 이 집 종부인 곽영숙 씨의 서예 솜씨도 예사롭지 않다.

운조루는 이렇게 지역 문화의 중심 역할도 하고 있다.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방으로 들어와 여장을 풀었다. 곽씨는 이곳이 예전 훈장님이 쓰던 방이라고 한다. 현대식으로 화장실도 들였고 하룻밤 지내기에는 큰 불편함이 없었다.

토지면의 평야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자리에 있는 이 고택은 굴뚝이 높지 않다. 행여 밥 짓는 연기가 멀리서도 보일까 싶어 이를 경계하기 위한 것이다.

운조루 안채에 목련이 피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운조루 안채에 목련이 피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서민들을 위한 배려는 사랑채 부엌 한구석에 자리 잡은 나무 쌀독에서도 느낄 수 있다. 누구라도 퍼갈 수 있다는 뜻으로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안채 사람들 눈치 보지 않도록 사랑채 부엌에 쌀독을 뒀다.

운조루의 봄은 안뜰에 심어진 목련이 알린다. 어느덧 목련이 꽃봉오리를 틔우고 있었다. 1주일만 늦게 방문했더라면 활짝 핀 목련을 맞이했을 텐데 아쉬울 뿐이다. 산수유는 시기를 잘 맞췄지만, 목련은 그렇지 못했다.

◇ 홍매화 붉은빛 찬란한 천년고찰 화엄사

구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마산면의 천년고찰 화엄사다. 544년 신라 진흥왕 5년 연기 대사가 창건한 화엄사는 문무왕 시절 의상대사가 불법 전파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그 규모가 커졌다.

화엄사는 흔히 호국사찰로 불린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승병들이 이곳에 주둔해 훈련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각황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702년(숙종 28년)에 다시 지었다.

최근에는 2012년 한 취객의 방화로 대웅전이 소실될 뻔한 위기도 맞았지만, 방염처리를 한 덕분에 큰 피해는 보지 않았다.

새벽의 화엄사 각황전 [사진/성연재 기자]
새벽의 화엄사 각황전 [사진/성연재 기자]

화엄사는 대웅전보다 각황전이 중심인 사찰이다. 동남향인 각황전은 정남향인 대웅전의 오른쪽을 보고 서 있다.

단층인 대웅전에 비해 2층 팔작지붕 건물로 웅장하지만 단아한 멋을 풍기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건물이다.

화엄사에는 3가지 매화가 있다. 일주문 옆 분홍색 매화, 화엄사 경내 작은 암자인 길상암 앞에 있는 들매화, 마지막으로 각황전 옆 홍매화다.

가장 먼저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은 일주문 옆 분홍색 매화다. 방문객이 오가는 곳에 있어 주목을 받는다.

수령 450년의 천연기념물인 흰색 들매화는 예상외로 작고 볼품이 없다. 들매화는 인위적으로 가꾸지 않은 매화로 유명하다. 사람이나 동물이 먹고 버린 씨앗이 싹이 터서 자란 나무로 추정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각황전 옆 홍매화다. 조선 숙종 때 각황전을 중건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계파선사가 심었다고 한다.

이 매화의 수령은 300∼400년으로 추정된다. 색이 검붉어 '흑매'(黑梅)라고도 불린다.

만개한 화엄사 홍매 [연합뉴스 자료사진]
만개한 화엄사 홍매 [연합뉴스 자료사진]

홍매화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각황전 뒤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4시간을 같은 자리에서 해가 뜨길 기다렸는데 결국 해를 보지 못했다. 다음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 Information

최근 한 케이블TV 예능 프로그램 덕분에 전통가옥인 쌍산재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구례에는 쌍산재 뿐만 아니라 멋진 한옥에서 머무를 수 있는 곳이 많다.

운조루에서는 고택과 별도로, '운조루 막둥이'라는 독채 한옥 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조리시설도 있다.

운조루는 성인 기준 1천원의 입장료가 있다. 구례의 식사는 대체로 만족스럽다. 특히 섬진강에서 잡힌 물고기로 끓인 매운탕을 잘하는 집들이 많다

구례에는 우리 밀로 빵을 굽는 빵집도 몇 년 만에 구례를 대표하는 빵집으로 자리 잡았다.

산수유마을은 따로 입장료와 주차요금이 없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4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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