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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속 사진 읽기] 대보름과 불놀이

현장감 생생한 세시풍속 사진, 시대상 담은 기록으로 남아

(서울=연합뉴스) 전수영 기자 = '설은 나가서 쇠어도 보름은 집에서 쇠어야 한다.'

정월 즈음에 어르신들이 무심히 뱉는 잔소리처럼 들린다. 조금은 생소한 속담이다. 객지에 나간 식구가 설에 집에 오지 못하면 보름에라도 꼭 돌아와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보름은 정월 대보름(음력 1월 15일)을 말한다.

정월대보름인 2월 26일 서울 하늘 위로 둥근 보름달이 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정월대보름인 2월 26일 서울 하늘 위로 둥근 보름달이 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 해의 출발을 사랑하는 가족, 이웃과 함께해야 한다는 조상들의 큰마음으로 읽힌다. 옛사람들은 정월 대보름을 본격적인 농사짓기에 앞서 풍년을 소망하고 준비하는 중요한 날로 여겼다.

농사가 만사였기에 흩어진 일손을 끌어모아야 하는 집안 어른에게는 맞춤형 속담이기도 하다. 속담만 들으면 대보름에는 집 나간 자식도 모두 돌아와야 할 것만 같다.

겨우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는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음식을 나누고, 큰 마당에 모여 전통 놀이를 즐기는 등 모처럼 떠들썩한 때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대보름에는 우리 조상들이 풀어낸 다양한 세시풍속들이 전해 온다. 달집을 만들어 달이 떠오를 때 태우면서 풍년을 비는 달집태우기, 농민들이 행렬을 이루어 집을 차례로 찾아가는 지신밟기, 줄다리기, 쥐불놀이 등이 그것이다.

또한 대보름에 차려 먹는 오곡밥과 묵은 나물, 부럼, 귀밝이술 등도 빠질 수 없는 먹을거리다.

이래저래 할 것도 많고, 챙겨 먹어야 하는 것도 많은 대보름이지만 불놀이만큼 관심을 끄는 대중적인 놀이가 또 있을까 싶다.

덕분에 쥐불놀이는 대표적인 대보름 세시풍속 사진으로 지금도 매년 신문지면에 게재되고 있다.

쥐불놀이란 과거 대보름 전날 밤에 논둑과 밭둑에서 마른 풀을 태우며 펼쳐지는 전통 놀이다. 겨울을 지낸 들판의 들쥐를 쫓는다고 해서 쥐불 놓기(서화희, 鼠火戱)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각종 병해충이 알을 낳아 놓은 잡초와 해충 서식지 등을 태워 농사에 도움을 주려는 일종의 대청소 작업이었다.

단순한 쥐불 놓기에서 유희성을 가미한 쥐불놀이로 변하고 요즘과 같은 오락적인 요소가 강한 불놀이가 되었다.

정월대보름을 앞둔 2월 23일 광주천 두물머리에서 주민들과 구청 직원들이 코로나19 극복을 기원하며 쥐불놀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정월대보름을 앞둔 2월 23일 광주천 두물머리에서 주민들과 구청 직원들이 코로나19 극복을 기원하며 쥐불놀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금은 산불과 화재의 원인이 되고 있어 장소의 규제를 받고 있지만, 불놀이는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의 주도하에 하천변에서 열리는, 가장 큰 대보름 행사의 하나다.

쥐불놀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게 단단히 지지해줄 삼각대가 있어야겠다.

특히 활활 타오른 나뭇가지를 깡통 속에 넣어 돌리는 놀이여서 참가자와 사진을 찍는 사람 모두 화상을 입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제주에도 쥐불 놓기와 유사한 불놀이 문화가 있다. 뭍에서 논둑과 밭둑에 불을 놓았다면, 섬에서는 마소가 풀을 뜯는 목초지를 태웠다.

늦겨울부터 초봄에 중산간 목초지의 잡풀을 불태우는 것인데, 초지의 해묵은 풀을 없애고 해충을 몰아내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마을별로 들판에 불을 놓았다.

이렇게 불을 놓는 것을 '들불놓기'라 하는데, 진드기 등 병충해가 없어질 뿐만 아니라 불에 탄 잡풀이 재가 되어 목초를 연하고 맛 좋게 해 소와 말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줬다고 한다.

이를 현대적인 축제로 승화시킨 행사가 매년 3월 제주시 애월읍 새별오름에서 펼쳐진다.

3월 13일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에서 2021 제주들불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들불놓기 행사가 열리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올해는 사전 예약 차량을 대상으로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진행됐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3월 13일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에서 2021 제주들불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들불놓기 행사가 열리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올해는 사전 예약 차량을 대상으로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진행됐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오름은 '산'을 뜻하는 제주도의 방언으로 흔히 측화산, 기생화산이라고 부르는 소규모 화산이다.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들불놓기'는 사진에서처럼 광활한 오름 능선에 설치한 달집을 태우면서 시작한다.

능선을 타고 불이 번져가는 모양새가 마치 활화산에서 흘러내리는 용암을 보는 듯하다. 장엄한 광경이다. 장작불을 바라보는 것과는 다른 '불멍'의 끝판왕이다.

지난해에는 안타깝게 코로나19 때문에 열리지 못했다. 올해는 사전 예약 차량 400대를 대상으로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진행됐다.

오름을 환히 밝힌 불빛이 반대편에서 지켜보는 자동차 무리를 어스름히 비춘다.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진귀한 풍경이다.

쥐불이든 들불이든 불을 놓아 태운다는 것은 지금을 버리고 새로움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정월의 세시풍속은 그렇게 새로움을 꿈꾸게 하는 출발점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4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swim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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